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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2017.08.13)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5장 1-16절
 
 
본문 내용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Content

                    

              행 5: 1-16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무더운 여름을 지내고 있습니다. 너도나도 여름 더위를 피하고 싶어서 휴가를 가고 피서를 합니다만, 이 무더위 여름은 누군가에는 꼭 필요한 계절입니다. 얼음장사, 에어컨 선풍기 장사하는 사업가들에게는 물론이겠지만 이 여름날을 지내는 농부들에게는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야 벼가 무르익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도 더웠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선선해졌습니다. 우리 청년부 국내선교를 다녀오면서 장로님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절기가 무서운 겁니다. 어떻게 잘 들어맞는지.” 맞습니다. 절기가 무섭죠. 딱 맞습니다. 신앙 인격적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법칙이 참 무서운 것이죠. 틀림이 없으신 하나님의 법이 이 땅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의 법도가 하나님의 교회에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으로 새로와진 이 나라 이 민족 위에도 하나님의 법도가 임하여 있습니다. 광복절 72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에 임하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늘의 아름다운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우리 성도된 이들이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난 엄중한 심판의 현장이 기록됩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두렵습니다. 그만큼 설교 하는 것도 부담스럽습니다. 저를 종으로 부르신 주님의 명령에 따라, 말씀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공감하시며 순전히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서 자기들의 소유를 팔았습니다. 이유는 교회에 바치기 위해서였습니다. 4장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초대교회에는 믿는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자기의 재물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당시에 영적으로 명성 있던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기의 밭을 팔아 교회에 바쳤습니다. 이 부부도 바로 그런 헌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땅을 팔고 사도에게 가서 바쳤습니다. 그런데 전부를 드린 것이 아니라,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일부만 가져다가 바쳤다고 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것을 드릴 때 베드로 사도가 사태의 진상을 알고, 이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심각한 책망을 합니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였느냐?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너의 것이고, 팔린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었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할 마음을 먹었느냐? 이것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로다!”
그러자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그 즉시 장사를 치렀는데, 세시간 후에 그 아내 삽비라가 들어옵니다. 베드로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땅 값이 이것 뿐이냐” 대답하기를 “예, 이것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어서 책망합니다.
“어찌하여 너희 내외는 함께 공모해서 주님의 영을 시험하려 하였느냐?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이들이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갈 것이다!”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숨졌습니다. 그녀 또한 곧장 장사되어 그 남편 곁에 묻힙니다. 이로 인해 온 교회와 이 사건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도 두렵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 더불어 읽어야 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서두에는 일곱 교회를 향한 묵시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보신 분들은 아시지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교회는 모두가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문을 닫게 된 사건을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교회들이 문을 닫게 되었는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그것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중 에베소 교회에 대해 주님이 전하시는 계시의 말씀이 이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들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주님께서 이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 덧붙여 책망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게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그 <아름다운 처음 사랑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돌이켜 그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에베소 교회의 결국은 이 말씀을 붙잡지 못한 때문인 것입니다. 고로 교회의 처음 사랑의 현장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에 서 볼 수 있듯이, 영적 타락을 통한 악의 도전을 성령께서 얼마나 미워하셨으면 교회 부흥의 벽두부터 그런 일을 쳐서 제거하셨을까 그것을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건은 한창 성령님의 권능이 부흥을 일으키시던 초대 교회에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님의 역사가 뜨겁게 나타나자 이에 반격하는 사탄의 도전이 있었습니다. 이 중대한 공격은 3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물리적 핍박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초반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 부활을 증거하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그를 미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이고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예수 그리스도의 도 전하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물리적인 폭력과 탄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교회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런 핍박 속에서 성도들은 성령 충만으로 더욱 담대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더욱 큰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사탄의 도전은 영적 타락을 부추기는 전략이었습니다. 대단히 교활한 전술입니다. 외부로부터 교회를 탄압함으로써 파괴하고자 했으나 그것이 실패하자, 사탄은 오늘 5장에 기록된 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통해 교회의 내부 생활에 악의 모양을 심어놓아 교회를 망치려 했습니다. 세 번째 가장 교묘한 전략은 영적 집중력을 산만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교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갈등 요소들이 등장합니다. 구제하는 일과 분쟁 해결의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 일들로 인해 사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말씀전파라고 하는 본연의 사명이 산만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와 말씀 대신에 행정과 구제의 일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교회를 흔들고자 했습니다. 이 모든 사탄의 전략들이 초대교회에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로 인해서 성령께서 일하셨기 때문에, 도리어 이런 갈등들을 통해 더욱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신 교회에서 한마음 한 뜻으로 물질을 나누며 모두가 넉넉하게 유무상통했던 일들은 그야말로 천국의 모형이었습니다.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바나바라고 부르는 요셉은 성령의 감동으로 땅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도록 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이 자발적 희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 성품이 성숙하게 무르익은 사람들이 성령 충만의 열매로 그런 헌신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무궁하게 소망이 있게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나바라는 분은 초대 교회 교인들이 칭찬하고 모두가 존경하는 인물이 됩니다. 이후 사도행전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일들을 해낸 성도의 모범으로 계속해서 만나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도 그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침으로 명성을 얻는 이 일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의도부터가 위험했습니다. 그것을 사도 베드로는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2:2에 등장하는 성령이 다락방에 가득하였다 할 때 동일한 어원(플레로오, 4137)입니다. 외견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탄이 충만했다고 해서 머리에 뿔이 돋은 것이 아닙니다. 공관복음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와 같은 모습을 한 것도 아닙니다.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바쳤어요. 귀감이 될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어요. 이 사람의 행동은 특별했고 칭찬받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이 정도만 해도 쉽지 않은 실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사탄이 그 마음에 가득하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자기가 이 일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단순한 이치 같지만 이것은 중요합니다. 시작은 나도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목적을 두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새 이 사람의 행동 동기는 성령의 감동이 아니라, 자기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그 틈을 노립니다. 행동은 선하지만 그 중심에 나의 자존심, 나의 명예, 나의 유익, “나”를 그토록 중심한 그 곳에 회심의 미소를 띠며 그 코를 꿰어 악의 길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옵니까? 첫째, 하나님을 속이게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유무상통과 자발적 희생은 결코 율법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합니다. “이 땅이 네 것이었다. 얼마든지 소유한 채로 갖고 있어도 되었다. 그것을 팔았다면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그 재산을 쓸 수 있었다. 안 내어도 되었고 일부만 낸다고 말해도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지를 마음을 품게 되었느냐? 이것은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따먹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숨은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아들 가인이 시기와 질투와 분노로 동생 아벨을 쳐 죽였을 때에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사탄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속일 수 있으리라는 마음을 품게 만듭니다. 사도 베드로가 지적하는 이 사람의 죄는 착복의 죄가 아니라, 위선의 죄였던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사람들 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시선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로마서 3:25의 기록처럼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우리의 죄를 간과하신다>고 했으므로, 오늘도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정직한 양심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속이게 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일부임에도 전부라고 속이고, 그 아내에게 다시 물었을 때도 “땅값은 이것이 전부입니다”고 말한 이유는, 자신의 명예와 명성의 욕망입니다. 자기의 자아를 즐겁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분명 이 사람들은 자발적인 희생을 자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바치기에는 아깝습니다. 물질은 남겨두고 싶고, 명성은 명성대로 누리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망의 모습을 정직하게 주목해보시겠습니까? 저도 물론이고 누구나 육신을 입고 있다면 칭찬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고 박수 받고 싶습니다. 사탄은 그것을 부추깁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로 하여금 사람 앞에서 칭찬을 받고 박수 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이용하여 <자발적 희생의 헌금 전액> 이라는 허위를 남용하며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실 것은 주님은 가난한 미망인의 두 푼의 헌금을 가장 귀히 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그 중심과 행동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중심이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 또 우리 예배와 헌신의 목표지점도 오로지 하나님만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탄은 결정적으로 회개의 기회 또한 놓치게 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룩한 교회앞에 물질을 바쳤습니다. 거룩한 곳에서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선한 양심을 회복하고, 거기에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정직한 영으로 예배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진정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입고, 정직하고 온전한 물질로 주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칩니다. 심지어 아내 삽비라에게는 베드로 사도가 직접 묻습니다. “이것뿐인가?” 태연스럽게 대답합니다. “이것뿐입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삽비라는, 그리고 아나니아는 안타깝게도 그 심령이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마는 비극의 종말을 맞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크신 은혜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의 죄를 자백할 때 주님은 아름답고 의로운 손길로 우리를 깨끗게 씻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도 말씀합니다. 86:5 말씀입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시86:5)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매여 있을 때 우리의 양심과 영혼은 그만큼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기에, 우리의 죄의 멍에를 벗겨주시고자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되 기쁨으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 두려움이 있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은 다시 깨어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더욱 새롭게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초대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12-16절까지의 말씀은 이러한 사탄의 책략과 도전 중에도 하나님의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성장해갔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사탄은 아나니아 삽비라를 통해 교회를 흔들려 했으나, 성령께서는 이 일을 통해 성도들로 하여금 더욱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님의 권능만을 받으며 말씀의 역사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온 성도들이 솔로몬 행각을 중심으로 해서 열심히 모였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만 덮여도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일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 사건이 나타났을 때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감사하며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성도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를 칭찬했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아의 욕망을 위해 성령을 속임으로 칭찬을 구하다 멸망의 길로 갔지만, 성령님이 살아계신 교회는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면서 저절로 칭찬을 얻습니다.
16절 말씀에서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할 누가의 증언을 봅니다. 이제는 드디어 예루살렘 뿐 아니라, 예루살렘 부근의 사람들로 모여왔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을 받음으로, 이 놀라운 역사가 성령님의 주장하심으로 오늘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의 것이 될 것을 소망하며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성령님께서 예배를 통하여 우리 속에 역사하심으로 인해, 다시금 정결한 영으로 새 힘을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불운의 인물들을 반면교사로서 바라보며, 오직 성령님의 권능을 구하오니, 악한 영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심령으로 날로날로 성장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생을 사는 날만큼 선한 양심으로 성장하게 하시고, 우리가 믿는 세월만큼이나 신앙 인격이 무르익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애의 끝은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만이 남게 하옵소서. 아멘.


 

천국의 모형(模型)을 이루시는 성령님 김창운 담임목사 2017.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