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 즉,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하시던 날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이 본문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51절). 얼마 후면 유월절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이 길은 의례 올라가셔야 할 길이고, 또 1년에 세 번 정도는 늘 올라가시던 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새삼스럽게 ‘굳게’ 결심하셨는지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번 예루살렘 행은 의례적인 방문이 아닌, 바로, 십자가를 질 것을 굳게 결심하며 출발하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신 일이 그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굳은 결심이 수반된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자체가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것인데, 왜 다시금 굳은 결심이 필요합니까? ‘굳게 결심했다’는 말의 헬라어 원문의 뜻은 “얼굴을 굳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심하는 모습이 밖으로 드러났다는 것으로 예수님의 비장한 결심을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다는 제자들이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나타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본문 57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이제 그 모습을 친히 보여주심으로 제자들에게도 철저히 결단할 것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굳은 결심과 함께, 그 뒤를 따르려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각자의 믿음의 길을 다시금 점검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길에 있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57절). 이에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이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려는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곧 유대의 왕이 되실 것이라 믿고, 자신들의 출세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제자의 길’을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자기희생과 순교와 봉사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흔들리며 곧 결심을 져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값비싼 은혜를 받기 위한 제자의 길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성스럽게 지어 부활의 영광에까지 이르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한 길에 있는 두 번째 부류의 사람은 “내가 먼저 부친을 장사지낸 다음에 주님을 따르겠습니다!”(59절)고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을 하지만, 다른 이유들 때문에 지금 당장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결심하신 그 시기를, 즉, ‘죽을 시기’를 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51절). 그 때가 유월절임을 아시고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때, ‘무엇을 다 끝내고 나면 하겠습니다.’ ‘무엇이 되고 나면 하겠습니다.’ 하며 미루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단해야 할 그 시기를 결코 가족이나 다른 그 무엇 때문에 미루거나 놓치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 속에서 늘 새로운 결단이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요구에 망설임 없이 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향한 이 길에 있는 세 번째 부류의 사람은 “집에 가서 가족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온 후에 따르겠습니다!”(61절)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결코 갈릴리 한 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순교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과감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제자의 길에는 뒤를 돌아보거나 옛정을 찾아갈 겨를이 없습니다. ‘내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자질이 되나?, 그만한 능력이 있나?’하며 뒤돌아보고 주저할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