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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2017.11.26)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10장 1-16절
 
 
본문 내용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Content

행 10:1-16 제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210. 304
영국의 철학자 여러분들 많이 들어보셨던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라는 분이 있죠. 이분이 장수했습니다. 98세 거의 1세기를 살았던 분입니다.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이죠. 그는 이런 책을 썼습니다. <왜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래서 이 책에서 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떻게 자신이 그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비참하게 못 박아 죽이는 그 아버지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렇게 잔인무도한 하나님 그런 분이라면 난 믿을 수 없다.’ 이 사람이 살았던 시대가 19세기 후반 20세기까지니까 사실 1900년도 초반에 일차대전이라고 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죠. 구백만 명이나 사망했습니다. 1900년대 중반에는 이차대전이 있었습니다. 5천만 명이나 희생되는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들이 있었죠. 바로 그런 역사의 현실을 보면서 비관과 혹은 회의감이 그에게 있었을 것이라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지성과 그 총명을 하나님의 뜻을 가리는 일에 쓰인 것이 자신의 이성으로 하늘나라를 가리려 했다는 면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로마서 3:10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치우쳐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연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서 나오는 생각은 죄의 생각들입니다.  그 한계가 있습니다. 선행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나는 주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만 주님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옳으십니다.>하는 것이죠. 지난주에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함께 고백했던 말입니다. 한번 더 따라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만이 옳으십니다.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우리의 좁은 생각을 초월하시고, 제한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가이사랴라고 하는 곳에 고넬료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가이사랴에는 부대가, 소위 대라고 하는 것이 5개가 있었습니다. 한 대가 몇 명인가? 천여 명으로 보면 맞겠습니다. 그러니까 다섯 대니까 5000명가량의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이달리야대는 로마출신 군인이고, 나머지 4대는 로마 외에 시리아 주변 나라들 출신의 소위 용병들, 군인들, 지원병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는 로마출신 정통파 군인입니다. 그리고 백부장이라고 한다면 일개 중대의 지휘관 급, 아마 지급 계급으로 한다면, 아마 대위급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0:2에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경건하였다. 온 집안이 다 하나님을 경외했다. 이것은 이 사람이 로마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유대교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신앙으로 개종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회당을 다니면서 유대인의 신앙을 따라서 신실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 구시, 환상을 보았다고 했죠. 구시. 우리는 항상 성경의 시간에는 6을 더하면 오늘 우리 시간과 맞다고 했습니다. 오후 3시입니다. 이때 고넬료가 환상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 시각은 고넬료가 항상 기도하고 있는 유대교의 전통을 따라 기도하고 있는 시간에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천사가 임했다고 했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4절 중반부터 보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된 바 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천사의 환상을 보고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보시고 택정하셨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이방인을 향한 새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한 사람을 청하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를 그가 욥바에 있으니, 그를 모셔오라는 것입니다. 요나서를 생각나게 하죠. 욥바. 요나가 피신해서 도망가던 항구, 그 욥바. 항구 도시입니다. 과거에는 이 시몬 이 사람을 무두장이라고 안하고 피장이라고 개혁성경에는 했었습니다. 가죽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가죽제품이 명품들로 보통 이해가 되죠. 당시에는 가죽 일을 하는 것이 죽은 짐승을 잡고 피를 묻히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천박한 사람들이 하는 일, 부정한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이 무두장이 집에 머문 것은 좀 의아스러운 일입니다.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직업상에 귀천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천사의 말을 듣고 즉시 사람을 보내었습니다. 경건한 부하 한 명, 또 하인 두 명, 이렇게 세 명을 보내었습니다. 이 세 사람이 욥바성에 닿을 때쯤에, 한편 사도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 시장한 참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의 세심하고 완전하신 손길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시장했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픈 중에 기도실로 올라갑니다. 밑에서는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도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아마도 환상 중에 본 대단히 큰 그릇으로 보입니다. 보자기처럼 네 군데가 메어져서 쭉 내려오는데 거기에 각종 짐승들이 있습니다. 각종 네발 달린 짐승들, 기는 것, 공중에 나는 것들이 다 있다고 했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먹어도 되고 먹지말아야 될 금 짐승들이 구분이 있죠. 정결한 것, 부정한 것이 있었는데, 이 보자기에는 그런 것들이 다 뒤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납니다. 베드로에게 하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일어나 잡아 먹어라!” 이 모든 걸 다 잡아먹어라. 그릇에 있는 걸 다 먹어라.
하나님의 세심한 손길이라고 했죠? 베드로가 배가 고픈 시점입니다. 이제 고넬료의 하인들이 거의 다 다다른 시점입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며 영적인 거룩함을 닦고 하나님과 만나고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멋지고도 완벽하게 당신의 일을 진행해 가고 계십니다. 베드로가 하늘에서 이 음성을 듣고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그럴 수 없나이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베드로가 늘 한 성격하는 거 알고 계시죠?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의 길을 간다 하실 때, 아니되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실 때, 아니되옵니다! 제 발은 못 닦습니다. 한 성질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일어나 먹으라! 잡아 먹으라! 아니되옵니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결코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할 수 없느니라.” 이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환상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 역사에 대단히 소중한 사건이 됩니다. 이 환상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초월하여 일으키시는, 초월하여 일하시는 사건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은혜는 베드로의 생각을 초월하셨습니다. 욥바에서 베드로가 당한 일, 베드로가 행한 일들을 사도행전 9장에서는 참 아름답게, 또 신령하게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대단히 능력 있는 사도입니다. 중풍병으로 누워 있는 애니아를 일으켰습니다. 죽음에 이른 다비다를 살려냈습니다. 질병도 물리쳤고 죽음도 이기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린다고, 치유,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이르기 전에 다 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주님 만나기 전에는 다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었다 싶을 때, 그 때 조심해야 합니다. 다 된 줄로 알고 있으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즉시 넘어지는 존재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만큼 위대한 사도였지만, 아직 부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보다 더 위에 계셨습니다. 무두장이 집에 유할 만큼 직업에 차별은 극복하였지만, 여전히 그는 유대인의 틀에 갇혀 있고 자기의 자아에 갇혀있습니다. 어찌보면 오늘 우리가 읽는 사도행전 10장은 많은 사람들이 고넬료의 회심 사건이라고 하지만, 실은 베드로의 회심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9절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에 사울의 회심 사건을 읽으며 회심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일시적, 단기적 사건이 아니라,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속되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회심의 정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고 함께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0장 17절 말씀에는 베드로가 이 환상을 본 후에 의아해 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적으로 당혹스러워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향해 꾸짖듯이 그의 심령의 틀을 깨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왜 속되다 하느냐!” 여러분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편견에 묶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편견에 묶인 채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서 나를 볼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베드로에게 ‘너의 편견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하십니다. 네가 옳으냐?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주는 말로 너의 심령의 틀을 깨뜨려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헤아리려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들여다보라 하십니다. 요한복음 13:34에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때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사람은 성도된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여전히 육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를 깨끗케 하셨으니, 그를 속되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요, 이 사람의 인격과 영혼은 하나님께서 그를 향한 방법, 그만의 방법으로 지도하시고 인도하시며 거룩함을 이루어가시고 천국까지 지금 이끌어 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직책을 가지고 있고, 혹은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개혁교회, 개신교회 새로운 종교 개혁을 말하는 자들이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오늘날은 신교가 구교화 되었다. 개신교가 옛날 구교처럼 되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제도와 혹은 교권과 틀에 박힌 또 하나의 편견이 지배하면서 말씀의 역사가 온전히 나타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말씀 속에서 나의 죄를 보아야 하고, 내게 주신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 말씀으로 나를 비추어 그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19, 20절 말씀에는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너를 찾으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지시합니다. 여기 ‘의심하지 말고’는 주저하지 말고 가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말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구별하지 말고’ 가라는 뜻입니다. 네 맘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을 구분 짓지 말고 내 시키는 대로 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우리 전도대가 참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1부예배때 보면, 우리 나사렛부도 참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녀노소 차별없이, 누구든 하나님의 귀한 영혼들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섬기고, 전도하고, 아끼고 나누는 모습이 참 귀해보입니다. 우리 교회도 크리스라는 미국인 출신, 또 우리 예배자리 메간, 우리 프랑스 출신, 외국 출신분들도 계신데,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하늘의 음성을 듣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를 초월하고 새일을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고넬료의 생각도 초월하십니다. 고넬료는 안팎으로 칭찬이 자자한 사람입니다. 말씀 드린대로 로마 정통파 군인, 그런데도 유대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경건했고, 구제했고, 신실하게 기도했고 온 유대족속이 그를 칭찬할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22절) 그러나 아직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을 몰랐고 성령도 몰랐습니다. 예수 없이 착한 사람, 가장 어려운 사람입니다.
베드로가 그를 영접하러 온 하인들과 고넬료의 집, 가이사랴로 올라오게 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올 때, 마치 하늘에서 온 방문객을 맞이하듯이 영접합니다. 그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는 영적인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영접하고 환대하는 모습, 이것은 하늘의 모습입니다. 그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마 13장의 말씀에 비유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좋은 땅에 좋은 밭에 해당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는 주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온 가족들을 다 모아서 그 발아래 엎드리는 심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그는 유대인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다. 가이사랴의 회당에 다니는 그 신앙, 그것이 전부라 여기고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가 전하는 참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그의 믿음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36절 말씀 보면, 이스라엘 자손만의 주가 아니라, 만유의 주, 온 우주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듣게 됩니다. 이어서 그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득하신 분이요, 그 성령님의 오심에 대해서 증거를 듣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의 역사가 이제 이어지고 있는 그 증언을 이들에게서 듣습니다. 이일은 지금 당장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오래전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되었고, 이제 성취되고 있는 일이란 사실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주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의 은총, 천국에 가게 되는 일 그것도 듣게 됩니다. 그야말로 고넬료로서는 새 세계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틀림없이 그가 모든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있는 바로 이 때 감사함으로 엎드린 바로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4-46절 말씀, 다 같이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내려오심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베드로가 놀랐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한 성도들도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습니다. 바로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해서 유대인과 함께 놀란, 가장 놀란 사람, 그 사람은 틀림없이 고넬료와 그 가족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날 그 사건이 여기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고, 또한 새로운 세계를 그 앞에 펼쳐가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이 사람들에게도 세례가 가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완전하신 은혜의 언약은 결코 제한할 수 없습니다. 만유의 주인, 만민을 향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그것이 이루어지고, 고넬료의 가정은 이제 이방인 중에 천국에 길이 열리는 첫 가정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도 초월하십니다. 우주에 가득하시고 이 시간과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의 모든 중력을 뚫고 바로 당신을 향하여 바로 당신을 향하여 광선을 쏘아 대듯이 그 우주를 뚫고 우리에게 지금도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쏟아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에 대하여 우리의 작은 머리만큼 밖에 이해를 못합니다.
1963년,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참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재봉 사건이라구요. 고아로 자란 이 사람은 시골에서 자라고 다 가난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늘 배고프고 힘들게 컸고,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그가 군대에 입대하게 됐는데, 그가 당시의 부대장인 박 중령의 집에서 그 관사에서 당번병일을 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것입니다. 늘 배고픈 시절이었으니,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나오다가 그 부엌에 있던 동태 한 마리하고 또 먹을 것을 좀 가지고 훔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 든 음식물을 보고 가정부가 그것을 보고 소리, 소리 지르니까, 자기가 작업을 하던 도끼를 들고 좀 조용히 하라고 위협을 했습니다. 더 큰소리를 지르고, 그가 그만 체포되고 맙니다. 군법 법정에서 살인미수혐의로 감옥으로 가게 됐습니다. 군대감옥이 참 어렵습니다. 군대 감옥에서 실형을 살고 나옵니다. 그리고 군복무를 하는데 군생활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 박중령이라는 사람이 사사건건 이 고재봉을 괴롭힙니다. 고재봉씨에게는 사랑하는 애인도 있었습니다. 가끔 편지를 보내오는데, 군대에서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반갑습니까. 그런데 이 박중령이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서 먼저 뜯어서 다른 병사들 앞에서 모욕을 주면서 일고 참으로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군화발로 그의 머리를 짓밟고, 많은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애인도 변심을 하고 그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고아로 자랐습니다. 아무 의지할 데도 없고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 너무도 절벽 같은 이 인생을 바라보며 앞도 뒤도 생각이 안나서, 그만 탈영을 했습니다. 술을 잔뜩 마시고 탈영을 해서 박중령 집을 찾아가서 도끼로 그 일가 5명을 몰살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건을 치르고 도망을 했는데, 그가 죽인 사람은 박중령이 아니라 이중령이라는 가족이었습니다. 관사가 이전된 것을 모르고 잘 못 죽인 거예요.
자 여러분, 이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재봉은 도둑질을 했고 살인도 했으니 죄인임에 분명하죠? 박중령은 그 때 위기를 모면했으니 하나님이 그를 살려준 것이죠? 그럼 이중령의 죽음은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이성이 이것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집사님이 있었는데, 이분은 부동산 얘기가 나오면 발끈발끈 화를 냅니다. 정부를 비난하고 이 사회를 비판했습니다. 교회서도 누가 부동산 얘기만 하면 왜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부동산 타령이냐 왜 부동산에 목을 매느냐고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말씀 가운데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과 말과 습관을 말씀 중에서 비추어 보는 훈련을 합니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이게 다 자기 감정 탓입니다. 자기가 땅을 지방에 사둔 게 있는데, 가만히 보니 그건 하나도 안 오르고 저 멀리 서울 근교에만 땅값이 오른다고 마음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감정문제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따라서 판단도 하고 생각도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주변에 보면 ‘너는 이게 문제다!’라고 늘 지적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매사의 표현이 비판과 비난을 잘합니다. 그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여러분 그것은 자신을 선하다거 여기는 걸까요? 나는 달라질 필요가 없고, 너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초월하십니다. 베드로의 틀을 전환하고, 고넬료의 신앙 틀을 깨뜨려 펼쳐주듯이, 우리에게도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 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갖다 맞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내가 맞추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고재봉은 살인 사건, 한 달 만에 붙잡혔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그 사람이 모질어 지고 악에 받혀있던지, 간수가 감옥에서 자기를 쳐다봤다고 왜 쳐다보냐고 두 손가락으로 간수 눈을 찔려서 피가. 얼마나 참. 모질게 살아오고 있습니까? 그 곁에 있는 모든 감옥 사람들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수많은 사건 들이 있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한통의 편지가 날아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편집니다.
고재봉 아저씨, 사람들은 아저씨를 살인마라고 부르면서 무서워 하지만 저는 아저씨 사진을 봤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아저씨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진짜 마음으로 그런 것이 아니죠?
교회에서 들었는데,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도 사형을 당했대요. 그런데 교회 선생님 말씀이 그 강도도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되었대요. 죽을 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래요. 그러니 아저씨도 꼭 예수님을 믿으세요.
실은 제가 어제 친구들과 싸움을 했거든요. 친구들은 아저씨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고 저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아저씨 저는 요즘 아저씨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예수님께 기도해요. 아저씨도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저처럼 꼭 기도하고 주무세요. 또 편지 드릴께요.
어느 목사님도 편지를 했다고 합니다.
고 군에게 눈물로 호소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지옥에 갈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특히 고군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이런 기도와 사랑의 편지가 고재봉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제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사로잡았고, 그의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옥중에서 그는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은 고재봉이 밤새워 성경을 읽는다는 소문이 감옥에 파다하게 퍼집니다. 감옥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예수를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갈 때 사형이 2년이나 연기 되었습니다. 그 2년 동안 그는 숙소를 돌면서 전도를 합니다. 특히 강력범들 숙소를 돌아다니면서 전도를 했는데, 무려 3천명이나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 전도할 땐 이렇게 했답니다.
“야. 내가 사형 선고 받았는데, 너 하나 죽인다고 해서 무슨 더 큰 벌 받겠냐? 너 나한테 맞아 죽을래, 아니면 예수님 믿을래!” 첫날 전도한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됐다고 합니다. 그가 점점 달라져서, 정말로 많은 영혼들을 사랑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많이 전도 했을 때, 어느 성도들보다 어느 목사님보다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중령의 식구들에게 남은 자녀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가까워지는 날 사형집행이 가까워오고 있을 때, 이중령, 그집을 향해서 편지를 보내고, 그리고 마지막 소원을 묻게 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찬송을 한 곡 부르고 싶은데, 그 찬송을 부르면서 내가 웃고 있을 때 사형을 집행해주십쇼. 내 인생 그동안 늘 찡그리고 억세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제 예수님 만날 때에는 내 웃으면서 예수님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때 부르는 찬송이 여러분 많이 좋아하시는 493장에 <하늘가는 밝은 길이>, 이 찬송입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해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 활짝 웃으며 그의 생이 마감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고재봉이 실수로 죽인 이 중령의 죽음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요? 그로인하여 변화된 고재봉이 삼천 명의 영혼을 회개케 하고 전도되는 일에 우리 이중령의 죽음도 쓰임이 되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고재봉은 이 중령의 가족에게 사과할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사죄하며 이 사회속에 영혼을 변화시키는 일에 누구 못지 않게 귀히 쓰이고 하늘의 품에 안겼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지식도 아니었습니다. 정죄는 더 더욱 아닙니다. 아이들도 꾸지람을 들으면 마음만 사나와지는 법입니다. 누가 누구를 판단하겠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사랑, 주님의 복음을 전한 사랑이 이 살인마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내가 옳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습니다. 하나님만이 옳습니다. 오늘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위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쏟아 부어주시는 여러분을 향한 은혜는 여러분의 생각을 뛰어 넘습니다. 우리가 감히 제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더 깊어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참으로 선하신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 사건. 이것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내가 판단하고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사람들을 판단하려 든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내 속에 제한되어 버릴 것입니다. 땅 끝을 향해 가시는 천국을 막지 마십시오. 우리의 좁은 이성의 손으로 이성의 눈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믿으십시다. 다 알 수 없어도 아멘으로 수용하시길 바랍니다. 다 헤아릴 수 없는 그 은혜에 겸손히 순종하심으로 감사와 찬양의 일들이 저와 여러분들 위에, 여러분들 가정과 우리 교회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초월하시고, 내 생각이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내 속에 임하셔서 그 초월적인 사랑을 이루어주시고, 내 가정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를 성취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땅 끝을 향해 임하시는 하나님의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오늘 저와 이 땅에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희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를 쓰시고, 교회에서 가정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스스로 제한하지 않게 하셔서, 거룩함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옵고, 천사도 흠모하는 이 사명, 오늘도 복음의 전파와, 성령의 임재와, 천국의 비밀을 살아가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고, 또한 그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옳으신 하나님께 감사 김창운 담임목사 2017.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