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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 미문의 기적 (2017.07.16)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3장 1-10절
 
 
본문 내용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Content



                                   성전 미문의 기적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봅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봅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보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고로 성령님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성령이 임하신 기적 사건입니다. 소위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성전 미문의 기적’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을 정해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규례를 따라 하루에 세 번 3시, 6시, 9시에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아침 9시, 정오, 오후 3시입니다. 오후 세시의 기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갈 때였습니다.
아름다운 문, beautiful gate이라고 하는 미문이라는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전을 오가는 사람에게 구걸을 하는 앉은뱅이였습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구걸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해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그러자 이 사람이 무엇을 얻을까 해서 두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그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걸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도와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성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저 미문 곁에서 구걸하던 그 앉은뱅이였던 것을 알고 모두가 놀라고 기이한 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기사와 표적은 주님의 공생애 기간에 허다하게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43에서 누가는 초대교회에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의 일들이 사도들을 통해 이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시대에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믿지 않습니다. 기적은 오래 전 일이고, 지금은 과학과 기술 문명의 시대이기 때문에 기적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월적 능력, 성령님의 살아계신 권능에 대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이들에게는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라는 이념이 종교적 신념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어렴풋이 압니다. 세상 우상들과 조합하여 압니다. 자신의 이성으로 가두어 놓고 이해하려 합니다.
로마서 1:21-23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런 경우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므로(히 11:6)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어떤 교회는 하나님을 믿고 예배도 하지만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도있습니다. 주님이 그 속에 살아계시지 않은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부유했습니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고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뜨거움에서 멀어졌습니다.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부요한 것 같지만 그 속에 주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어지고 그들이 지닌 물질로 인해 눈 멀고 벌거벗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중세에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 이노센트 2세를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마침 금화 한 웅큼을 쥐고 세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를 보고 교황이 말했습니다. “토마스, 당신이 보다시피, 교회는 더 이상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어졌소.”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교황이여, 그리고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앉은뱅이를 향해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도 없어졌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물질에 부유해지면 영적으로 가난해진 것입니다. 물질로는 넘치지만 영적으로는 벌거벗게 된 것입니다. 그런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말씀합니다.
계 3: 19-20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오늘 우리는 말씀을 붙잡고 성령님의 역사를 믿으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일하시는 삶, 성령님이 움직이시는 교회를 꿈꾸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부림이어야 합니다. 단지 일시적인 꿈틀거림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적 생활과 교회의 생사를 건 몸부림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태어나 이 땅에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벧엘교회를 세우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인 것입니다. 이 시대적 사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전 미문의 이 기적 사건은 성경의 수많은 사건들 중에 누가가 대표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43에서 누가는 초대교회에 이미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일하시자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고 성전 미문의 사건이 그렇게 전개된 것을 보여줍니다. 성전 미문의 이 기적은 하나의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들, 복수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이 기적 사건 속에서 성령께서 보여주시는 기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성전 미문에서 일어난 세 가지 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영의 눈을 열어 이 사람을 보게 하신 기적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분은 기도의 규례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침과 정오와 오후 세시, 이 시간을 정하여 기도하였으므로 이 성전을 늘 출입하였습니다. 성경 본문 2절 하반부에 보면 이 앉은뱅이를 늘 그 자리에 메어 와 주는 사람이 있었고, 날마다 미문에서 구걸을 하였습니다. 날마다 그 곳에 있었으니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습니다. 사도들도 날마다 기도하기 위해 다녔으니 어제도 지나갔고 그제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날, 이 때에 이 사람을 봅니다. 성경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미세한 표현이 있습니다. 성경 4절에 보면,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았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은혜 속에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주시는 특별한 은혜는 이것입니다. 영의 눈을 주시고, 보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날마다 일상에서 육의 눈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일들을 성령께서 새롭게 보게 하시는 기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일으키시는 기적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의 눈이 멀어집니다. 기도하며 성령의 역사가 살아날 때 성령께서 내 속에서 일하시며 영의 눈을 밝혀 보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갖게 하셔서 40년 동안이나 앉은뱅이로 살아오고 있는 저 고단한 영혼을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동정 어린 마음으로 한 푼 두 푼을 동냥해 주던 것에 비교할 수 없는 놀랍고 귀중한 선물을 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어나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꿈만 꾸어왔던 일이, 복음의 능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확신이 안가는 분들은 사도 베드로의 첫 설교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 2:38에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방언하는 제자들을 보고 놀랄 때 베드로가 이 사람들에게 전하는 설교의 결론입니다. 새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행 2:38, 새번역)
오늘 내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여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죄에서 놓임을 받았으니 죽음의 길이 아니라 천국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고백이 있다면, 성령님이 선물로 오셨고 내 속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도들처럼 기도하시며, 성령께서 우리 속에 일하시며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주시는 기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누가의 본래 직업은 의사입니다. 의사의 눈에서 이 환자는 결코 쉽게 고쳐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가는 섬세한 필체로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라고 기록합니다. 원래 원문에는 날 때부터가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라고 했습니다. 모든 체형과 체질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의사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가 선포하며 그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그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즉시로 일어난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일하신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손길이 이 사람에게 임하자 도무지 고칠 수 없는 불치의 장애가 재창조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체질과 구성과 조직까지 순식간에 새롭게 되어 그 자리에 일어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회개와 세례와 용서의 은혜를 입으신 여러분! 오늘 나사렛 예수의 영이 저와 여러분 속에 살아계시고, 우리 교회에 살아계십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오늘 이 예배 속에서 앉았던 인생들을 일으키시는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일로든 마음에 낙심한 사람이 있다면 성령님의 손길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에 장애가 있는 자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지나친 경쟁 속에 실패하여 넘어진 인생이 성령님의 역사로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예배 속에서 지금껏 부여안고 있는 질병도 우주의 주인의 재창조의 손실로 낫게 하여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참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믿음을 주신 것이 정말로 중요한 기적이었습니다. 기적 사건의 열매가 중요하지만, 그 동력은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8장에서 백부장에게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신 그 믿음처럼,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일으키실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행 3:16절 말씀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낫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답을 베드로가 이렇게 전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어디서 왔다고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에 전한 것처럼,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 기도하며 믿음이 더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을 따르고자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이 믿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적을 바라십니까? 내게 장애가 있거나 질병이 있거나 해결해야 하고 끊어내야 할 중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그것을 놓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더욱 간구하실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열매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사건이요 끊임 없이, 끈질기게 기도하는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간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주님이 내게 오셔서 답을 주십니다. 이 질병과 장애와 고통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더 소중한 것을 주십니다.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눈을 주시고, 고치시는 기적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주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의할 것은 기적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방편일 뿐입니다.. 기적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하시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적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고 우리로 보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일하고자 하시는 성령님을 더욱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 될수록, 내 자아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사시는 그 믿음의 길을 결단하며 걸어가게 하시는 것, 이것이 참된 기적의 의미인 것입니다.
성전 미문의 이 기적 사건. 이 사건을 읽으며 한 성서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앉은뱅이를 고쳐주신 “이 권능은 그리스도의 권능이었다. 그러나 그 손은 베드로의 손이었다!”(Thomas Walker, The Acts of the Apostle, 67).
4장 4절 말씀에는 이 사건 이후로 제자들의 수가 5천이나 더 했다고 했습니다. 놀라운 숫자입니다. 그러나 숫자도 목표가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참으로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 우리는 한 영혼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때 성령의 권능이 베드로의 손처럼 우리의 손에 입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성령께서 쓰신 그 손길이 주님께 드린 보리떡과 물고기가 됨으로써, 주님께서 5천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기적들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통해 성취될 수 있기를 선포하며 축원합니다.
<은혜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 오늘 제가 성령의 사람임을 다시 한번 믿고 감사합니다. 이 시간 살아계신 성령님이 저희 마음과 인생에 주인 되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성령님의 권능이 일하시길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영적 성장의 미문 앞에 주저앉게  했던 것들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오늘 저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이 일을 오늘 이루시고, 또한 지속하여 이루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사오니, 더욱 큰 믿음 주셔서 나의 손이 베드로 사도의 손처럼 연약한 자를 향해 내밀 수 있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사랑하는 주님, 오늘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 속에 살아계시고 우리 교회 속에 살아계시고, 우리 성도들 속에 살아계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 온 성도들이 더욱 살아계신 성령님께 민감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하옵소서. 오늘도 우리 모임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이루시고, 이 예배 속에서 성령님의 권능이 상한 영혼을 일으키시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구할 때 성령님 친히 일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세상에 눌린 영혼이 일어날지어다. 육신의 질병으로 누워 있는 자들이 일어날지어다. 장애로 인해 앉아있는 자들이 일어날지어다.
주여, 기적을 구하는 우리의 심령이 오늘 단번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기도 속에서 사모하며 간구하는 자들 되게 하옵소서. 뭇 영혼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 십자가에 죽으시도록 우리를 사랑하시며, 주님을 따라오기를 명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주께서 주시는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김창운 목사 2017.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