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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다리는 사람들 (2017.12.24)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 1장 12-17절
 
 
본문 내용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Content

마 1:12-21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다리는 사람들 105, 111
내일은 성탄절 아기예수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오늘은 그래서 성탄 이브라고 부르죠? 성탄이브 주일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워오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여러분 이 노래 잘 아십니까?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주님과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 힘들어 지칠때나 가슴아플때도 나에겐 주님밖에 없어요. 언제나 내 맘은 항상 주님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우리 모두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다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우리 성경에서 오늘 마무리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에게 이름을 지어주셨죠. “이스라엘”이라 하라. 그리고 그 후손은 이스라엘 백성이 됩니다. 그 후손 이스라엘 민족은 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때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민족과 더불어 동역하여 이루시고자 하시는 깊으신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430년 후에 아브라함 후 430년 후에 이스라엘 후손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출 19:5,6 우리 신앙의 가치관에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보실까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택함 받은 이유, 존재의 이유, 사랑받는 이유,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 그것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백성이 제사를 드림으로 그 자신들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그 세계가 이들의 제사로 인해서 그 세계가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천명,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실패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명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해서였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생각해보시겠습니다.
1. 그리스도의 계보는 은혜의 계보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 앞에 6절에서 11절까지는 유다 왕들의 계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 다음에 솔로몬부터 14대로 이어지는 왕정기의 계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한 왕도 있고 악한 왕도 있습니다. 아사 왕이 선하고 여호사밧도 선합니다. 아하스는 악한 왕인데 그 다음 히스기야는 선한 왕입니다. 히스기야는 선한 왕인데 그 아들 므낫세는 악합니다. 요람 같은 악한 왕 뒤에 웃시야와 같은 악한 왕도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들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주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주도하시는 계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의 계보에 속해있는 것,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해있는 것, 이것이 은혜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시간 계보 이야기들을 통해서 우리는 라합의 신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몸을 파는 여인이었습니다. 룻의 출신 성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이주민 출신입니다. 유다의 야사도 알고 있고, 다윗과 밧세바의 비행도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모두가 죄인이지만, 6-11절까지의 선한 왕 악한 일 쭈욱 이어지고 악한왕 선한왕들 이어지고 있지만 모두가 인간이요 죄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은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2천년동안 역사의 계보를 이어오셨습니다. 솔로몬도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습니다. 일생동안 성전도 짓고 왕궁도 짓고 시도 짓고 잠언도 짓고 호화로운 생활과 권력을 마음껏 누리고 자식에게 그것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물려주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왕국은 그래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이 계보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한 부모 밑에서 선한 아들도 있고 악한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악한 아버지 밑에서 선한 아들도 악한 아들도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도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 탓이야! 부모 탓이야!” 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내 집안 환경이 이 모양이어서 난 이 모양으로 밖에 클 수 없었어!”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망각한 말입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여러분 나의 환경이 이러해서 하나님은 이 환경을 도구로 쓰셔서 오늘 이 예배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집안이 그러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내게 믿음을 심어주셔서 오늘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사람에게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창세로부터 높은 뜻 안에서 택하신 택하여 주신 그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그 은혜의 고백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어른들에게 많이 들어보셨습니까? “나는 전쟁 중에도 살아남았고 이 집안을 여기까지 일으켰다!” “나는 학원 한번 안 가고 과외 한 번 생각도 못하고 공부도 잘했고 취업도 하고 사업도 일으켰고 집안도 일으켰다. 넌 대체 왜 그 모양이냐?” 여러분 그런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거 말하는 순간 저나 여러분은 즉시 우리 후세에게 별명을 들을 것입니다. 뭔지 아십니까? 꼰대!라고 듣습니다.  꼰대라고요. 생각해보시겠어요? 우리가 그런 말을 할 때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할 아이가 있겠습니까?
은혜를 가르쳐야 됩니다. 은혜로 감동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내가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게 이렇게 은혜를 주셔서 그 어려운 순간 이렇게 나를 도와주셔서 내가 여기까지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소박한 고백 속에서 아이는 감동을 받습니다. 믿음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을 만나고, 어머니의 영혼이 담당하고 있는 그 믿음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근래는 수능 시험 후라서 긴장하고 있는 가정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때가 아이에게 믿음을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입니다. 아이에게 말할 수 있겠죠. 솔직하게 “나도 욕심이 난다. 나도 우리 딸 SKY가면 좋겠다. 나도 우리 아들 서울대가면 좋지. 그렇지만 먼저 하나님의 뜻을 놓고 기도하자.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 기도하자.” 이런 마음으로 새벽기도도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무릎을 꿇으시면 이 때가 얼마나 귀하고 좋은 때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계보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시며, 하나님의 귀하신 뜻 안에서 태초로부터 택정된 그래서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시는 은혜를 잘 전해주시는 가정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의 계보는 은혜의 계보인데,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하지 못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또한 생각해 볼 만합니다. 그리스도의 계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속하지 못한 이들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8절 말씀에 요람이라는 왕이있죠. 여호람이라고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요람이 웃시야를 낳았다고 했는데, 요람에서 웃시야왕 사이에 4명의 이름이 빠졌습니다. 그 이름이 아하시야와 아달랴, 요아스와 아마샤 입니다. 왜 빠졌을까요? 마태가 잊어버린 걸까요? 빠진 이름들이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해서 여러 주석들을 찾아본 결과 얻은 한 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마태가 원한 것은 연대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보를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태는 지금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은혜를 이루시기 위해 오실 일을 예비하면서 그 주님이 오실 길을 예비한 인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별의 별 죄의 이야기들이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언약이 이들 중에서 이루어지고, 또한 아무리 죄인이어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었던 자들, 특히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회개할 수 있었던 자들을 통해서 계보가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요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빠졌다고 했습니다. 아하시야는 요람의 아들, 그런데 이 아들이 어떻게 이룬 아들이냐 하면 요람이 아달랴를 아내로 맞아서 얻은 아들입니다. 요람의 아버지 여호사밧은 선한 왕입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 북왕국의 힘이 커지는 것을 보고 그 북왕국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즉 아달랴는 북쪽 왕국의 아합과 이세벨의 딸입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집안입니다. 어머니 이세벨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입니다(왕상16:31). 엣바알이란 말은 ‘바알의 사람’이란 뜻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이란 것이고, <땅의 세계관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엣바알의 딸이고, 아달랴는 이세벨의 딸, 그의 아버지는 아합 왕. 그렇다면 그의 외할아버지도 왕, 그의 친할아버지도 왕, 아버지도 왕, 남편도 왕, 그야말로 모자랄 것 없이 손에 물 하나 안 묻혔을 로얄패밀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영혼의 기초가 무엇이었다고요? 바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땅의 세계관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역대하 22장에서 이렇게 들려줍니다.
대하 22: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북쪽 이스라엘에서 가장 악하다는 악독한 왕, 아합의 길로 이 아하시야가 따라 행하였다는 말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요? 그 어머니가 악을 행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바알의 사상, 땅의 세계관을 가지고 자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잘 되겠습니까? 전쟁에 나가서 왕이 된지 일 년 만에 죽습니다. 이때 아달랴가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아십니까?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모든 왕족 일가를 몰살시키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아이들, 손자들도 죽이고 왕이 됩니다. 6년 동안 여왕으로써 권세를 누리다가 제사장 여호야다를 비롯한 의인들에 암살 되었습니다. 이때 아달랴의 아들 중 숨어있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즉 손자가 요아스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왕 노릇 했습니다. 오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하게 행하였고 유대의 대제사장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 결국은 왕궁의 경비병에게 암살을 당하는 운명으로 끝납니다. 이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어 29년이나 다스립니다. 이 왕도 아달랴의 자손인 셈이죠. 그가 에돔의 우상들을 그 유다로 끌여들입니다. 북왕국과 전쟁을 일으켰다가 무참하게 패배하고 죽습니다. 아달랴 한사람의 결정적 실수는 바알의 우상을 자녀들에게 가르친 죄입니다. 하늘의 세계관이 아니라 땅의 세계관을 가르친 것입니다. 어찌보면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아달랴야 말로 이스라엘 그 유다의 왕정기 시대의 유일한 여왕입니다. 여왕으로서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했습니다. 하늘세계 하나님 나라를 거부했습니다. 자식들에게도 바알의 세계관을 전수했습니다. 결국 그녀 자신은 물론 그 자손들 세 명의 이름도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 예배하는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파되는 곳에서 나의 귀가 열렸다는 사실. 우리 부모님의 손의 손을 잡고, 교회로 인도함으로서 자연스럽게 믿음의 싹이 내 앞에서 내 속에서 피워졌다는 사실. 복음의 역사가 내 속에 살아있다는 이 사실, 이것이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참으로 큰 감사인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어떤 사람들은 핑계할지 모릅니다. 그 은혜가 내게는 해당되지 않고, 나는 못들었다고, 그런데 이미 그때는 늦습니다.
롬 1: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의 임재는 그 능력과 신성은 모든 만물을 통해 분명히 알려졌다 이 말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주셨습니다. 사람에게 양심을 주셔서 알게 하셨고, 영혼의 존재를 주셔서 그러하고 또한 만물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세계, 계시가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태초로부터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땅의 세계관에 속한 사람들, 땅에 속한 사람들, 땅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 진리를 거부합니다. 그 계시를 보지 않습니다. 알면서도 거부합니다.
롬 1: 21-25 그것을 우리에게 증거해줍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모른채 합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른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핑계가 많습니다. 또 한 가지. 핑계거리를 제공하는 우리의 잘못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정말로 오늘 내게 주신 은혜를 우리는 깊이 감사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자! 그로 인한 감사가 정말로 이 대림절에 또 성탄을 맞이하면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의 계보는 기다리는 자들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12-17절 본문에 이름들은 그 일대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고 언약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2천년을 이어 예수님께 이르렀습니다. 축복의 내용이 무엇인지 한번 확인해보시죠. 이것은 우리에게도 이어지는 복이기도 합니다. 창 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2000년을 이어가면서 이 약속은 예수님 앞에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다윗에게 이르렀고, 다윗으로부터 500년 동안 번영기 속에서 이어져 왔고, 바벨론 포로기를 거친 주님 오실 때까지 500년동안 이어졌습니다. 이 바벨론 포로기에서부터 주님의 시대까지 약 500년의 세월은 참으로 암담한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외세의 침략과 식민지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당시에 수많은 이단들이 생겨났습니다. 허다한 위경들, 그릇된 묵시록들, 이런 것들이 번성하였습니다. 폭군 에피파네스, 그런 폭군이 나타나 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암흑 시기였습니다.
오늘 기록된 이름들은 이 때, 바로 이 암흑의 시기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오래 참고 견디면서”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곡 중에 대부분은 메이저 코드의 음입니다. 그런데 마이너 곡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구주 강림을 대망하면서 부르는 104장의 노래, 노랫말도 그렇고, 곡조가 참 애절합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그 포로생활 고달파, 메시야 기다립니다. 곧 오소서 소망의 주, 만 백성 한마음 이루어, 시기와 분쟁 없애고, 참 평화 채워주소서. 물론 찬송이기 때문에 소망의 메시지로 소망의 찬양으로 마무리가 되죠. 기뻐하라 이스라엘, 곧 오시리오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은자들의 가장 큰 특징과 힘은 “기다림과 견딤”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힘이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때에 이르도록 주님의 때에 이르도록! 기다릴 수 있는 힘, 인내할 수 있는 힘,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므로 500년 동안 번영과 축복이 있었죠. 그러나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 500년 동안 암흑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를 선택하셨지만, 하나님의 목적, 그 천명은 여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만민을 향하여 그것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계시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계 1: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 나라, 나라를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 그 백성 우리가 그 나라 그 백성이라는 것이고, 우리가 제사장 되었다는 것입니다. 왕같은 제사장되어 우리의 제사를 통하여 백성들 만민들이 살아나는 역사를 이루도록 우리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명입니다. 오늘 나의 인생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어느 누군가에서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다리는 영혼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해야 됩니다.
롬 8: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들을 기다리는 피조물이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해결책은 우리 주님입니다. 인류로부터 인간으로부터 세상 만물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 바알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소 거칠지도 모릅니다. 귀가 닫혀있을지도 모릅니다. 핑계하기에 좋아할 수 있습니다. 그간 역사와 환경속에 하도 아프고 속고 살아오고 힘들게 살아와서 거칠긴 하지만 그 영혼 깊은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갈망하는 영혼의 신음소리가 있습니다. 그 신음소리를 우리는 들어야됩니다. 내 사명이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하나님 사랑, 나라를 삼으시고 제사장 삼으신 그 사랑, 그것이 흘러가지 않으면  썩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고, 피가 고이면 죽듯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신음소리를 내는 그 사람도 죽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영혼의 신음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영원한 계보에 오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 기다리는 자들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됩니다. 신음하고 탄식하는 자들이 주님의 계보로 이어가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 그 사랑이 내 속에 차고 차고 넘쳐서 전파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에 속하였고, 은혜로운 사랑을 누리고 있음을 감사합니다. 오늘 제 인생길이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해 있으므로 인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도 제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랑이 제 안에 쌓이고 쌓여 넘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럼으로 저와 우리 가정이 영과 육이 강건하여, 예수님 이름을 고대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존재의 의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핑계치 못할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그 은혜가 끊임없이 공급되어 오늘도 예배하는 자로 살아감을 고백합니다. 저에게 임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이웃을 향하여 향기로 나타나게 하시고, 이 나라 이 민족, 땅의 백성들이 저희를 통해 살아나는 그 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은 사람들 김창운 담임목사 201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