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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핍박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 (2017.07.30)
설교자     김창운 담임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4장 19-31절
 
 
본문 내용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Content

행 4:19-31 핍박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 251, 410장
믿음의 사람들이 감사할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사람들과 다른 눈이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보다 넓은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북쪽과 남쪽,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창 13:14).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낙심이 될 때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더 크게 주시는 복된 땅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신 3:27). 비록 지금 너의 육신 인생에는 다다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약속의 땅을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시 121:1).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밧모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에게 하늘을 바라보게 해주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셨고 보좌에 앉으신 이를 바라보게 하셨습니다(계 21:5). 세상은 땅으로만 우리의 시선을 고립시키려 하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천국을 바라보게 하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의 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위기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적과 기사가 나타나고 부흥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날 때 대적의 반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회개하여 믿음의 길을 가고, 주일이면 예배에서 새롭게 결단하여 새 길을 가려고 할 때 옛적의 습관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듯이, 영적인 일에는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런 위기의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사도들에게 찾아온 첫 핍박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가히 영적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날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시고, 기사와 이적과 은사들이 나타났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으로 충만하자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예수님의 구원 역사를 선포할 때 삼 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솔로몬 행각에 모아 부활하신 주님의 구원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5천명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점입니다.
앉은뱅이가 나은 기적으로 사람들이 성전 입구의 솔로몬 행각에 운집했습니다. 이것을 좋지 않게 여겨 방해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핍박이 일어납니다. 당시 유대의 권력자들이 그 곳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제자라는 자들을 즉시 붙잡아 가두었습니다. 이유는 하납니다. 그들은 이 사도들이 “예수의 부활의 도 전함을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은, 자신들이 공모하여 십자가에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하는 것은 이 유대의 교권자에게 당혹스런 일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당시 사두개인들은 로마의 비위를 맞추고 권력에 협력하면서 부유한 귀족 계층으로 자리잡은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이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고 천사나 사단 등의 영적 세계도 믿지 않았습니다. 영혼에 대해서도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들의 전하는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이요 성령의 역사요 영생에 이르는 구원이었으니 자신들의 교리와 다르므로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이 사두개파 사람이었으므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이 두 사도를 체포하고 구금했습니다. 당시 유대 공회의 법 조항에는 “생명에 대한 재판은 낮에 시작하여 낮에 마쳐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으므로, 이 사람들이 저물어 갈 때 체포되었으므로, 하룻밤을 옥에 구금한 뒤 다음 날 공식 법정에 서게 한 것입니다.
이 법정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산헤드린 공회입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 민족의 최고의 법정이었습니다. 주전 200년경에 구성되었는데, 여기에 의장은 대제사장 가야바였습니다. 모세 율법에 따라 70명의 공회원을 구성했는데(민 11:16), 제사장 그룹 24명, 장로들 그룹 24명, 율법학자 서기관 그룹 22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율법학자 서기관 22명 그룹은 바리새파였고, 제사장 24명 그룹이 사두개파였습니다. 이 두 계파는 신학과 권력면에서 서로 앙숙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죽이고자 모의하는 일이나 지금 사도들을 처단하려 하는 일에는 그야말로 “공모”를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지금 이 법정에서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심문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했느냐?” 베드로가 대답을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가 전한 권세는 예수 이름의 권능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에 보면 지난 두 번의 설교와 똑 같은 도식으로 설명합니다.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셨다 그 분의 권능의 역사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나음을 입었다 주님만이 구원을 주시고, 그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신 일이 없다.” 주님의 이름과 권세와 능력, 그리고 구원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핍박의 시기에 사도들 속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그 영적 역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께서는 핍박 속에서 베드로로 하여금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산헤드린이 어디라고요? 유대 최고의 법정입니다. 사형언도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로마와 결탁하여 예수님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십자가형으로 보내버릴 수 있었던 권력 집단이었습니다. 거기에 이번에는 베드로가 섰습니다. 그리고 저리도 담대하게 주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잡히시던 밤 베드로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자기도 해를 받을까 두려워서 예수님을 멀찍이서 따라갔습니다. 모두가 주를 버려도 자신만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담대히 전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전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전하고 주님의 영광 받으심을 전합니다. 그들의 잘못을 담대히 지적하며 주님께만 구원이 있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들의 그릇된 신학에 도전하고, 그들의 오만한 교권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의 사람들은 자신만만했습니다. 그들의 권력과 언변으로 야합하여 예수도 한방에 날렸으니 이 제자들쯤이야 배우지도 못하고 힘도 없는 무지랭이니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태도가 워낙 담대할 뿐 아니라, 예수를 전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꼬투리를 잡을만한 구실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 사람이 전에 예수와 있던 사람이기에 예수에 대한 증인으로서 타당하고, 그의 증언도 타당한 것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바로 그들 눈앞에 있었던 것입니다. 만인이 알고 있고 그들도 성전 미문에서 보았던 앉은뱅이가 나아서 지금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들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 완벽한 변론을 어디서 나온 것이라고 할까요? 성령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5절에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해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눅 21:15). 주님은 제자들에게 장차 박해와 투옥과 재판정에 서게 되는 핍박의 일들을 말씀해주셨고, 그것에 대비해  “변론할 말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그 자리에서 구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말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는 저 서슬 시퍼런 법정의 중심에서 담대히 심문에 대변(對辯)하고 있습니다. 답변 수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성령 충만한 중에 약속하신 구변과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 공회가 흠잡을 것이 없자, 풀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끼리 의논을 하여 결국 이들을 풀어줄 때 협박하면서 말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참으로 담대한 대답을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19-20)
이런 담대함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으냐! 우리는 보았다. 들었다. 증인이다.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도들이 중요한 말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금 저 산헤드린 공회의 권력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시선은 눈 앞 세상의 것이 아니라, 저 위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몸은 가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님의 능력은 결코 가둘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훈방 조치가 됩니다. 주님이 이 사도들의 자리에서, 그 핍박의 자리에서 친히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성령님을 사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 속에서 주님이 친히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께서 핍박을 통하여 기도하게 하십니다. 이 사도들이 풀려 나와 제자동료들에게로 갑니다. 그간의 일들을 다 알려줍니다. 그때 그들이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온 무리가 통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내용을 우리가 읽었습니다. “대주재여!” 하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대주재(大主宰, 데스포테스)란 말은 감히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권세를 지닌 통치자를 부르는 말입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찬양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최고의 법정인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를 체포 구금을 했었고, 협박을 하며 주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금지 조치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떤 권력보다 위에 계신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고백하며 호소합니다. 인간의 칙령으로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음을 믿으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간절한 기도는 세 가지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2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위협을 굽어보심으로 해결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이적의 권능이 나타나게 하셔서 병이 낫고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건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핍박 속에서 성령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핍박이 있음으로 인해 더욱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핍박이 도리어 도전이 되어 성도로 하여금 더욱 기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핍박이 이들에게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진 자들 속에서 성령님이 일하셨습니다. 십자가로 인해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기도하게 하십니다. 어떤 모양의 십자가를 우리에게 허락하셔서 그로 인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충만이 역사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고난의 십자가가 어떤 것이든, 그로 인해 기도할 수 있다면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각자의 삶에 십자가를 통해서, 또한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를 통해서 기도하게 하시고, 친히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은혜가 날마다 더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그들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기도는 온 무리로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원대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말씀은 말씀을 낳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사도들의 말씀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도들의 말씀은 이제 온 무리가 전하는 말씀으로 퍼져갑니다. 성령님의 일하시는 역사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주님으로 인해 핍박을 당하여 법정에 서게 될 때에 구변과 지혜를 친히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한마디 더 하셨습니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 21:13)”
주님이 제자들에게 핍박의 시간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며, 그 일이 도리어 증거가 된다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증거가 되고, 주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가 되고, 더욱 담대하게 되는 증거가 됨을 뜻합니다. 말씀대로 투옥과 재판정의 이야기를 들은 후 온 무리가 담대해졌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언약의 증거가 성취되고 사도들이 풀려나고 주의 말씀이 더욱 힘있고 담대하게 전파되는 증거가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담대하여 주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였고, 그 소원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이 능력 있게 전파되도록 하였습니다.
복음성가 중에 우리가 즐겨 부르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한가지”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의 이름이 전해져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것을 기뻐하시며, 그것을 소원하는 자, 그를 위해 기도하며 성령 충만한 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 속에 있고 충만하신 사랑 속에 있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연의 흐름 속에서만 키워오신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순리대로만 길러오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을 특별한 은혜 속에서 양육하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이적과 표적들을 간증거리로 주시며 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그 간증들을 잘 간직해오고 계십니까? 앞으로도 더 많이 간직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많이 기도하시고 더 끈질기게 기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요한계시록 7-8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께서 우리의 목자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절차에 천사가 하나님께 나아가 올려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제단의 향연과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함께,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향연과도 같이 고이 올려지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의의 심판의 날이 오기 직전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며 성령으로 충만하고, 소원하며 간구할 것은 초대교회의 저 사도와 제자들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하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이 일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이 이 시대에 더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우리 속에 살아계신 주님, 오늘도 저희 안에 임하시고 일하심을 감사합니다. 원하옵기는, 저희를 주님 이름을 증거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인생의 생업과 학식과 경험 모두를 모아 주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다가온 어려움이 있을 때 십자가를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깨닫게 하시고, 어려움이나 핍박의 시간 앞에서 담대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향연처럼 올라간다 하셨으니 더욱 기도하며, 제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오늘까지 제게 주신 말씀과 제게 부어주신 은혜의 간증들을 잘 간직하게 하시고, 이 말씀들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오늘 저희 교회 속에서 일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이 권능있는 역사로 나타나도록 성령님 힘껏 일하여 주시옵소서.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이 내 속에서 일하심을 믿으며, 주님의 부르심과 회개케 하심과 새롭게 하심에 순종하는 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진리를 사모하게 하심을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증인, 증언, 증거 김창운 목사 2017.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