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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보다 설교를 잘 한 사람 (2017.09.10)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7장 1-4절, 51-60절
 
 
본문 내용
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Content

                       행 7:1-4, 51-60 사도보다 설교를 잘 한 사람
성경에 가장 빛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늘 생명책에도 빛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만나는 스데반, 스테파노스, 그의 이름의 뜻은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이 분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자신과 비슷한 외국 출신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회당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오히려 큰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을 위험이 닥쳐왔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주려던 사람들이 도리어 스데반 집사님을 공격하고 고발했습니다. 성전과 율법을 모독한 죄, 즉 신성모독 죄로 말입니다. 결국 주님께서 잡히셨던 유대의 대법정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갔습니다.
그 공회의 의장인 되는 대제사장이 묻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이 사람은 불과 몇 달 전 주님을 재판하고 죽음으로 넘긴 가야바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이 대제사장 가야바가 주님을 심문하던 장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끌고 와서 때리며 그 체벌의 죄목으로 “성전을 헐라 했고, 자신이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노라고 성전을 모독했습니다”고 고발했습니다. 이때 가야바가 주님을 향해 묻습니다. “너를 때리고 있는 이 증거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 그때 주님은 말씀이 없었습니다. 침묵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스데반에게 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 스데반의 죄를 입증하게 되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는 운동 자체를 불신하게 만들 수 있다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말에 스데반 집사님이 대답을 합니다. 그 대답이 거의 7장 한 장에 해당되는 긴 답변입니다. 그 내용은 한 편의 훌륭한 설교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설교입니다. 법정에서 자신의 죄에 대해 심문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의 ‘변증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변론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데 변론입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들어서 복음의 말씀을 변론하는 것입니다. 지금 공회에는 자신 못지 않게 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이 앉아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은 전혀 배운 적도 깨달아본 적도 없는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종교개혁의 정신이 있고, 올해 우리가 함께 가는 “다시 거룩한 교회로”의 정신이 있습니다. 고로 오늘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 내용은 우리에게 참으로 값진 깨달음을 줍니다.
첫째, 스데반 집사님은 하나님이 임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지금 이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성전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시다고 믿는 것은 옳은데, 하나님과 성전을 동일시 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와 다윗, 솔로몬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임재가 어떠했는지를 강변(强辯)합니다. 이 공회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구약의 인물들인 것입니다. 2절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 7:2)
하란을 언급하고 메소포타미아를 언급합니다. 여러분이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디 출신입니까? 메소포타미아입니다. 4절에도 한번 더 언급합니다. <갈데아 사람의 땅> 우르, 즉 “불”이라는 뜻의 우상 가득한 땅, 그 곳에 여러분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우상의 땅, 이방의 땅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요셉을 언급하면서도 말씀합니다. 9절과 10절은 이렇게 기록됩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행 7:9,10)
애굽에 팔았다. 애굽의 왕,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 17절까지 애굽 애굽 하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뭘 말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이 생각하는 성전, 이 전에 하나님은 저 이방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모세 또한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에서 만나셨음을 말합니다. 38절은 광야에 임하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 7:38)
그들이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성전 이전,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백성들이 있던 곳, 그 곳에서 “광야교회”(ekklesia)를 이루셨고 거기에서 백성들을 만나주신 하나님임을 강변합니다. 심지어 증거의 장막이 있었고, 후일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솔로몬의 성전을 짓도록 하셨지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하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설명합니다.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행 7: 47-50)
이 말씀은 선지자 이사야서의 말씀(6:1,2)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물 안에만 계시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이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성전을 하나님과 동일시 했습니다. 성전의 존재가 자신들의 안전과 복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믿고,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신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바로 이 사람들을 향하여 갈데아 우르를 말합니다. 애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태동과 해방과 구원의 역사는 이방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의 은총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와 출애굽, 광야 생활과,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를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천하 이방에 이르는 만군의 왕이라는 것을 강변하는 것입니다.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모든 이주의 기간, 순례의 모든 단계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지금껏 살아오시면서 이사를 몇 번이나 하셨습니까? 그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고 만나주셨고 언제나 함께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으며, 어떤 건물로도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하나님의 활동을 제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 집이 있으시다면, 그것은 그 분의 백성들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모든 장소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이사를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곳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직장을 옮긴다면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목장이 모이는 곳이 성전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의 모임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찬송하며 예배하는 그 자리가 성전이요, 여러분이 성경을 펼쳐 든 그 자리요, 찬양하고 기도하는 그 자리가 성전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자를 거부했던 사실을 전합니다. 9절에, 요셉은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의 도구이건만 형제들은 그를 시기하고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모세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세운 선지자요 구원자이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를 거부했습니다.  2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우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를 밀어냈고 거부하였습니다. 39절에 보면 그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거절하며, 끝없이 그 마음이 애굽을 향해 있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시내산에서 받고 있던 중에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42절에는 그들이 광야에서부터 하늘의 군대를 섬겼다고 했습니다. 해 달 별들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언제 제대로 예물을 드리고 제대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느냐? 이방의 우상들을 그토록 열심히 배우면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몰록과 레판이라는 우상신을 섬기지 않았더냐”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친히 그 아들을 보낸 것입니다.
셋째, 그럼에도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잘못된 신앙으로 세 가지를 거스르는 범죄를 저질라고 지적합니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와 율법입니다. 51절에 너희도 너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령을 거슬렀다”고 합니다. 52)절에 메시야를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죽였고, 또한 메시야 마저 죽인 것을 지적합니다. 53절에 그런 고로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을 어긴 자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설교에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있지만, 스데반은 그로 인해 율법과 성령을 거스른 죄까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변론을 한 후에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들은 이들이 마음이 찔렸다고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동일한 표현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행 2:37에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이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자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이 찔리자 이를 갈았습니다. 스데반을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자리에서 스데반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스데반이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너무도 감격하여 말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여러분, 이 말은 혼잣말이 아닙니다. 스데반이 하늘의 모습이 보이자 그 모습에 홀로 심취하여 탄성처럼 쏟아내는 혼잣말이 아닙니다. 새번역 성경은 원문을 이렇게 번역하여 들려줍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행 7:56, 표준새번역)
여러분, 오늘 설교의 제목을 <사도보다 설교를 잘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정말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죽음이 임박하고 돌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 앞에서 한 말입니다. 나 혼자 잘 믿는다고 이렇게 믿음 좋다고 자랑삼아 읊조리는 감탄사가 아니라, 마지막 그 순간까지 하늘을 바라보며 그 하늘을 저들에게 보여주고픈 설교자의 절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건 이 설교의 마지막 말에 오히려 사람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사정없이 달려들었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면서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성 바깥으로 끌어내고 돌로 쳤습니다. 이 일의 증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에게 증거로 지키게 했습니다. 왜곡된 진리, 그것을 진리로 믿는 맹종, 거기에 동조자들까지 있는 집단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섭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지금도 우리 곁에 이단은 참으로 경계하고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로 맞으며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그때, 스데반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계속해서 쏟아져오는 돌을 맞으며 무릎을 꿇고 이렇게 크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그 이름도 아름다웠던 스데반 집사님은 숨을 거둡니다. 누가는 이 분의 죽음을 이렇게 적어놓습니다. “자니라.” 필경 지금 이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의 필체는 담담해 보이지만, 그 손은 떨렸을 것이고, 이 글을 남기고 있는 파피루스 위에는 누가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사도보다 설교를 잘 한 스데반 집사님. 뛰어난 성경의 통찰력과, 자신의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여 회당을 찾아간 그 열심, 무엇보다 은혜와 권능,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던 집사님. 그 분은 사도들보다 먼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주님의 품에 안기었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스데반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말씀을 따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향해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면서 주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 분은 제자였습니다. 그 몸으로 설교했고, 그 증거로 설교했고, 그 행동으로 설교했고, 피흘림으로 설교했습니다. 모든 면에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으로 설교했던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을 그렇게 쓰셨습니다. 누가가 담담히 기록한 것처럼, 그는 그렇게 잤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그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여전히 천사의 얼굴빛이었고 주님을 뵈옵는 감격의 미소가 가득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한 그의 영혼이 하늘에 오르는 순간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우리 주님은 스데반이 돌로 맞아 죽어가는 것을 보시며 안절부절 서셨던 그 발로 천국문까지 달려와 이 분을 품어 안으셨을 것입니다. 분명 그 천국문에서 스데반은 여전히 천사의 얼굴로 웃고 있었을 것이고, 우리 주님은 반면에 이 사랑스런 제자를 끌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남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남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세 글자, “자니라”로 마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도록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인생으로 쓰이길 원하십니까? 어떤 이름으로 남기고 싶으십니까? 행 11:19-21의 말씀을 함께 읽으십시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19-21)
그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서 빛났고, 그의 피흘린 죽음과 말씀의 능력은 후일 수많은사람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역사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사실 사도보다 설교를 잘 했다는 말은, 앞으로 천국에서 만날 사도들에게 송구스런 표현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최소한 목사보다 설교를 잘 하는 사람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에는 저보다 언변에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어찌보면 목사가 가진 격식을 갖춘 설교보다 흉허물 없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전하는 말씀이 더 설득력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의 능력을 말씀을 전하는데 쓰시기 바랍니다. 목사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되는 세상의 사람들 속에서 말씀을 전한 자의 이름으로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시기 바랍니다. 치열한 세상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도전 앞에서도 말씀으로 능히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으로 전하고 입술로 전하고 천사의 얼굴 빛으로 전하며 성령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일들이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을 위해 서서 응원하시던 주님께서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의 자리, 성전의 자리, 영적 승리의 자리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스데반의 모습처럼 제게도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말씀의 능력이 있기를 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는 대로 저의 입술에서, 저의 행실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성령님, 스데반 집사님에게 충만함처럼 제게도 충만하여 주심으로 내 생에 무언가를 남긴다면 말씀을 남길 수 있게 하옵소서. 아멘.
은혜로우신 하나님, 초대교회에 가득했던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교회에 가득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며 간구하는 자마다 살아계신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간증하는 일들이 날마다 더하게 하옵소서. 부활하신 주님 성령님으로 저희에게서 일하여주시고, 소망하는 자들에게 충만히 임재하시며 믿음이 길수록, 연륜이 깊어갈수록 말씀이 나날이 풍성해지고, 아름답게 전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하여 김창운 담임목사 2017.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