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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으신 하나님께 감사 (2017.11.19)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창세기 50장 15-21절
 
 
본문 내용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Content

옳으신 하나님께 감사
오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올 한 해 동안 추수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감동스런 이야기 중의 하나인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감사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요셉은 가장 닮고 싶은 인물입니다.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아이가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에게 미움을 삽니다. 그 형들이 이 아이를 인신매매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당대 최고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애굽이라는 나라의 국무총리로 일약 출세를 해서 세상에 등장합니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합니까?
그래서 현재 우리 주변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도 강요셉, 김요셉, 곽요셉, 박요셉 특히 목사님들 중에 이 요셉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요셉은 그 이름의 뜻, 더하신다, 더하여 주신다는 말처럼 풍성한 복이 있어서 다들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에 이면에, 그 이면에 있는 스토리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요셉은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즉 야곱의 아들인데 야곱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자랍니다.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혔다고 했습니다. 우리 과거 문화로 보자면 형들은 마치 평민, 양인(良人)들처럼 무명옷이나 광목천으로 옷을 대충 입는데, 이 요셉만큼은 늘 상 귀족양반들이 입는 비단옷, 때때옷 이런 것을 입고 다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그는 꿈꾸는 아이로 통했는데, 하루는 자신의 곡식 단은 일어서 있고 형들의 곡식 단은 자기 단에 둘러서서 절을 하는 꿈을 꿉니다. 또 하루는 저 하늘의 해와 달, 별들이,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꿉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포함해서 온 가족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고 이런 꿈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삽니다. 시기를 받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창 37:11).
하루는 야곱이 요셉에게 심부름을 보냅니다. “얘, 요셉아, 네 형들에게 좀 다녀와야 되겠다.”  형들이 양을 잘치고 있는 지, 별일은 없는지 아버지를 대신해서 순찰을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을 붙들고 요셉이 형들을 찾아갑니다. 머나먼 곳, 겨우겨우 찾아갔는데, 형들이 그 요셉을 보자마자 미워하던 차에 ‘잘 됐다’ 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사정사정하고, 살려달라고 하는 이 동생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있을 때 유다가 형제들을 만류해서 미디안 상인에게 팔도록 제안합니다. 결국 이 상인들에게 이끌려서 요셉은 애굽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애굽 왕의 친위대장 집의 노예가 됩니다. 요셉이 그 집에서 신실한 마음으로 섬기자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얻습니다. 그래서 모든 소유를 주관하는 가정 총무가 됩니다. 그런데 그 주인에게는 음란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요셉을 보니 성경말씀대로 용모가 출중하고 아름다운 청년이라서 이 여인이 이 요셉에게 반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유혹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아무도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이 여인이 요셉에게 아주 노골적인 유혹을 하다가 요셉이 이를 뿌리치자 누명을 씌웁니다. 그리고 결국 요셉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인생이 왜 이렇습니까? 감옥에서도 요셉은 그럼에도 주어진 일을 신실한 태도로 맡아 합니다. 그러자 간수장에게 신임을 받고 옥중의 제반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곳 감옥에서 바로왕의 직속 신하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꿈을 풀어줍니다. 요셉은 이 때, 꿈을 잘 해석하는 신령한 인물로 그들에게 각인이 됩니다. 그리고 2년 후, 애굽 왕의 꿈을 해석하는 자리에 부름을 받아 나갑니다. 애굽 왕 바로의 꿈에서 장차 7년 동안 풍년이 있을 것이고, 그 후에 7년 동안 흉년이 있을 것을 내다보고, 요셉은 그에 대비한 대비책까지 제시합니다. 바로왕의 큰 신임을 받고 그를 총리로 발탁시킵니다. 창세기 41장 42절 말씀에는 바로가 이 요셉에게 총리로 발탁시키면서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워주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혀주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형들에게 채색 옷을 빼앗긴 후에 노예로 죄수로 살았기 때문에 벌거벗고 살고 있었을 이 요셉에게 13만에 다시 세마포와 금 목걸이로 옷을 입는 장면인 것입니다.
바로의 꿈대로 7년의 풍년이 있었고 이어서 7년의 흉년이 들게 됩니다. 이 흉년은 저 가나안 땅까지 퍼져나갔습니다. 결국 흉년 2년차 째에 형들이 이 애굽의 궁을 찾아옵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요셉이 여기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형들을 만나는 요셉의 모습, 형들을 대하는 요셉의 모습, 그토록 자신을 시기했고 죽이려 했던 형들을 고단하고 고단했던 노예살이 감옥살이의 원인이 되었던 이 장본인. 이들을 대하는 요셉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 45:4-8의 말씀은 읽을 때마다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데 4, 5절 말씀만 우리 한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4-5).
믿음의 눈으로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고백이 여기 담겨 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과 많은 민족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형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이어서 아버지와 형제들이 안전하고 비옥하고 땅 고센 지역에 살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야말로 요셉은 일가를 살려낸 효자입니다. 만민들을 살린 영웅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는 귀한 영적인 기둥입니다.
야곱은 애굽에서 살다가 애굽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나이가 147세였습니다. 그가 130세에 애굽에 들어왔기 때문에 17년 동안 살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마친 후에 야곱의 그 형제들, 요셉의 형들에게 근심이 생겼습니다. 요셉을 팔아넘긴 가해자였기에 요셉과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요셉이 앙갚음을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요셉에게 말을 전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50장 16, 17절의 말씀입니다.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50:16-17)
형제들은 “당신의 아버지”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워낙 신분의 차이가 크고, 또 말 한마디가 두려웠기 때문에 ”우리 아버지”라고 말 못하고 요셉의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생전에 당신에게 전하라고 한 명령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서 말합니다. <네 형들을 용서하라>, 이게 아버지의 말입니다. 당신 아버지의 말이 그러하였으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참 복잡합니다.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사실 이 말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신빙성이 약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48장, 49장에 보면 야곱이 자녀들을 축복하는 장면과 특히 요셉을 불러서 그 요셉의 자녀들 에브라임,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직접 요셉에게 얘기할만한 긴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야곱은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형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죄를 이제 용서받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상 형들은 아직껏 요셉에게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앞에서 읽은 45장 4, 5절에서 요셉이 일방적으로 용서하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이제 17년이 지나서 요셉의 나이는 56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형들은 이제 약 40년 전의 그 일을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 울음의 이유가 무엇일까요? 17년 전에 이미 용서를 했는데도, 아직 죄책감으로 시달리는 이 형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뭐라고 그럽니까? 친 사람은 다리 오므리고 자고 맞은 사람은 다리를 어떻게 하고 잔다고요? 펴고 잔다, 그러죠? 그 말처럼 한번 지은 그 죄는 이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옥죄이고 하나의 징벌처럼 지금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영혼을 옥죄고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미워해야 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또 요셉은 한 편 생각해볼 때, 바로 그날 자신의 옷을 억지로 벗기고 구덩이에 쳐 넣으면서 던져질 때,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얼마나 사정을 했겠습니까? 오늘 정반대가 처지가 되어서 이제는 형들이 나를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장면이 오버랩 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눈물이 요셉에게 흘렀을 법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적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셨던 그 꿈! 뭡니까? 열 개의 곡식단이 나의 단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는 그 꿈. 그 것이 지금 이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섬광 같은 감동이 그를 눈물짓게 했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형들이 직접 찾아와 요셉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 그 때 요셉이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것은 놀라운 신앙적 표현입니다. 레위기 19:18에는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율법은 후일 모세의 때에 광야길 시내산에서 받게 되지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는 이미 하늘의 법도가 살아 있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드리고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모세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의 법도를 깨닫고 행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은 말합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요,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뜻 안에서 이루신 것임을 전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습니다.
여러분, 참된 용서는 어디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내게 당한 일을 바르게 해석할 때입니다. 내 인생을 성경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참  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용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프레드 러스킨이라는 분이 쓴 책인데, 이 책에는 용서가 주는 행복, 용서를 통하여 자신이 성장하게 되는 그 내용을 잘 정리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는 용서란 무엇인가를 밝혀주기 위해서 무엇이 용서가 아닌 가를 들려줍니다.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인정머리 없는 행위를 그저 참고만 있다든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고 나서 없던 일로 잊어버리는 것, 또는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애써 좋게 봐주는 것, 이런 건 용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용서는 자기가 받은 상처를 부정하거나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공격한 사람과 억지로 화해를 한다든가, 아예 감정 자체를 갖지 말라는 뜻도 결국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억지로 참거나, 억지로 잊어버리거나, 억지로 억누르거나, 억지로 화해하는 것, 이런 것이 용서가 아니라고 이 러스킨은 말합니다. 현실은 분명하게 있습니다. 상황과 사건은 분명하게 있는 겁니다. 요셉이 형들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있습니다. 따지자면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어린 동생을 시기해서 옷 벗기고, 팔아먹고, 그 옷에 염소의 피를 묻혀서 그 것을 아버지에게 가지고가서는 이 아이가 짐승에게 물려 죽은 모양입니다라고 거짓 보고를 한 천하의 몹쓸 인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요셉은 해석이 다릅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해석이 하나님의 구속의 사건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옳으셨습니다.
앞서 45장 7, 8절에 요셉은 이렇게 이 사건을 보고 있습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보십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하신 사건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그 사건 속에서 저를, 그리고 형님들을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여기에 치유가 있습니다. 여기에 용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궁극의 점에 요셉의 감사가 있습니다. 나를 먼저 애굽으로 보내어 오늘을 예비하도록 하신 그 하나님, 그 인도하심,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옳은 일을 하셨습니다. 형들을 쓰시고, 저를 쓰셔서 하나님의 위대한 일, 옳은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 속에 감사의 근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는 올 한 해 동안 풍성한 추수를 한 분도 있습니다. 혹 또 우리 중에는 드러내어 말은 못하지만 세상의 경기를 타고 또 어려움 중에 지난 한 해를 지내온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일의 감사의 근원은 한 가지 “내 인생을 구속하시기 위해 인도하신 하나님의 일은 살아있었고 그 일은 옳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것이 우리의 감사입니다.
 세 가지만 요약해보자면, 첫째, 오늘까지 내 영혼을 위해 하나님은 옳은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셔서 딱 죽기에 합당한 나를 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일보다 더 옳고 더 감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택하신 자를 천국으로,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고자 인생 모든 여정 속에서 의로운 일을 이루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이 왜 하필이면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갔겠습니까? 감옥도 평감옥이 아니라 왕의 감옥이어서 애굽왕의 관원들을 만나게 하신 것이 과연 우연이겠습니까? 어려서부터 꿈에 민감하였고, 영적인 통찰력을 기르게 해 주셔서 그 능력이 감옥에서 발휘되고 바로왕 앞에서 발휘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에게 형통의 은혜로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도우심의 은혜인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꼭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해서 우리에게 기억나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가 있을 때, 창세기 39장 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39장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들의 집에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으로 인하여 그들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39:21)고 했습니다. 39:23에는 거기에서 여호와께서 그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깊은 연륜이 있는 어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그 가사처럼 (30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달려 오셨습니까? 걸어오셨습니까? 기어오셨습니까? 여러분 오늘 여기까지 걸어오신 것, 옳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옳게 인도해 주심으로 내 영혼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을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옳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장래의 일도 인도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에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인생의 질이 다릅니다. 그것은 성도들이 가져야 되는, 믿음의 사람이 가져야 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고난도 있습니다. 원수들의 공격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45장에서 보면, 요셉이 처음 형들을 만났을 때 궁궐에서 크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바로의 궁에 들릴 정도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나라에는 가난한 나라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죠? 선진국 돼보니까 선진국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죠? 큰 사람에게는 큰 울음이 있는 법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각자가 져야 하는 고난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인생길에 맞닥뜨리는 십자가, 고난, 어려운 환난 혹은 궁핍 그 어떤 것도 의로 만드시는, 선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다림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내와 연단의 십자가도 있을 것입니다. 40:23에 보면,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을 살려주었고, 이제 그의 은인이 되었습니다. 곧장 왕의 부름을 그 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 그의 꿈 풀이를 잘해주고, 부탁을 합니다. “이제 금방 잘 되실 텐데, 풀려나시면 저도 좀 기억해 주셔서 이 집에서 좀 나가게 해 주십쇼.” 부탁을 했지만, 이 관원장은 석방이 되자마자 금방 요셉을 잊어버렸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러고도 2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만 우리의 부를 노래는 하나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이것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옳으십니다. 할렐루야! 그것을 붙잡으십시다. 거기에 감사가 있습니다. 내 인생이 꼬인 것만 같고, 내 가정이 엉망인 것 같고, 나만 이런 저주의 구렁텅이에 있는 것 같고, 세상말로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안풀리는 가 싶고, 많은 것들이 답답해서 세상도, 역사도, 나라도, 모든 것이 답답해 보일 때, 기억하십쇼.  그 모든 것들을 통해 나를 다듬어 가시고, 나를 더욱 정결히 만들어 가시며 천국의 길로 옳은 길로 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그 의의 손길! 옳으신 그 하나님의 찬미가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옳으신 하나님께서는 관계의 회복을 이루십니다. 오늘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봐야 될 부분이 바로 그것인 것 같습니다. 요셉에게는 형들에게 옷을 빼앗길 때, 그 날의 기억이 아픈 상처로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먼 길을 홀로 가서 드디어 형들을 만났습니다. 달려가면서 “형, 레위형, 나 왔어요. 잇사갈형, 납달리형 나야 나.”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형들이 이 요셉을 보자마자 옷을 벗기고, 저 구덩이에 집어넣고 마치 죽이려드는 그 모습을 보며, 이 난데없는 그 행동에 얼마나 울부짖었겠습니까? “형 왜 그래? 시므온 형, 나 좀 살려주세요! 레위형 왜 그래? 납달리형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제발 살려줘, 제발 살려줘! 부탁이야.” 이때의 기억을 요셉은 지난 13년 동안 얼마나 그 의문을 찾으려고 노력했을 것일까요. 저 이국의 어둡고 더러운 감옥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며 도대체 형들은 왜 그랬던 것일까? 나는 왜 형들에게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 자신의 말과 행동을 수도 없이 성찰하였을 것입니다. 요셉이 마지막으로 형들을 위로하며 전했던 말을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들려줍니다.
그러니 형님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형님들을 모시고, 형님들의 자식들을 돌보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다. (50:21, 새번역) 고 성경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형들을 도리어 위로하는 이 깊은 요셉의 믿음,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에는 요셉 자신 수도 없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성찰한 흔적이 보입니다.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누가 누구를 복수한단 말입니까? 형들 뿐 아니라 형님의 자녀까지 내가 책임지고 다 돌보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를 먼저 보내신 뜻입니다.” 이 말은 어린 시절 요셉이 형들에게 입었던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증거요, 또 한 가지 형들에게 입혔던 상처도 사죄하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요셉의 나이 지금, 쉰 여섯입니다. 형들은 대부분 육십 대 중반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지난날의 일로 인하여 관계의 아픔을 쓸어안으며 형들을 위로합니다. 생각해보니 요셉 자신에게도 실수가 많았습니다. 철없던 시절의 실수입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면서 홀로 채색옷을 입고 그는 형들 앞에 뽐내고 다녔습니다. 작업복이나 겨우 입고 있는 형들 앞에 채색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미안하기는커녕 늘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작업복입고, 양떼를 치고 있는 형들의 심정은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 곁에서 저혼자 맛있는 것 골라먹으며 형들을 고자질하기까지 했던 철부지였습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내게 절합디다하던 꿈 얘기를 거리낌 없이 늘어놓고, 해와 달, 별이 내게 절하더라고 말하면서 내가 이렇게 축복 받은 사람이올시다하는 자랑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한 가정에서도 누이들은 나보다 총명한데, 진학을 꿈꾸지도 못했고, 아들이랍시고 대학도 가고 출세도 하고 났더니 저 자랑이나 늘어놓는 어떤 인생들처럼 말입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면서 그 사랑, 형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했던 자신의 철없던 과거를 하염없이 성찰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반성하고, 용서를 서로가 서로에게 빌며, 형들의 아픔을 또한 달래며 그 형제는 화해와 화평을, 용서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의 해피엔딩처럼 그로인해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옳으신 하나님께서는 내 영혼에 옳은 일을 행하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의 추수를 아름답게 맺어갈 수 있도록 오늘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물질의 은혜도 주셨지만, 천국 길 까지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끌어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장래에도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승리케 하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서도 옳은 일을 행해 오시는 하나님께서 옳은 일을 행하실 것을 믿으며 참으로 감사의 찬양이 가득한 오늘, 내일, 여러분의 평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내 인생을 돌아볼 때마다 옳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나이다. 내 영혼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사 천국 길을 열어 주셨고, 내 인생의 길도 오늘까지 옳은 방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또 장래에도 하나님께서 옳은 길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옳으신 은혜에 감사로 가득하여 세상을 능히 이기게 하시고, 말씀의 복을 날마다 주셔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 감사가 더 깊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사랑의 하나님, 옳으신 주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우리에게 은혜로 오셔서 의를 이루신 주님을 찬양하옵나이다. 오늘 내게 주신 수많은 은혜를 감사하며 감사로 말미암는 행복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더욱 감사의 찬미들이 넘쳐나는 은혜로 우리의 생이 가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넘치는 감사가 오늘 찬양 속에서 흐르게 하시고 기도로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 가정, 교회위에 또 이 나라, 이 민족위에 흘러넘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루터기의 감사 김창운 담임목사 2017.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