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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2017.07.09)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시편 75:1-10
 
 
본문 내용
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2. 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3. 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4.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6.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8.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9.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Content

 

75:1-10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쌀 한 톨에는 농부의 땀이 일곱 근이나 스며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쌀 한 톨에 담긴 농부의 수고를 감사하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에는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시고 성장시키시는지 보여줍니다. 애굽에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광야로 부르십니다. 이 백성들에게 귀한 복을 주십니다. 13장에는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하셨다고 했습니다. 16장에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십니다. 2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 위해 십계명을 주십니다. 23장에는 3대 절기를 전해주십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을 포함한 일주일간의 명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자리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여, 하나님 앞에서 일주일을 쉬며 예배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가을에 추수를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쉬고 예배하는 추수감사절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그 전에 봄에 얻은 첫 열매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년에 끝 수확의 감사라면, 맥추절은 일년의 첫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감사절 예배는 전반기에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인 것입니다.

감사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묵상에서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영성가는 <감사란 어떤 것도 당연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Thomas Merton). 마음과 영혼이 무감각한 상태가 아니라 깨어있는 상태에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조차도 바쁜 일상을 살다가 지쳐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면 감사의 마음이 식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자들과 시편의 기자들도 때때로 세상을 바라보며 탄식 어린 질문을 합니다. 시편 94:3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한마디로 악이 득세하고 번성하는 것을 보면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의 기자는 감사의 노래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임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권세 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완성하실 의의 심판을 믿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의 감사를 이 세 가지 차원에서 발견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시인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히스기야 왕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남쪽 유다 왕국에 히스기야 왕이 재위 하던 시절 앗수르가 침공해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직접 18만명 이상 되는 군사를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위협했습니다. 참으로 큰 위기입니다. 두려운 순간입니다. 게다가 산헤립은 사신에게 편지를 들려 보내어 보내어 이런 위협을 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지키신다는 말을 속지 말라. 우리가 그간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에덴족속을 진멸하였다. 그 나라 신들이 그들을 지켜준 적이 있더냐!’ 사탄의 우리를 속이는 위협이 바로 이렇습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그 분은 너 같이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관심이 없다. 너를 이기게 해줄 것 같으냐?’ 하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히스기야 왕에게 배웁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으로 갑니다. 여호와 앞에 그 편지를 펴놓고 기도합니다. 유명한 히스기야의 기도입니다.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왕하 19:15-19)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보십니다. 저들의 비방과 모욕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의 종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를 세우지 못하고, 토성도 쌓지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 이 앗수르 군대를 쳤다고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보니 밤사이 앗수르 진영에 있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다 송장이 되어 있었더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산헤립은 어떻게 됩니까? 말씀대로 비참하게 니느웨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믿는 니스록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무참히 살해됩니다. 악한 자의 말로는 이런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시편의 기자는 이 일을 보았습니다. 어마어마한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그들과 가까이 계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에서 그들을 돌보시고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을 새롭게 깨닫고, 그것을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우리들이 지난 주일까지 사경회를 통하여 은혜를 누렸습니다.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령의 역사 속에서 예배하며 기도할 때 우리와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 멀리 어딘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의 예식과 예배를 통하여 가장 가까이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을 인격적으로 인지하시고 감사로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 자리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의 입술에서도 우리의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참으로 가까이 계셨음”을 감사하는 찬미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이 권세 있게 전파되고 있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1절 후반에 보면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앗수르가 멸망하는 놀라운 사건은 이스라엘 본 민족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을 향해 놀라운 소식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퍼져나가는 것이 좋아 감사의 찬미를 부르는 것입니다.
지난 6 19-23일 홍콩에서는 CWM이라고 하는 선교회의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여덟 나라에서 30여 명의 교회 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께서 기도해주신 덕분에 총회 파송으로 세계 선교의 동향과 방법들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4일 내내 비가 왔습니다. 그 비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주여 이 비를 우리 조국에 부어주소서기도가 줄곧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나라에 가뭄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의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놀란 사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김치 좋아한다 하고 한국 드라마 좋아한다 합니다. 뭐든 한국 것은 다 좋아합니다. 우리 한국 대표가 뭐라고 얘기하면 대단히 진지하게 듣습니다. 우리나라 잘 사는 나라인 것을 새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올 수 있기를 동경합니다. 놀러도 오고 살러도 오고 싶은 나라입니다. <우리만 밤낮 이 안에서 불만이지요> 이만큼 주신 은혜를 우리는 감사감사감사만 해도 다 감사 못할 상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땅끝이 모여오는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이 회의에서 주목한 세계 동향에 주요 추세가 바로 이민migrant 시대입니다. 자신이 살던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필리핀이나 방글라데시 같이 가난한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서 나라를 떠나고, 시리아 같은 곳은 내란이나 압제 정부를 피해서 탈출을 합니다.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 문학가는 지금 시대의 키워드는 만남과 이동이라고 말했습니다마는, 이것이 세계의 주요 흐름인 것을 다시금 보았습니다.

2013년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난 이민의 수가 1 5천만이었는데, 2년 뒤인 2015 2 4 4백만으로 늘어났습니다. 여러분이 그렇듯이 저도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남의 일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2년새 이민이 약 1억이 늘었다는 것은 우리나라 인구의 두 배가 2년새 다른 나라로 흩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민이라는 이동의 동향이 급격히 높아지고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이 사람들을 위해 사역하는 곳들을 탐방했는데, 이집트 아랍 인도네시아 같은 이슬람국가 출신, 특히 십대 이십 대 여자 아이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한창 멋을 부릴 나이의 여자 아이들이 허름한 옷차림에 여기저기 다치고 폭행당하고 그야말로 당장 먹고 살 걱정에 눈만 쾡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약 2 8백명의 난민이 들어와서 입국신청을 기다리지만 200명 가량만 수용이 되고 나머지는 입국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벌써 외국 노동자들이나 다문화 가정들, 탈북민 등 이주민 인구가 근 200만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구 전체의 움직임이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것입니다. 클라우스 슈밥이 4차산업혁명에서 말하듯 문명의 융합 시대일 뿐 아니라 인류의 융합시대인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 시대입니다. 창세기 11장에서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와 민족들을 흩어 버리셨습니다. 스스로 하늘까지 높아지려 했던 인간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은 민족들을 다시 하나로 모으시고, 하나님의 언어, 방언으로 그들을 복음 안으로 불러 모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죄악으로 흩어진 역사를 하나님께서 다시 모으신 역전의 사건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79절의 말씀처럼,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게 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성령의 임하시고 성령 충만을 입은 사람들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 시대에 그 말씀은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셔서, 그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2000여년 역사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땅끝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아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땅끝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국가나 힌두교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들은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땅끝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땅끝들이 모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 나라들 중에 특히 미국이나 유럽 등의 기독교 국가를 향해 민족을 이동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여오는 땅끝을 향해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그들에게 사랑의 도움과 복음 사역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주님이 이루시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노래합니다. 주의 기이한 이름이 전파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만방을 향해 퍼져나감을 보는 것은 시인의 노래처럼, 우리의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닙니다. 현재 진행형인 <땅끝이 모여오는 시대>는 통일과 더 많은 이주민들의 왕래를 통해 우리의 몫이 될 것입니다.

의와 진리의 성령님께서 땅끝을 움직이시며, 세계 도처의 선한 기독교인들을 통해 기이한 일들을 이루어가심을 감사할 일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가까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떠또한 우리의 기도와 간구 속에서도 모여드는 땅끝을 위한 중보와 사랑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의의 심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이것은 우리의 믿음이요 소망입니다. 시인은 그것을 노래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께서 정한 날에 의의 심판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라> 4-5절에는 오만한 자들이 뿔을 높이 드는 교만한 행동과 목소리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만의 뿔을 들지 말고 교만한 말을 그치라> 말씀합니다. 종말의 결국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6,7절의 기록처럼 높이는 일이든 낮추는 일이든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감당하십니다. 동서남북의 어떤 나라가 강하고 어떤 민족이 대단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땅의 주인 되시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교만치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지금은 그야말로 말세지말입니다. 흩어졌던 만민이 모여오고 있습니다. 물리학자들도 지구의 나이는 24시로 치면 자정이 가까운 11 59분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머잖아 의의 심판의 날이 있고, 결국 그 날에 겸손한 주의 백성들이 높임을 받고 교만한 악의 세력들은 무너지고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은 교만한 자들의 멸망의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잔은 진노와 심판을 말합니다. 여러 향미를 섞어 악인들이 그것을 마시게 한다고 했습니다. 악인들은 그것을 스스로 받아 먹습니다. 오만한 자들이 진노의 잔을 스스로 받아먹게 하심으로 그들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하고도 맹렬한 심판의 때, 의로운 재판장이 이루시는 공의의 완성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 안에 속하여, 주님의 길을 따라갑니다. 좁은 길을 가며 겸손히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역사를 쫓습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머지 않은 이 역사를 결국 의로운 자들의 승리로 완성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제정하고 명령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명령은 밭에서 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합니다. 이 말씀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광야에 있었습니다. 아직 광야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민족은 밭농사를 하는 농경사회가 아니라, 양과 소를 치며 사는 Nomad, 유목민 목축업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밭에서 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보이지도 해보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먼저 이것을 정하시고 그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 하신 뜻이 무엇일까요? 곧 그것을 주시겠다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조건이 있어 감사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먼저 믿고 감사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감사에 있습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도 감사에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않는 힘도 감사에 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성도의 심령을 감사로 채웁니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 그것도 조건이 아니라, 먼저 감사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해 감사합니다고백합시다. 오늘 성도들의 만남 속에서 고백합시다. 감사합니다. 식탁과 모든 모임에서도 “감사합니다” 이 천국의 언어가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에는 감사의 제목들을 하나님께 올려드립시다.

<감사의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예배를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믿음의 가족을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목장과 선교회를 통해 교제와 사역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들과 우리를 위해 수고하는 헌신자들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벧엘교회를 세우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가까이 계심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능력의 전파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의와 구원의 역사를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인생과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 앞에서 있기 전에는 우리 속에 안식과 행복이 없습니다. 이제 감사로 시작되는 새 계절 속에 주님께서 더욱 넘치는 감사의 찬미들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성령께서 세우신 교회 김창운 목사 2017.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