옛날 물이 귀한 어느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어다 쓰는 샘에서 멀리 떨어진 집에 물 긷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이 하인은 양쪽 끝에 물동이가 달려 있는 지게를 지고 물을 길으러 다녔는데요,

어느 날, 한쪽 물동이 바닥에 금이 가 버렸습니다. 금이 갔으니 어떻겠어요?

물을 길어 먼 길을 오는 동안 금 사이로 물이 줄줄 새어 버리겠죠.

그런데 하인은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금이 간 물동이를 버리거나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늘 샘에서 양쪽 물동이에 똑같이 물을 가득히 담아 지고 왔습니다.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금 간 물동이엔 물이 절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정작 그 사실을 마음에 둔 것은, 금이 간 물동이였습니다.

물동이는 자기 몸에 흠이 생긴 순간, 이제 자신의 가치는 끝장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계속 자신의 몸에 물을 가득히 퍼 나르자,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을 다 담아오지 못하고 주인을 고생시키면서 절반은 쓸모없이 허비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슬펐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한 금 간 물동이는 어느 날 물긷는 하인 즉 자신의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정말 죄송하고 부끄러워요.

쓸모없는 저를 제발 그만 버려주세요. 저는 이런 꼴로는 더 이상 존재하고 싶지 않아요."

 금 간 물동이의 말을 들은 하인은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물동이는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물을 가득 담아주셔도 전 그걸 집에까지 담아오지 못하잖아요.

전 제 구실을 전혀 못하는 한심한 물동이예요."

 그 말을 들은 물 긷는 하인은 물동이에게 말했습니다.

 "넌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어째서 네가 네 구실을 못 하고 물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난 너를 오직 너만 할 수 있는 일에 사용하고 있어."

 주인은 물지게를 지고 샘으로 가는 길에 물동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가는 길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보았니?

원래 이 곳은 메말라서 꽃이 피지 않아. 그런데 내가 우리의 오가는 길에 꽃씨를 뿌렸단다.

그리고 네가 나와 함께 이 길을 지나면서 길에 뿌려준 물이 그 꽃씨들을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한 거지.

난 이 꽃들을 꺾어 주신 어르신의 방을 아름답게 장식하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단다. 네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지."

 사람들은 흔히 "나에게 이것이 있었더라면, 혹은 저것이 있었더라면...." 하면서

현재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못마땅해 하고 삶에 우울해하며 슬퍼하고 분노합니다.

더구나 그 없거나 부족한 부분이 건강과 신체에 관한 것, 그리고 겉으로 쉽게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이들의 따가운 눈길까지 더해져 더욱 힘들 수 있지요.

 금 간 물동이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물동이의 역할)로만 자기 가치를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금이 가는 순간 자기 역할과 존재 가치는 끝장이 나 버렸고 '나는 쓸모없는 부끄러운 존재로 전락했다'고 절망하게 되었죠.

 그러나 그 금 간 물동이를 물지게에 매달고 물을 길러 다니던 하인은

(물동이의 역할)을 그저 집에까지 물을 담아오는 것으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물동이가 하지 않을 역할과 가치를 바라봤고 주었고 그것을 실현시키죠.

바로 그 흠, 그 다름을 사용해서 그들이 오가는 길가에 꽃들이 피어나도록 물을 주는 물뿌리개의 역할로 말입니다.

 삶의 의미, 존재의 역할과 가치를 보통 세상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익숙하게 여기는 것에 둔다면,

일반적인 이들과 출발점이 다른 이들은 좌절하고 희망이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당신의 존재 가치, 당신의 삶의 의미를, 남들이 다 눈여겨보지 못하지만 사실은 중요한 일,

바로 그것에 열심을 내는 것으로 새롭게 독창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남과 다름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 다시 없는 특별한 존재이며 특별한 삶의 소명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황수진, 날마다 힘드신 당신께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