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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2017.12.03)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 1장 1-16절
 
 
본문 내용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Content

마 1: 1-16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죠? 오늘은 목장의 날이 있어서 여러분 주보 제4면에 보면 공란이 있습니다. WWW 123 여기에 설교 내용을 메모하면서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본래 교회력으로 말하자면 한 해의 시작이 대림절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사실은 교회력에서는 한 해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추수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한 해를 마감하고, 그리고 주님 오심을 감사하는 대림절로 한 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만 감사가 아니라, 대림절이야말로 감사입니다.
여러분 행복의 다른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행복의 다른 말은 감사입니다. 감사가 있지 않고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뒤집어 봐야 감사를 압니다. 여러분들 혹시 특히 여성분들 다이어트를 하십니까?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는데 혹시 나날이 살이 더 쪄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근데 속상해서 다이어트, 다이어트 하는데, 안돼서 막 화가 나고 그렇다면, 뒤집어서 생각해보십쇼. 내가 그만큼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겁니다. 10대 사춘기 자녀들이 맨날 집에 들어오면 불평하고, 신경질내고, 늦잠이나 자고, 게임이나 하고, 뭐라고 하면 대들죠? 뒤집어 보면 가출안하고 집에 있어서 다행인 것입니다. 주말이면 남편이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 붙들고 티비하고만 붙어있고, 먹을 거 내오라 이런 거 저런 거 주문하면 꼴보기 싫은 분들 계시죠? 뒤집어 보면 그래도 내 옆에 있어서 감사입니다. 밖에 나가서 돈 안 쓰고, 허튼 짓 안하고 집에서 이렇게 소박하게 놀고 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여러분, 정말로 감사 아닌 일이 없습니다.
대림절이 감사한 것은 우리를 위해 오신 주님을 깊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라는 사도가 비밀스런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본래 갈릴리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세관에서 근무하는 세관원 세금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과 동행했는데 평생 내내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이 분은 성격이 외향적이고 행동적이라기보다는 내향적이고 관조적인 성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글 쓰는 사람의 시선처럼 주님의 행적을 열심히 관찰하였고 또, 기억하였고 그것을 이 필력으로 남겨 놓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가 기록한 예수님의 이야기, 첫 서막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유대인들은 대단히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한 만큼 족보를 대단히 중요시 했습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신자들, 특히 처음 믿는 새싹 신자들이 이 마태복음 성경 읽기에 도전했다가 초장부터 이 낳고 낳고로 기록되는 이거 ‘이것을 과연 읽어야 되나’ 싶은데, 이 계보 속에는 비밀스럽지만 어마어마한 은혜가 들어있습니다. 이 대림절 기간 동안 저와 여러분들이 이 계보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1절 말씀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먼저 들려줍니다. 그러므로 이 계보에서 알게 되는 첫 번째 메시지는 첫째로 예수님의 계보는 왕의 계보라는 사실입니다. 모두들 다윗 왕을 잘 알고 있습니다. 6절부터 그 이름들을 쭉 보시겠습니까? 다윗에 이어서 솔로몬, 르호보암, 아비야, 아사, 여호사밧, 요람,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고냐까지. 이 모든 이름들이 무슨 족보입니까? 왕의 족보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가계가 아브라함과 다윗 왕으로부터 이어져오는 왕의 족보라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7장에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창 17: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이 말씀은 아브람이 99살 됐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언약의 말씀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에 유다가, 요셉이 아니라 유다가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이유,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메시야 왕권을 약속 받았기 때문입니다. 창 49:10에 보면, 야곱이 유다를 축복할 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규라고 했고 지팡이라고 한 것이 왕을 뜻합니다. 말씀대로 유다의 후손 중에 다윗 왕이 있었고, 그 왕족의 씨에서 예수님이 나신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유대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이런 질문을 하죠. 왜 당신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습니까? 그러자 유대인이 말합니다. 어떻게 저 높고 높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신으로 믿지 않습니다. 이 목사님이 이 대화에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됐습니다. 절대적으로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죄인들을 구하시고자 인간의 몸으로 오실 만큼 사랑의 하나님인 것, 이 사실을 유대교에서는 믿질 못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기록한 요한복음에 보면, 로마 총독 법정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요 18:37. 다같이 이 말씀을 한번 읽어 보실까요?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늘의 왕이신 주님이 또한 인간의 왕의 혈통에 오셨습니다. 왕의 혈통에 오셨다고 해서 높고 화려한 왕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낮고도 낮은 구유에 오셨습니다. 여기에 여러분 진리가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와, 현재 한 200여개 나라에는 수많은 왕들이 있었고 또 대통령, 고관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보면 훌륭한 왕도 있고, 그렇지 못한 왕도 있습니다. 훌륭한 왕, 못 된 왕 기준은 하납니다. 훌륭한 왕은 백성을 위해 왕이 존재했던 그 왕입니다. 백성을 위해서 왕이 존재했던 왕. 못된 왕은 어떤 왕이냐, 반대로 백성이 왕을 위해 존재하는 체제 그런 왕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나라에 가뭄이 들고,  백성이 굶주리고 있을 때, 백성을 위해서 같이 금식을 하며 기우제를 드렸던 왕이 있었습니다. 어떤 왕은 전쟁이 나서 가마를 타고 피난을 하는 길에, 오늘처럼 비가 와서 땅이 진흙탕이 되자 그 가마를 들고 있던 가마꾼들이 쩔쩔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 백성은 임금이 길을 가는데 이 진흙 밭에 엎드려 주는 자가 없단 말이냐!” 여러분, 어떤 왕도 인간에 불과합니다. 훌륭한 왕도 못된 왕도. 어떤 지도자들도 다 인간에 불과합니다. 어떤 대통령도, 어떤 총리도. 참되신 왕은 오직 주님뿐인 것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사람들을 위해 진흙탕이 아니라 낮고 낮고 낮은, 그 죽음의 자리까지 친히 와주시는 왕이 우리 주님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계보는 구속사의 계보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심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태초 에덴동산 때부터 있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단의 상징인 뱀을 저주하면서, 창세기 3:15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같이 함께 읽어보실까요? 합께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여자란 말은 일반 여성이기도 하면서 결정적으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뜻합니다. 즉 마리아로부터 태어난 자가 사단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다 이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을 보고 그 언약의 때가 차서 오신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갈 4:4-5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때가 임하여, 예수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오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2절 말씀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낳고, 낳고, 낳고.’ 여러분 이 낳음의 역사속에 전체 마흔 두 번으로 이어지는 이 “낳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었습니다. 뜻이 있었습니다.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비밀이 숨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구속의 은혜입니다. 이 계보는 구속의 계보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우리 한 번 다시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옳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지 않으십니다. 옳으신 하나님의 역사 운행은 한치도 빈틈이 없으십니다. 구속의 은혜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구원이란 말과 구속이란 말을 우리가 쓰는데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영어에서도 구원은 salvation 이라고 했습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redemption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이란 노예 상태, 혹은 어떤 위험한 상황 거기에서 구하여 준다 이런 뜻입니다. 구속이란 보다 구체적 행위가 담겨있는 뜻입니다. 구원을 하되 그냥 하는 거시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비싼 값을 치러, 대신 치러 구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속하실 때, 희생과 헌신의 죽음의 값을 내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엡 1: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엡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명을 낳고, 낳고 낳은 것 같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구속의 맥을 이루어 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역사를 귀히 여기십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는 이 위대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창조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시고, 구속의 역사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또 낳는 일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요 이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아까 그 유대인의 말을 듣고 목사님이 다시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에는 유대인 당신들이 믿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분의 뜻대로 살고자 헌신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0년 역사에 기독교는 그 수가 점점 늘어났는데, 유대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이 유대인이 말합니다. “당연하죠. 기독교는 열심히 전도하니까요. 전도하니깐 믿는 사람이 늘어갈 수밖에 없죠. 우리는 전도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만 하나님 믿으면 되지 다른 민족까지 믿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목사님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유대인들은 만백성, 인류 온 민족을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는 하나님, 즉 유대인의 하나님으로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계보는 이어져 가고 또 이어져 갑니다. 우리 민족 속에서 타 민족 속에서 여러 민족들 낳고, 낳고 낳는 생명들 속에서 말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 속에서 생명이 생명으로 이어지고, 낳음의 역사 속에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위대한 구속의 역사를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님의 계보는 성도에게 이어지는 계보입니다. 성도에게 이어지는 영적 계봅니다. 여러분 모두는 부모님이 계실 것입니다. 그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그 위에 부모님이 계시고 그 위에 부모님이 계십니다. 모두가 가계의 족보, 계보를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나라도 유대인처럼 족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중에 여러분들은 종친회를 맡아서 종친회의 중요한 일을 맡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들 여러분 가문 뼈대 있고 소중한 가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래봬도 제가 왕족이라고 들었습니다. 에 몇몇 분은 그리 안 보이는 모양인데, 어쨌든 그렇습니다. 근데 여러분 사실 왕족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김 씨는 신라의 왕조요, 가야의 왕조입니다. 박 씨는 박혁거세의 후손이요, 이 씨는 조선의 왕좁니다. 따지고 보면 사돈의 팔촌에, 서로 연을 맺으며 살아온 가문에 왕족 아닌 집안 없고, 귀족 아닌 집안 없고, 양반 아닌 집안 없을 것입니다. 훌륭한 어른들,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자랑이 되고 있다면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을 똑바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 다윗의 자손 그리고 뭐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고로 이 구절은,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요 선포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4:2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함께합시다. 요일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속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에 속해 있었고, 세상의 영에 속해 있었습니다. 세상의 영은 멸망의 영이요 죽음의 영입니다. 멸망의 영에 속했던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된 이 사실은 놀라운 전환입니다. 인생 신분의 변화요, 인생 목적의 변화요, 인생 존재의 변화요, 인생의 계보의 변화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이렇게 전해줍니다.
다 같이 한 번 읽겠습니다. 함께 합시다.  갈 4:6-7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하게 된 것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라 딸이라 부르신다는 겁니다. 세상의 혈통은 죽음과 멸망의 자리로 갑니다. 그러므로 그 혈통과 가계의 종이었던 자리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의 딸,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혈통으로는 부모에게 태어나긴 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혈통이 아니라, 주님 혈통으로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유업, 세상의 유업 유산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유업 하나님이 주시는 유산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들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좋은 집안이지만, 부모형제 간에 불화가 끊이지 않고, 불안불안한 가정에서 자란분도 계실 것입니다. 기독교 집안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서는 큰 갈등이 있고 어려움들 불안함이 있는 그런 가정들도 있습니다. 또 우리 중에는 자녀들이 말썽을 피워서 속이 속이 아닌 그런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이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으면, 더 이상 나는 땅의 계보가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엄밀히 말해서 내 자녀도  주님을 믿게 되었다면 이 아이는 더 이상 나의 계보가 아니라 주님의 계보에 들어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게 된 순간 우리는 땅의 계보를 떠나 주님께 속하게 되었고, 세상의 연이 끊어진 것입니다. 세상은 죽음으로 가고, 멸망으로 가고 있기에, 그 연은 끊어지고, 주님의 연으로 이어져 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제는 우리 부모와 단절하고 인연을 끊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십계명에 명령하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신 말씀,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신 말씀. 이제, 예수의 계보에 속한 나는 나를 이 땅에 낳아주신 혈육의 부모가 얼마나 고마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술 주정뱅이라, 가난하다, 못낫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되물림 되지 않습니다. 옛날 유럽에 교양있고 부유한 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근데 사람들이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머님이 선생님을 태어나다가 돌아가셨다고 했고, 아버지는 매일 노름과 술주정으로 당신을 제대로 돌보시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인생으로 성공하셨습니까? 이 사람이 말하더랍니다. 당신의 말처럼 우리 아버지는 매일 술독에 빠져 살았고, 노름을 하고, 새벽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새벽에 술 취하고 들어오셔서도 내 방에 들어와서는 잠자는 내게 내 뺨에 뽀뽀를 하면서 아빠는 널 정말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들 잘 자라 이 말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러분, 참된 자유는 예수님의 계보에 내가 속해 있는 데 있습니다. 내 부모님이 폭력뿐이었든, 사기꾼이었든, 강도였든, 감옥에 갔다 왔든, 바람둥이었든, 내 어머니가 재혼녀였든, 첩이였든, 과부였든, 심지어 창녀였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나는 예수님의 유업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계보 속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42명의 인물들 모두가 죄인입니다. 이 계보 속에 숱한 죄인들의 이름들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오늘 주님의 계보에 기록된 이 42명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가장 위대했던 왕 다윗 조차도 시편 51:5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부모님도 죄인이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도 허물 많고 부족한 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머릿속에 새겨 넣은 부모님은 이래야 한다는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빌 5:9-10에 바울은 이렇게 들려줍니다. 빌 5:9-10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주님에게 모든 영광을 다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 사단의 세력들, 땅에 있는 어떤 권력과 모든 만물들, 땅 아래 저 지옥 스올에 있는 자들까지도 모든 무릎은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무릎이 주 앞에 꿀렸습니다. 아직 안 꿇린 것 같은 무릎도 결국은 머잖아 곧 꿇리게 되어있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믿게 된 우리는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업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오늘 우리의 족보를 분명히 정비하십시다. 세상에 나가서는 내 족보를 따르고 주일 날 와서 예수님 족보 되고, 이거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의 고백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우리의 존재를 발견하고 정비해야 합니다. 빛나는 가문도, 아픔을 준 가정도, 죄인이요, 죄의 혈맥입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그것만이 진리입니다. 그 계보에 속한 은혜를 발견하고 또 발견하시고 하늘의 생명을 이어가고 또 이어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유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계보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나를 구속하시기 위해 친히 오시는 예수님을 감사합니다. 땅의 혈통과 땅의 권세와 욕망에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계보에 속한 인생이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계보에 속하였음을 기뻐하오니, 세상에 어떤 죄 된 것에 매이거나 끌려가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실 유업에 합당하도록 참된 자유와 소금과 빛의 소명을 한걸음, 한걸음 감당하게 하옵소서.
은혜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아름답고 좋습니다. 세상에 좋은 일도 있고 아픈 일도 있고, 좋은 왕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에서 웃을 일도 있고 울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하였음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가 진리를 발견하고 새 생명의 길을 발견합니다. 주여 이제 예수님의 구속을 인해 영적인 붙들었으니, 확실히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어떤 유업보다 하늘에 속한 자, 하나님의 유업을 바라보고, 붙들고 사모하며 기대하며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믿음의 가족들 붙들어 주시되 혹 그 가정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하지 못한 이가 있음으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고 혹은 불안하고 또한 간절한 또한 사모하는 이들이 있사오니 주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나날이 더해가는 역사가 있도록 생명이 생명을 낳는 역사가 있도록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김창운 담임목사 2017.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