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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오피아를 향한 복음 (2017.10.01)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8장 26-40절
 
 
본문 내용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Content


                       행 8:26-40 에디오피아 를 향한 복음
올해 달력은 이번 주에 추석을 맞으며 긴 연휴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석 명절 준비로 부산하고 바쁜 중에 예배의 자리에 나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력에서 는 오늘 10월 첫째 주일은 세계성만찬주일로 지킵니다. 세계 약 70억 인구 중에 오대양 육대주의 기독교인들 모두가 주님이 제정하신 성만찬에 함께 참여하는 주일인 것입니다. 세계의 온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성령으로 하나됨의 자리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땅을 고치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간구하며, 가난한 이들, 분쟁이 있는 곳, 아픔과 눈물이 있는 곳을 치유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온 교회가 함께 이런 성찬식을 갖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반증(反證)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교인들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고백하기에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고백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명하시는 말씀을 붙들고 따라가는 것이 참된 믿음인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 빌립 집사님의 행적이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도시를 떠난 직후에, 빌립은 또 다른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 빌립 집사님은 참으로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베드로는 사도였고, 스데반은 복음의 변증자였다면, 이 빌립 집사님은 복음 전파자였습니다. 사마리아에서 멋진 대중 전도를 마친 후 주님의 사자로부터 ‘남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가사로 내려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곳은 이집트로 향하는 길목이자, 아프리카 대륙까지 향하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 곳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한 에디오피아의 높은 관원을 만납니다. 여왕 간다게 집안의 모든 국고를 맡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왕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높은 신하들처럼 이 사람도 내시였는데, 재무부 장관 정도의 높은 관원였습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돌아가던 중이었는데 수레를 타고 구약 성경 이사야를 읽으면서 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가는 이 사람이 에디오피아에서 왔지만 이 사람도 <유대인>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적어도 이집트, 에디오피아까지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 흩어진 땅에 원주민들도 유대인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거나 유대인과 결혼을 하게 되면 유대인으로 인정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이방인 중에 첫 번째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을 누가는 사도행전 10장에 가이사랴에 사는 백부장 고넬료라고 나중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성경은 오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저 땅끝을 향해가는 말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9절에 보면, 이 사람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영접하여 세례를 받고 에디오피아를 향해 기뻐하며 자기 길을 갔다고 했습니다. 그 곳에서 주의 복음을 전하며 말씀의 역사가 놀라운 결실을 거두게 됩니다.
몇년 전 에디오피아에서 유학을 온 나홈(Nahom Tegene)이라는 목사님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에디오피아에 기독교 인구가 정교회와 개혁교회를 합하면 60퍼센트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전체 인구를 1억으로 치면 무려 6천만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씨앗이 바로 이 에디오피아의 이름 모를 그 관리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1982년에는 공산당 혁명이 있어서 국가 정부가 무너졌습니다. 교회는 큰 핍박을 받으면서 모두가 문을 닫게 되었고 기독교인들도 뿔뿔이 흩어졌고 교회들은 지하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신고를 할까 봐 큰소리로 찬양할 수도 없었고 맘 놓고 기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10년 후에 1992년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교회가 지하에서 나올 수 있었는데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교인들이 오히려 훨씬 늘어난 것입니다. 한 교단의 교회는 기독교인 수가 무려 열 배나 더 늘었다고 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을 우리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두 가지 입니다. 복음과 말씀의 능력은 핍박 속에서 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 것임을 역사로서 증거합니다. 두 번째는 이 지하 교회에서 사람들은 소그룹으로 더욱 열심히 모였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의 역사가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정마다 모여 떡을 떼며 말씀과 기도를 드리며 확산되어 간 것처럼 우리의 목장과 같은 소예배의 모임이 더 열렬히 모이며 큰 복음의 확장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에디오피아 뿐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초대교회가 그러했고 공산당 혁명 후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 북한 땅도 큰 소리로 찬양하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묶어주신 작은 예배들로 인해 복음의 확장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목장 모임의 신령한 의미와 거룩한 능력을 깨달아가시며, 목장 모임에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말씀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시작하시는지 그 세 단계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성령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성령께서 가사로 내려가라 하십니다. 그러자 이 빌립 집사님이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갑니다. 그 곳은 지금은 <가자 지구>라고 부르는 곳인데, 과거 블레셋의 다섯 개 성읍 중에 가장 남쪽에 있는 곳입니다. 지금 사마리아에 있었으니 이동 거리로는 저 예루살렘도 거쳐 백 킬로 미터입니다. 성령께 이끌려 그 곳까지 가신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이렇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판단으로 볼 때 그 길은 멉니다. 도보로 가는 길입니다. 힘들고 어렵습니다. 사마리아에서 열심히 전도했으니 피곤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빌립 집사님은 성령께 붙들려 있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께서 명하시는 것을 듣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반응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님은 마 13장에서, 말씀을 듣지만 악한 자의 말에 빠져 들은 말씀을 금방 도적질 당하는 심령은 길밭과 같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기뻐하지만 뿌리가 내리지 못하고 환난이나 박해가 있을 때 금방 넘어지는 자는 돌밭과 같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긴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은 가시 떨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듣고 백배, 육십배, 삼십배의 열매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을 말합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깨닫습니다. 순종합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서 귀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사람에게 귀한 일을 맡기십니다. 기쁨으로 그 일을 감당할 때 더 귀한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서의 말씀을 전파 하게 하셨고, 이제 가사에 이르는 광야에서 아프리카를 향한 복음, 에디오피아를 향한 말씀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돌아가 열심히 사역하고 있는 나홈을 비롯한 수많은 열매들을 남긴 신앙 뿌리가 된 것입니다.
둘째, 귀한 만남을 주십니다. 빌립 집사님이 광야에 도달했을 때 수레를 타고 가는 이 장관을 봅니다. 그가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당시에 성경을 읽을 때는 누구든 소리를 내어 읽었습니다. 이 소리를 듣고, 빌립이 가까이 다가가 말을 겁니다. 30절입니다. “읽은 것을 깨닫느냐?” 마침 그가 대답하기를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 빌립 집사님을 자신이 타던 수레에 태웁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 수레를 몰고 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 만남은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하신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장 칼뱅 목사님은 이 에디오피아 사람을 겸손한 신앙인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무지를 거리낌 없이 솔직하게 인정하는’ 이 사람의 겸손이 말씀의 지도자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자만심에 차 있는 사람은 성경이 주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전합니다. 이 놀라운 만남. 이것이 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남을 주십니다. 모든 만남에 이 내시와 같은 겸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명절 연휴에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성도에게서 모든 만남은 소중합니다. 만남을 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시며, 모든 만남들이 성령 안에서의 만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을 말씀으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에디오피아 사람은 이사야서 53장 7-8절을 읽고 있었고 그 뜻을 깨닫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었습니다. 성도라면 익숙하게 여겨지는 이 메시야 예언의 말씀을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주님 당시에 유대교에서는 메시야 신앙을 갖긴 했지만, <승리의 메시야>가 아닌 <고난 받는 메시야>를 기대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 오셔서 친히 이 말씀의 내용들을 풀어주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이것이 메시야 예언의 성취인 것을 알려주신 후에야 성경 말씀들도 풀려진 것입니다. 빌립이 그것을 배우고 깨닫고 있었으므로,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올바로 깨닫는 것은 그래서 참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이 가르침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영접합니다. 세례를 받고 거듭난 인생,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레니우스라는 고대의 교부는 이 사람이 에디오피아로 돌아가 그 민족들에게 열심히 전도했다고 전해줍니다.(Against Heresies, iii, 12, 8)
여러분, 예수님을 믿게 되는 증거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떤 이들은 환상과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초자연적인 환상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소스톰이라는 위대한 교부는 이 에디오피아 사람을 칭찬하며 말합니다. 이 내시는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초자연적 환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환상과 기적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깊이 읽음으로써 거듭남과 성령충만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존 스토트라는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요 목회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하나는 성경이요, 또 하나는 그 성경을 열어 보이고, 설명하며, 해설하고 적용해주는 교사들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경이 없었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성경을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말씀을 전하는 교사들과 전도사님들, 또한 목장 모임에서 말씀을 인도하는 청지기 섬김이들은 정말로 위대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든 말씀을 맡은 자와 행복한 관계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참으로 복이 되는 것이요, 위대한 일은 바로 그 말씀을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도 이어온 말씀과 말씀의 나눔이 더욱 역동적으로, 더욱 본연의 가치로서 우리 모두에게 자리매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디오피아 사람은 그렇게 성령의 열매인 큰 기쁨으로 말씀을 안고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그 길을 간 것입니다. 빌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를 아소도, 즉 아스돗이라는 블레셋 지역으로 인도하셨고, 그곳으로부터 해안을 끼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가이사랴로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 후 빌립의 일생은 어떻게 펼쳐지는지, 행 21:8-9를 읽습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행 21:8-9)
이것은 약 20년 후의 일입니다, 그 가이사랴에서 정착을 하여 가정을 이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 사도바울을 영접하여 재충전의 장소를 제공합니다. 선지자가 될만한 딸을 넷이나 두고 있었습니다. 이 딸들도 아버지에 필적할만한 성령의 사람이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령의 사람 빌립으로 하여금 사마리아에서는 대중 전도로서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광야길에서는 개인전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뿐 아니라 개인적인 자리에서, 교회에서뿐 아니라 삶의 자리에서, 또한 가정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나타낸 빌립의 아름다운 인생을 봅니다.
행복한 명절 지내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것도 드시고 가족들과도 맘껏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또 혹시. 우리 중에는 연휴 중에 더 바쁘거나 남달리 어려운 시간을 가져야 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억하십시다. 성경의 빌립 집사님을 이끄시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이끌어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을 이끌어 위대한 만남을 갖게 하셨고, 만남의 자리에서 말씀의 향연을 펼치시고 그 안에서 위대하신 일들이 이루어가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번 한 주도 바로 그 놀라운 성령님의 현장을 영의 눈을 들어 바라보심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마리아의 마을마다 김창운 담임목사 2017.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