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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이 이기게 하심으로 (2017.08.20)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5장 17-32절
 
 
본문 내용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27.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Content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가장 큰 복 중의 하나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죄 사람을 입은 우리에게는 성령께서 살아계시며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혜 속에 있는 사람은 성령님의 시선을 가지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사람의 눈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세상을 뛰어넘고, 저 하늘 너머의 천국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땅의 일을 등한히 하거나 가족과 생업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혹시나 어떤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이 즉시 이단인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누구보다 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민감하고 성실합니다. 주께서 부여하신 영적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 이 민족에서나, 사회나 공동체 속에서, 그리고 주께서 만드신 피조물들에게서 울려 나오는 신음 소리들에 민감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갑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 능히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모든 것이 다 순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넘어집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병이 들고, 사고를 당할 때가 있고, 실패도 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 마음 상할 때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어떤 회의나 의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과거 교회의 초창기에는 물리적이고 외압적인 핍박이 성도의 믿음을 방해했다면, 오늘은 우리의 심령이 공격을 받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마음을 상합니다. 교회에서 낙심되는 일이 있으면 신앙 생활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이 현대 시대 속에서 성도의 믿음을 방해하는 사탄의 신종 공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성령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부흥과 확장이 일어날 때, 개인적으로는 믿음이 진일보해 갈 때 방해를 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음을 목도해야 합니다. 사도 행전에서는 그런 일들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에 사도들이 성령충만하고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수많은 기사와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가 낫는 사건으로 인해 복음이 확장되어 갈 때 그를 훼방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사도들을 잡아들이고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사도와 더불어 성도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더욱 담대해져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교회에 더 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의 더 강력한 핍박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이 그 사건을 보여줍니다.
사두개인들과 대제사장들, 이들은 사도들에게 대한 첫 번째 압박이 실패한 것에 대해 격분하였습니다. 사도들을 첫 번 체포를 했을 때 풀어주며 대신에 <전도금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28절에 보면 오히려 예수의 이름이 예루살렘에 가득해져 갔습니다. 믿지 않는 백성들 조차도 믿는 이들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들과 성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자신들의 법령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 자신들의 위상과 권위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시기와 분노에 차서 다시 이 사도들을 체포했습니다.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번에는 이들을 보다 엄중히 처벌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밤사이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이 사도들을 감옥에서 나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기를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 사도들이 옥에서 나오자 말씀대로 새벽에 성전으로 갑니다. 거기에 서서 예수의 이름을 열심히 전하며 가르칩니다. 한편, 공회 법정을 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 바리새인 대표들이 소집되고 다음 날 아침 대법정이 열립니다. 이스라엘 최고의 법정 산헤드린 공회를 다시 연 것입니다. 그리고 심문을 받을 죄인들을 끌고 오라 명령합니다. 부하들이 가서 보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도 없잖아요. 허겁지겁 달려와 보고합니다. “우리가 가서 보니 없습니다. 사라졌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옥은 든든하게 잠겼습니다. 지키는 자들도 문에 꼼짝 않고 서있습니다. 근데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분명히 잡아 가두었는데…… 마치 예수를 무덤에 장사할 때도 로마병정이 지키고 봉인까지 했는데 그 시신이 사라진 것처럼, 이 공회에게는 대단히 난처하고 굴욕적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하는 중에 마침 밖에서 부하들이 들어와서 보고를 합니다. “찾았습니다. 옥에 가두었던 그 사람들이 성전에 있습니다!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전 맡은 자와 부하들이 급히 달려가서 이 사람들을 체포합니다. 자신들을 곤란에 빠뜨린 이 사도들을 혹독하게 다룰 필요가 있는데, 그러나 성경에는 (26절) 그들에게 강제로 하지 못했다고 헸습니다. 이유는, 이 사도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돌로 칠까 봐 두려워 폭력을 쓰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어쨌던 이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에 세워놓고 법정 의장인 대제사장이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이 대제사장의 말은 사도들에게 위반 사항을 심문하고 있습니다. ‘금지령을 어겼다. 잘못된 가르침으로 백성들을 동요시키고 있다. 예수의 피의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려고 하고 있다’ 이런 것입니다.”이 심문 속에서 우리가 냉철하게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 이름”이니 “이 사람” 이니 하는 말은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가 그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무죄한 예수를 죽였기 때문에 그 피의 값을 치러야 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는 욕망에 묶인 양심은 결국, 예수의 이름 조차도 꺼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에 묶인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니다. (귀신들린 청년의 경험)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그 이름을 사모하며 늘 가까이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들이 이렇게 체포 구금되면서도 담대히 전하고 있는 이름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며,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를 죽인 이 악의 세력들은 그 이름 조차 부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심문 앞에서 베드로가 담대하게 답변을 합니다. 이 대답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것은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높이 올리는 말씀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담대히 말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언제나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의 골자는 3단법입니다. 여기서 세 번째 소개되고 있으므로 이제는 여러분도 외울 수 있겠습니다. “1.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달아 죽였다. 2.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고 영광스럽게 하셨다. 3. 주 예수를 믿고, 회개하면 죄 사람의 은총을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다. 증인이 필요하다면 말하겠다. 우리가 증인이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님이 증인이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그 앞에 있었습니다. 이들이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24+24+22). 그들이 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했다고 했습니다. 아픈 데를 건드린 것입니다. 그들의 지엄한 권위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형을 언도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이때의 사형은 돌로 쳐서 죽이는 사형을 말합니다. 이 공회는 얼마든지 집행할 수 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 중에 유명한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일어납니다. 이 사람은 당시에 존경 받았던 랍비의 호칭보다 더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라반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리새파에 속한 학자이면서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조차 권위를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 가말리엘의 제자인 것을 많은 분들이 알 것입니다. 이 라반 가말리엘이 사도들을 잠깐 내보게 하고, 공회 앞에서 말합니다.
“과거에 드다라는 자가 사람들을 선동하며 일어났다가 그가 죽자 잔당들이 흩어졌소. 갈릴리의 유다라는 자도 백성을 선동했다가 그도 망하자 다 흩어졌소. 그러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는 것이 좋겠소”
38-39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됩니다.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이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난게 아니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니 내버려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사람들의 귀에 옳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내어줍니다. 그런데 그냥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금지령을 어겼으므로 죄의 값으로 채찍질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채찍은 사십에 한 대 감한 매를 뜻합니다(신 25:3). 이 극심한 채찍 처벌과 함께 예수 이름을 전하는 것을 다시 한번 금하도록 명령하여 풀어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다시 풀려납니다. 대단히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지금 이 사도들은 온 몸에 피투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온몸과 특히 등이 채찍으로 온통 참혹하게 갈기갈기 찢기고 그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1절에). 그들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은 것이 기뻤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0:17에서 하신 말씀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마 10:17).
또한 주님께서 산상에서 해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기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 5:11-12에 하신 말씀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아 이것이 그때 말씀하신 그 박해의 말씀이구나.’ 주님으로 인해 능욕받은 자로 인정받은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불명예를 당하고, 주님으로 인해 치욕을 당하고, 주님으로 인해 채찍에 맞은 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 체포에서 풀려날 때 사도들은 금지령과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때의 핍박에서 성령님은 이 사도들로 하여금 더욱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의 이 박해에서 이 사도들은 금지령에 더하여 험한 채찍질을 당했으나 성령께서는 이들로 하여금 영예와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이겼습니다. 성령께서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탄은 결코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영이 승리를 주십니다. 사도행전은 그것을 기록합니다. 주님이 복음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으므로, 성령께서 그것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도우시되 끝까지 도우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위협적인 핍박 속에서도 이 사도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이기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초자연적인 역사로 이기게 하셨습니다. 옥에 갇힌 사도들을 위해 주님의 사자가 그 문도 열지 않은 채, 간수도 모르게, 주님의 제자들을 고이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와 옮기신 겁니다. 초월적 사건으로 이들을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십니다.
두 번째 신비로운 주님의 손길은 사람들을 통해서 도우시며 믿음의 승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전에 있는 사도들을 다시 체포해갈 때 체포요원들은 사도들을 강제적으로 혹독히 다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돌로 칠까 하여 강제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이 사도들을 사람들을 통하여 보호해주시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어떠했습니까? 그 서슬 시퍼런 공회에서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섭리적으로 역사하신 <라반 가말리엘>이라는 한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닥치는 환난도 있고 실패의 시간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실수로 온 것도 있고, 사탄의 꾀임과 도전으로 말미암는 것도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에게 분명한 것은, 그것을 성령께서 선한 역사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결정적 패배와 파멸로 두시는 일이 없이 보호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이 땅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시간 속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탈출시키시는 초자연적 사건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하시는 것입니다. 혹은 반대로 옥에 갇힌 채 그 속에서 고문과 채찍을 맞게 하시는 것도 사도 바울처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시간 속에서 순종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참으로 오묘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 승리를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고로 믿는 이의 삶은 기적의 사건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질병이나 고통으로도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며,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시고 도우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의 순례 길을 걸어갈 때 의심의 장막에 덮이거나 근심의 구름이 드리울 때마다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우리의 겉사람은 세상이 주는 시선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무기력 해 보인다고 할지 모릅니다. 사탄은 그런 생각을 여러분에게 심어주면서 단기적으로는 이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분명한 믿음은 하나님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신앙을 방해하는 어떤 어려움이 있다면 바닷가 바위에 사는 따개비를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평소에는 바위 위에서 늘어져서 슬슬 움직이기도 하지만, 파도가 치면 바위에 바싹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따개비말입니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시고, 기도의 자리를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다시 그 안에 살아나도록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예배를 방해하는 핍박의 시간이 있다면, 그 핍박 후에 도리어 기뻐하던저 사도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내게 능욕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셨음을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제자들이 계속해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15에서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
성령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언제나 함께 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그러하듯이, 바로 이런 신앙의 사람 속에서 성령님이 이기게 하심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줄 믿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는 연약합니다. 세상에서 쉽게 넘어지고 신앙에서도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 사람이 주님께 감사하며 고백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그 은혜와 오늘도 나를 주님의 보혈로 씻으시며, 영생에 이르도록 내 속에 살아계신 성령님으로 인하여 힘을 내어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말씀의 능력이 제 속에 살아있게 하시고, 기도의 힘이 날마다 더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령께서 내 마음을 주장하시고 움직이시고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인생을 살아가는 만큼 제 심령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의 은총 위에 성령의 열매들로 더 하여 맺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님, 사도들의 증언과 핍박, 그리고 승리의 현장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다시금 담대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믿음 더욱 굳세어 주님의 뜻을 순종하게 하시고, 사도들의 걸음처럼, 고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할수록 “모욕받도록 인정받은” 그 명예를 감사하며 찬미할 수 있는 믿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우리를 악에서 구하여 주옵시고, 연약한 영혼들마다 성령의 역사가 힘있게 나타나는 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김창운 담임목사 2017.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