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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2017.10.22)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9장 32-43절
 
 
본문 내용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Content


 


행 9:32-43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438, 472
사도행전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건들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천지개벽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영을 이 땅에 보내어 주신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을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오늘도 세계를 만민을 향해 나아가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 가기까지 성령님은 믿는 자들과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동행이란 무엇입니까? 함께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살아계셔서 여러분의 인격과 행동에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신 분은 저를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혼탁한 세상, 악령들이 공격하는 세상, 선보다 악이 더 득세해 보이는 것같은 세상에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라는 정체의식을 분명히 해야 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두 번째 큰 사건이라고 한다면 사울의 회심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잔멸하고 박해하던 그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셨고 그를 회심하게 하셨습니다. 회심이 무엇입니까? Conversion! 삶의 전환, 신앙의 전환을 말합니다. 물리학에서 이 용어는 액체에서 고체로, 혹은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입니다. 형태가 변하고 질이 변하고 기능이 변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울이라는 대항자를 모태로부터 택정하셔서 변화된 인물이 되게 합니다. 그의 인생의 형태가 변하고 신앙의 질이 변하고 그의 삶의 기능이 변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경로가 바로 그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회심의 출발점은 언제 입니까? 주님을 만나게 된 때는 언제이며 믿음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우리 중에 모태신앙으로 성장한 분들은 이런 회심의 경험에 대하여 할 말이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에 길로 인도한 이 사건은 이 사실은 너무나도 큰 위대한 은총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 대신 피흘려 죽으신 얼마나 얼마나 큰것인지. 나를 택하여 부르신 그 오묘하심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사실 우리는 그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야 됩니다. 정말 감사 감동할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부르셨듯이 우리를 부르신 방법이나 우리를 부르신 상황이나 우리를 부르신 그 사람이나 동기들 이 모든 것은 자연이나 우연 발생이 아니라 초월적사건입니다. 기적사건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세례를 받은 날짜가 언제인지 알고 싶습니다. 기억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의 신앙의 발자취를 담은 사진과 여러분들이 세례 때에 받으신 세례 증서를 모아 박람회를 열면 좋겠습니다. 그날 그때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값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삶은 질의 변하였습니다. 내 속에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인생의 시작되었습니다. 인생과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변하였고, 삶의 목적 또한 변화된 것입니다. 이 가을, 우리는 우리를 택정하여 부르시고 회심의 길로 인도하신 주님의 크도록 오묘하고 섬세하신 손길에 감사와 감동이 깊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에 세 번째 큰 사건이라면 성령께서 예루살렘에 강림하신 후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즉 ‘이방’ 속에서 임하신 사건입니다. 10장에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집안에 임하시는 사건이 그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이 있기 바로 전의 서막입니다. 사울의 회심 사건 후,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당시 베드로 사도는 순회 선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32절의 기록처럼, 사방으로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때 박해의 시기에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본부 역할을 하였습니다. 31절에 읽은 대로 교회가 평안한 시기가 되자 사도들은 자유롭게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예수님의 부활과 구원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당시 이스라엘 땅 팔레스틴에 서쪽 편은 지중해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지중해 연안을 따라서 여행을 했는데 성경은 두 마을 곧 룻다와 욥바라는 곳에서 마치 한 쌍의 사건처럼 대비되는 이적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두 곳에서 베드로는 우리 주님께서 하셨듯이 중풍병자를 고치셨고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욥바라는 곳은 지금은 자파(Jaffa)라고 불리는 곳으로 요나서에도 나오는 오래된 항구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입니다. 이 욥바에서 룻다까지는 약 20킬로미터 거린데, 거기에 애니아라는 성도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이 8년 동안 중풍을 앓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애니아를 보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명령하듯이 말씀합니다. 행 9: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그러자 이 중풍을 앓던 사람이 곧 일어났다고 말씀합니다.
이때 욥바에는 다비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람어로 다비다(Tabitha), 그 이름을 헬라어로 하면 도르가(Dorgas)입니다. 성경은 이 여인이 선행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한 사람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냥 많이 한 것이 아니라, “심히” 많은 구제를 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옷이 귀한 때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속옷과 겉옷을 많이 지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여제자라고 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병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슬퍼했습니다. 마침 이들이 베드로 사도가 룻다에 있다는 것을 듣고 속히 오시도록 간청을 했습니다. 베드로가 급히 가서 도착해보니 다락방에 그녀의 시신이 뉘어져 있습니다. 미망인들이 거기에 모여서 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여인들입니다. 그녀가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주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면서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합니다. 베드로는 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울고 있으므로, 주님이 하신 것처럼 모두 나가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윽고 이 시체를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러자 이 여인이 눈을 떴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그녀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밖에 있던 미망인들과 성도들을 불러 그녀가 살아난 것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이 놀라운 사건 속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진리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이것은 성령께서 이루신 치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인격을 담은 초월적인 능력의 영이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여호와, <여호와 라파>라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이 영인 성령님은 치유 사건이 있습니다. 시편 107:20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기록합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 107:20)
이 예언의 말씀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마 8:16은 주님의 행적을 소개하는데,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고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고치심은 성령님의 속성이요 능력이요, 또한 목적인 것입니다. 요즘 방송에서 또한 많은 사람들 입에서 힐링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참된 힐링은 치유는 교회에 있습니다. 성령께 있습니다. 주님의 영이 고치시는 것입니다. 이 고치심은 곧 정돈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상한마음을 치유하심과 몸도 영혼도 고치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정돈하는 하시는 일을 우리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주의 성령은 우리를 고치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 속에서 고치심의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믿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고치셨습니다. 죽음의 종착역으로 가던 우리의 영혼의 진로를 고치셔서 영원한 천국행으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은 친히 고쳐주심으로 주님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애니아가 중풍병에서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듯, 우리 인생의 습관과 행실들도 하나하나 정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삶이 혼란스럽고 복잡하십니까? 오늘 내 주변에서 불화와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까?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질서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는 이 역사가, 여러분 속에 더욱 뜨겁고 힘 있게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이 일들은 성령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이 두 사건이 일어난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누가는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35절입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행 9:35) 이어서 41-42절입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고치시고 살리시는 이 사건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합니까? ‘주께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다비다가 살아난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더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이 일을 이루시는 이유입니다. 주께로 돌아오는 일, 즉 구원의 사건 말입니다. 주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회심이요 새사람 됨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에 기록한 것처럼, 나는 이제 죽고 그리스도의 심장이 내 것이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러한 구원의 사건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사건을 통해서 말입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 사건에서 우리는 놀랍니다. 분명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자주 일어났으면 좋겠습니까? 사별이라는 아픔으로 인해서 먼저 간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어합니다. 남편이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만 생각해보실까요? 천국에 가신 분들이 이 땅에 다시 오는 것을 반겨 할까요? 지옥에 간 사람들은 분명 이 땅에 다시 오기를 바랄지 모르지만, 천국에 있는 분들은 다시 오십사 하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입니다. 왜 살리신 것입니까?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강력한 성령님의 증거를 드러낸 것입니다. 구원이 역사, 이것이 가장 귀한 성령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 우리 속에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그 심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변화되고, 주님 한 분으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고 만족한 자들의 미소와, 사랑의 말과, 따뜻한 손길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 구원의 역사가 여러분들의 변화된 심장을 통해 더욱 힘있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이 사건들은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주목하실 것은 이기적의 사건들이 베드로를 증거했거나 기적 사건을 증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증거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교회 성장을 열망하는 어떤 이들은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초대교회 다비다가 살아나 많은 사람이 주님께 돌아온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저도 그런 유혹을 받은 때가 있습니다. 제게 큰 능력을 주셔서 죽은자도 살리내는 기적을 이뤄주시면 정말 벧엘교회가 대박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어떤 교회들은 교회 비전이라고 해서 자신들의 꿈을 예수님의 은혜 통해 이루는 것 이것을 비전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깊이 묵상 할 때마다 깨닫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의 나의 도구로 삼으려는 교만, 내 욕심이 우선된 불신앙에 모습이 거기에 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의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많은 기적을 본 자들의 결국이 어떠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기둥 불기둥을 보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도 매일 보고 먹었습니다. 40년 동안이나 보았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결국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살리신 기적들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한 미망인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무덤에까지 장사를 지낸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그로 인해서 주님께 돌아왔다는 이야기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나사로를 살린 것을 본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 날부터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 하니라’(요 11:53). 주님과 함께 공생애 기간을 지내며 수 없는 기적을 보았던 제자들의 결국은 어떠했습니까? 주님이 붙잡히던 밤 모두들 도망을 쳤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된 우리의 실체입니다. 표적을 표적삼았고 표적을 증거삼았던 자들의 결국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표적을 보면 믿겠다고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8,39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마 12:38,39)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일수록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표적이란 죽으심과 부활, 그로 말미암는 영광이라는 비밀스런 진리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도마를 향하여 뜻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1943년에 출판된 이후 어른 아이 없이 사랑 받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은 별에 장미 씨앗 하나가 떨어져서 아름답게 꽃이 핍니다. 어린왕자는 아름답지만 도도하고 교만한 이 장미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기가 살던 별을 떠나 여러 별들을 전전하다 지구에 오게 됩니다. 지구에 와서 많은 만남을 갖게 되는 가운데 장미에 대해 상처받았던 일들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 자기 별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때 여우가 어린왕자와 헤어지기 직전에 자신이 갖고 있는 비밀을 들려줍니다. 그 비밀은 이것입니다.
‘내 비밀은 간단합니다, 마음으로 보아야지만 바르게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매우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마음으로 보아야지만 바르게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매우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정말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 않습니까? 공기, 어머니의 사랑, 천국, 예수님의 영광… 현재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보아야만 바르게 볼 수 있다, 매우 중요한 것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동화의 말이 오늘 우리의 신앙을 일깨워 줍니다. 히브리서 12:2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라고 했습니다. 영의 눈을 떠서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믿음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표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표적으로 주셨습니다. 살아계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기도와 찬양이라는 참으로 위대한 영적 무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귀한 선물을 통하여 고치시는 성령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며 또한 열망하시는 성령님, 우리 예수님의 영광과 증거를 드러내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여러분 위에 더욱 힘있게 나타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도 내 속에 정한 영을 새롭게 하여주심을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내 속에서 치유하심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심과 영광된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심을 감사 드리며, 이제 저의 영의 눈을 더욱 밝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관심, 우리의 심장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주님 한 분으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천국의 시간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살아계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 주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데로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내 속에 있는 바람과 소망이 주님만을 향하게 하여주시고, 멸망과 절망으로 인도하는 세상의 것들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을 전하는 우리의 신앙이 아름다운 향기들로 세상을 향해 전해지는 복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 회심자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김창운 담임목사 2017.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