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벧엘방송 > 주일설교 
  증인, 증언, 증거 (2017.07.23)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3장 11-26절
 
 
본문 내용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17.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22.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4.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25.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Content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증거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곧 베드로의 두 번 째 설교가 됩니다.
때는 성령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의 사건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이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후 3시의 기도와 예배의 시간을 마친 후 성전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치유 받은 사람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성전 밖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으로 이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리에서 지난번 오순절 날에 이어 두 번째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첫 일성은 이것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주목하느냐! 12절 후반에 기록됩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주목했다(아테니조)는 말은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이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도 동일하게 썼습니다. “우리를 향해 주목하는 것이 어찌 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조상들은 <견지망월>이라는 말이 썼습니다. “달을 보라고 손으로 달을 가리키고 있는데,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이 일이 내 경건의 모습이나 내 의의 모습으로 나온 능력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 예수님의 영이 일하셔서 이 역사를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님을 향해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기초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중심의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신앙 생활을 하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날 때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벌어진 이 사건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이 기적 사건에 머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은사와 이적이 나타난다 했을 때 그 자리에 멈추고 그것만 바라보고 있다면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의 경건과 자신의 권능으로 이 일을 한 것처럼 자기 의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명심할 것은 사람이 자랑하려 드는 자기 의의 종말은 죄된 결말을 초래합니다. 사람의 의지는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이적 사건들과 병 고침의 일들과 치유와 방언과 예언과 각종 은사 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변증적인 신학을 하는 곳이 독일입니다. 그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했고 하나님의 간구했습니다. 분단되었던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성령님의 신비로운 역사를 믿은 그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신비에만 머물면 신비주의가 됩니다. 영적 체험이 말씀으로 다져지지 않으면 신비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신비주의에 빠짐으로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이단에 빠졌습니다. 그 원인은 말씀으로 다져지지 않음으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처럼 미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뭐라 하였습니까? “네가 눈이 밝아져 하나님 같이 되리라.” 그리고 뭐라 하죠? “선악을 알게 하리라!” 스스로 높아져 선악을 안다고 하여 판단하는 위치에 서려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고상한 위치에 심취하여, 자칫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의가 앞서고, 예수님의 은혜보다 자기의 경건이 앞섬으로써 하나님을 대신하려 드는 교만이 심령에 자리를 틀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유명한 선배 목사님(손양원목사님)이 설교를 하던 중에 한 봉사가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의 능력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교우들이 예배를 드리다가 야단이 났습니다. “봉사가 눈을 떴다! 이 사람이 보게 되었어요!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야말로 온 교회가 들썩거리고 있을 때 목사님이 사람들을 잠잠히 시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데 그게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정도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기적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어떤 기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로 여기셔야 합니다. 심지어 목사나 장로가 안수하여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간다고 해도,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사건이므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들 속에서도 성령 체험이 있고 성령 은사가 있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적과 은사들은 반드시 말씀으로 더 깊은 하나님 나라의 체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공생애 들어가시기 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돌로 떡을 만드는 것도, 절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세상의 권세도,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기이한 이적들도 주님은 다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것을 거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이 목적인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배부름과 일신의 편안과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기적을 거부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신명기 8:3)이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명기 16:6)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명기 6:13)입니다.
유대인들의 습관은 밤낮 없이 표적을 원하는 것이었습니다.(세례 요한은 표적이 없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습관적으로 끝없이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을 헐라 내가 삼 일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결국 가장 영원하고 변치 않는 구원의 표적,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시고 결국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베드로는 사람들을 향해 강력하게 증언합니다. 나를 보지 말라! 앉은뱅이에서 일어나게 된 이 사람도 보지 말라! 예수님을 바라보라! 사도 요한이 증언했던 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요1:14) 바로 그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1. 13절)여러분이 그 분을 죽였습니다. 빌라도 조차 살리려고 했던 그 분을 당신들이 거부하여 살인자 바라바를 풀어주도록 했죠? 여러분이 그렇게 해서 “생명의 주”- 여러분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을 직접 죽이고 만 것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 분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놓치지 말아야 할 심오한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일 뿐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분이 이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분이 하셨습니다!
3. 그리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촉구합니다. 사도행전 3:17-19절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지도자들처럼 여러분도 모르고 그런 일을 할 줄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예언자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을 이렇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행 3:17-19상, 현대인의 성경)
유대인 지도자들도 여러분도 이러한 영적 사실을 모르고 한 일이었으므로, ‘이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까지도 예언자들을 통해 미리 말씀하셨고, 그것을 모두 이루셨으므로,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성경이 촉구하는 결단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외침을 들으셨지 않습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에서는 3천명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날 솔로몬 행각의 설교에서는 남자 수만 5천명이 되었습니다(행 4:4). 그 말씀이 이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히 4:12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능력이 그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서신 여러분, 그간 모르고 주님을 배반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일들이 있었다면 이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십시다. 하나님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고는 너무 퇴색되어 대단히 정치적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많이 끌어 모아 세를 불리고자 정치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 우리를 오늘까지 길이 참으심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야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5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얻는 복에 대해 3가지를 말씀합니다. 첫째, 19절 중반에 기록된 대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의 복은 죄 없이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생명의 주 되신 예수님을 죽인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살인죄가 얼마나 무거운 죄인지 알고 있습니다. 십계명에 기록된 이 살인죄는 인륜의 가장 큰 죄요, 살인자는 사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는 말합니다. 당신들은 인간을 살인한 정도가 아니라, 그 인간의 생명을 만드시는 주인을 죽인 “살신죄”를 저질렀다! 살인죄도 그러한데 그들의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를 죽인 죄는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그러므로 그들을 향해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회개한다면,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것을 씻어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씻어주신다는 말의 원어(엑살레이포)는 깨끗하게 씻어 완전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한 성서학자(윌리엄 바클레이)는 말합니다. 고대에는 파피루스에 글을 썼는데 그때 쓴 잉크는 지금의 잉크처럼 파피루스에 스며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원어에 담긴 뜻은 파피루스 표면에 칠해져 있는 그 글씨를 젖은 스펀지로 지우면 깨끗이 지워지는 것처럼, 죄 사함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회개하면, 정말로 아버지로 돌아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고백을 한다면, 첫째,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그 죄를 깨끗이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 43:25에서 하나님은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선포하십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회개하는 자에게는 죄의 흔적이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는 (1도 남지 않는) 사함의 은혜를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께 돌아갑시다. 참된 회개,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를 통하여 다시는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 그 죄가 기억되지 않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복은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9절 중반에 보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새롭게 된다는 말(아납시크시스)은 ‘위안, 휴식, 원기 회복”을 뜻합니다. 과거 개역성경에서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비로소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평화와 휴식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죄사함과 더불어 얻게 되는 참된 복입니다. 자유입니다. 해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씻어주실 때 누리게 되는 희열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실되고 참된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성령님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면 시각이 바뀝니다. 기쁨의 시각으로 긍정과 사랑의 시선으로 바뀌면, 하늘이 달라지고 세상이 달라집니다. 가정이 달라지고 교회가 달라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고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 주님, 우리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우리 영혼엔 진정한 안식이 없나이다.”
오늘 미래를 위한 염려와 근심에 쌓인 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끈에 묶여 앞으로 한걸음도 나가기 어려운 분이 계시다면,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질병이나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습관에 묶여 영혼의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참된 자유 있고 성령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서 일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속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쓰시는 증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우리는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주시고, 더불어 참된 자유와 안식, 성령 충만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받는 복입니다. 20절 중반에 보면,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심을 받는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5에는 이렇게 기록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5)
우리 주님께서 모든 만물들의 탄식과 죽음의 역사를 깨끗하게 하시는 날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많은 피조물들이 신음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지역마다 3년째 극심한 가뭄으로 일년에 일천 개의 호수가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호수가 말라가면서 호수 주변에 허옇게 쌓여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소금이었습니다. 극심한 석탄 재료의 사용으로 지구가 온난화 되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피조물들의 몸살어린 탄식을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날에 성도들은 주님이 오심을 바라볼 것이요, 주님께서 이루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멸망의 징조를 봄으로써 사색이 되고 죽어가겠지만, 회개함으로 죄 씻음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된 성도들은 주님의 오심을 바라보며 “마란아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노래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이요 미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그렇게 존경 받을 만한 성품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급했고 쉽사리 화를 내고 변덕스런 면도 있었습니다. 주님 앞에 결정적인 실수도 있었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약하고 겁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말씀은 위대합니다. 권위 있고 능력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설교로 인해 남자만 5천명이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여성까지 합친다면 예상 만 명인가요? 이 사람이 위대해서인가요? 아뇨, 말씀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 분이 강력히 선포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에게서 나오는 증인의 권능이었습니다. 기억하시죠?
행 1:8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오늘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한 분들은, 베드로의 선포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참된 평강을 누리며 영생을 향해 초대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복을 모두 누리실 수 있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언약된 그 참된 복(바라크)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복을 누리시며 세상에서도 돈에 물질에 권력이나 악한 것에 기죽지 마시고 가슴 펴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지 말고 기억해야 할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는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찬송가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442장. 3절에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마 28:18-20에 주님의 명령을 기억합시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도의 위치는 그 복을 받고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 주시며 혼자 잘 먹고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복이 되고 만민이 너를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의 역사로 증인이 되었듯이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을 때 증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여 그 사람을 쓰실 때 베드로처럼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성령의 권능을 입어 증인이 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증언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한 그 증인의 입술에서 증언이 나올 때 그 삶에서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랑스런 벧엘교회 성도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 이름 석자 가지고 사는 인생, 아니, 하나님께서 <너라면 그렇게 살겠지> 하고 믿음을 은혜로 주신 이 인생, 내 한 몸 배 불리다 말겠습니까? 내 가족, 내 집안만 배 불리다 말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 은혜로 과거의 죄의 사슬이 끊어지고 그리스도의 계보에 속한 인생 되었으므로, 이제 성령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대에서 그런 증언들을 마음껏 전해주며 사는 인생으로 살고, 우리 믿음의 후세들에게 그 증거들을 풍성히 남기는 멋진 인생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결단하며 그 인생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위에 성령께서 참된 증인으로 충만해 주시고, 이런 증인됨과 증언들과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며 웃고 춤추시는 인생 되시길 바랍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저희 속에 언제나 말씀이 권능으로 임하심을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성령님, 오늘도 충만하여 주시고 권능으로 임하여 주시옵소서. 제 영혼이 참으로 회개하여 씻음을 얻게 하시고, 주님이 부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마라나타의 찬미로 주님을 맞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남은 생이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오로지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에 이르도록 성령님이 새롭게 하시고 성령님이 쓰시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 이름이 증언되게 하시고, 내일 우리의 후손들에게 성령의 증거들을 남겨놓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내일도 성령님 충만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사랑하는 주님, 오늘도 저희의 영혼을 예배당으로 인도하시고,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 영혼들 위에 성령을 부어주시고 충만하게 하옵소서.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시고 말씀의 역사가 심령으로부터 인생 곳곳에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간절한 기도처럼, 세상의 혈통을 뛰어 넘은 성령의 증인이 되게 하시옵고, 시대의 욕망을 뛰어넘는 성령의 증언이 저희에게 있게 하옵소서. 2017년을 사는 우리들이 남긴 증거들이 우리 사랑하는 가족, 자녀, 믿음의 후손들에게 성령님의 증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전 미문의 기적 김창운 목사 2017.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