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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2017.06.04)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2장 1-4절
 
 
본문 내용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Content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교회의 원천적 힘은 성령에 있습니다. 교회에 생명력이 있고 건강한 교회가 되는 원천적 힘이 성령님인 것입니다. 성도의 원천적 힘도 성령님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제자됨의 원천적 힘이야말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그 안에 살아계시지 않으면 성도가 아니요, 제자는 물론 아닌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없으므로 깨달음이 없고,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 호흡이 사라지면 죽은 자가 되는 것처럼 성령님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성도의 생명력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오순절날 성령님의 강림 사건을 전해줍니다. 이 일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알고 싶다면 한번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이 성령을 약속하시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이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제각기 살던 곳으로 흩어져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자리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이 한 마음이 아니라 여러 마음을 가지고 작은 이익이나 자존심 문제로 분쟁이 있어 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자들이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님이 실은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주님이 하신 약속이니 믿고, 간절하고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도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우선 오늘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온 성도들의 역사와 순교로 지켜온 교회의 흔적 조차 없을 것입니다. 복음의 확장으로 말미암아 전개되고 발전되어 온 인류의 사랑의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벧엘교회도 없었을 것이요, 지금껏 여러분을 위해 말없이 기도하고 있는 동역자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민족이 오늘을 이룬 역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벌써 인류 역사는 참혹하게 끝을 맺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정말로 감사하게도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은 성령을 약속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제자들이 그 약속을 믿고 모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예수님의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약속대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날은 오순절 날이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들을 볼 때마다 은혜 아닌 것이 없지만, 성령강림의 날이 오순절이라는 날이라는 것부터 은혜가 큽니다.
신구약 성경은 공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해줍니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는 단절성과 연속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단절성이란 이스라엘과 율법에 국한된 신앙 세계로부터의 단절되어 이방과 은혜의 새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연속성이란 구약의 예언들이 신약 시대에 이어져 성취되고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와 같다면 신약에서 예수님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것, 이런 이음줄을 말합니다. 그것을 주님이 단언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강림이 오순절에 오셨다는 것부터 은혜와 감동이 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날(니산월 열 다섯째 날)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신(Passover)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명절로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유월절 날,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 유월절 해방의 영역을 이스라엘 백성에서 온 인류를 향해 열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유월절에 행해지던 어린 양의 희생 제물이 되셔서 피를 쏟아 죽으심으로, 유월절의 은총을 저와 여러분을 위해 열어주신 것입니다.
유월절 후 50일째 되는 날을 오순절이라 했습니다. 칠칠절이라고도 했습니다.(출 34:32) 칠이 일곱 번, 즉 안식일을 일곱 번을 지낸 다음날이라는 뜻입니다. 초실절(출 23:16)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추수곡식인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이란 뜻입니다. 이 두 번째 명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나가 밀 곡식과 각종 제사의 예물을 드리며 일주일간 지냈습니다. 바로 이 두 번째 절기에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구약의 그림자를 신약에서 확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역사는 정말로 신비롭고 멋지지 않습니까? 성경은 분명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날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지 열흘째 되던 날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본문 2절의 말씀대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사람 모두에게 그 불의 혀가 하나씩 강림하였습니다. 그 불의 혀가 각 사람에게 닿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 강림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심입니다. 하나님의 영, 온 우주와 인생과 역사의 주인 되시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이 사람 속에 임한 것입니다. 모여 기도하는 제자들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에 의해 인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사람이었던 이 제자들 속으로 들어와 사로잡은 것입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체험이요 증거였습니다. 이 오순절 사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구체적 의미를 세가지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귀로 체험, 증거되었습니다. 성령님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귀로 세찬 바람 소리를 듣게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홀연히”라는 말은 갑자기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예상치 못한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시점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우연한 바람이 아니라, 하늘에서부터 절대주권적으로 임하시는 “바람 같은 소리”였습니다.
  구약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마른 뼈들에게 생기가 들어가자 그들이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생기가 본래 바람입니다. <루아흐>라는 이 말은 호흡입니다. 바람입니다. 거대한 기운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호흡인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입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그때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호흡이 바람과 같은 소리로서 하늘로부터 전격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귀로 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그들이 앉은 그 집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세찬 바람 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영의 광대한 강림 속에서 이 사람들은 홀연히, 그야말로 홀연히 그 바람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육체가 하나님의 호흡, 그 바람 같은 소리를 받고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거룩한 바람인 생기의 침투로 죽어가던 자의 운명이 전격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산 자가 될 뿐 아니라,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역사였습니다.
성령 충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인간 자아의 한계 속에 갇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자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온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열어, 그 분의 무한하시고 광대하신 능력 앞에 무릎이 끓어지고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 다락방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지역 출신이 모여있습니다. 다혈질의 급한 성격의 사람도 있고 권력의 욕심이 대단했던 자도 있습니다. 산술계산에 밝았던 사람도 있었고 사고의 합리성이 뛰어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비천한 신분의 사람도 있었고 아직 어린 사람도 여성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들이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다 말입니다. 비결은 하나입니다. 그들은 간절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주님은 크신 사랑과 자비로운 말씀으로 들려주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그리고 그 말씀 바로 앞에서 성령을 받고자 하는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 11:9-10).
 저는 오늘 우리 교회에 성령님의 충만 체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하신 말씀을 따라, 저는 오늘 선포하고자 합니다. 오늘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는 분들 위에 바람 같은 소리로 하나님의 호흡이 절대주권적으로 임하시기를 선포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성도들에게 권능으로 임하시고, 모두가 충만하심의 체험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령님은 눈으로 체험, 증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불의 혀와 같이 임하셨습니다. 불이 임하였고 그 불이 혀와도 갈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용광로의 불이나 산불이 날 때 보셨듯이, 극도로 뜨거운 불은 그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듯이 스스로 갈라지고 또 갈라집니다. 그것을 불의 혀라고 합니다. 바로 그 불의 혀가 각 사람들을 향하여 퍼져 나가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혀처럼 생긴 그 불이 갈라져 각 사람 위에 와 닿았다”고 전해줍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미디안 광야 서쪽에 호렙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를 만납니다. 떨기나무에 붙은 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떨기 나무가 불에 타오르고 있는데 그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엘리야를 만나십니다. 심히 고단하고 낙심하고 두려움에 빠진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지진과 불로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불은 죄악을 태워버리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죽음도 태우고 허물도 태우고 부끄러움도 태워버리고 온전하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불인 것입니다. 이사야 6장 7절에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뵈올 때 하나님의 천사가 제단의 숯불을 집어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합니다.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가 사해졌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은 머리로만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으로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리로 믿는 것이 아니요, 신학이나 사상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성령님의 역사를 귀로 경험했습니다. 눈으로 보았습니다. 누가는 그것을 생생히 기록해줍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고, 순수히 바라는 자들에게 눈과 귀로 보여주시며 충만 충만하여 강림하여 주신 것입니다.
말세의 이 세상은 참으로 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쁘고 고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땀 흘리고 수고가 많으십니까? 권모와 술수가 진리와 정의보다 앞서 가는 것 같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뇌와 아픔이 있습니까? 심령의 아픔과 불안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밤을 불면의 밤으로 지새우며,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을 지내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죄의 유혹에 고통을 당했습니까?
살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위에 불의 혀로 임하시고 여러분의 영혼 위에 닿아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허물이 태워지고 죄악이 씻음을 받고 정결케 되고 새 생명의 영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선물로 보내신 성령님으로 오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쌓였던 원망과 불평, 싸움과 분쟁, 수많은 유혹과 거짓이 가득했던 마음이 성령님의 불로 태워지고 평안으로 채워지고 감사로 채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오순절 성령 춤만의 역사는 제자들의 입술에서 증거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절대주권적 강림으로 120명의 제자들은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것은 성령님께 사로잡혔다는 말입니다. 성령님께 사로잡혔다는 말은 성령님의 인격이 그 사람의 인격을 사로잡았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그 사람의 능력을 압도하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전쟁이나 쿠데타가 일어나서 한 나라의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이 핵심 권력입니다. 나라의 수장이 바뀌고 통수권이 바뀝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장악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충만하게 되신 성령님은 이 제자들의 인격을 압도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님께 모든 것을 오픈하자 성령님의 능력이 제자들의 능력을 압도했습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입술이 성령님에 의해 사로잡혔습니다. 성령님이 그들 입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생각을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입을 통하여 성령님이 말하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귀로 들었던 성령님의 강림 역사가 눈으로 보이시는 성령님의 임재로 나타나셨고 그들에게 충만을 경험케 하시며 그 입에서 성령님의 생각과 성령님의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입니다. 성령님의 방언입니다. 방언을 갖게 된 것은 중요합니다. 방언을 하게 되는 것도 성령님의 큰 은사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악령도 방언을 하게 합니다. 불교에도 방언이 있고 힌두교에도 방언이 있습니다. 방언은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방언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방언은 성령님의 말을 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성령이 주시는 마음, 평안으로 채워졌고, 살리는 일로 채워졌고, 감사의 심령으로 가득하게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씀하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헤아려 보십시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의 열매들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영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는 열매들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고 들려줍니다. 말세의 현상 중 하나는 세상의 험하고 사람들의 말이 점점 독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 섞여 살아가다 보면 세상에서 일상으로 쓰이는 욕설과 저주와 험담에 노출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음으로 양으로 악한 말과 악한 심리에 물들 수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심령과 입술이 씻어지는 것은 성령 충만의 역사를 통해서입니다.
성령강림의 역사는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주님의 십자가 사건 후 50일 되던 날. 오순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멈춘 것이 아닙니다. 그 사건은 오늘 바로 우리 앞에 열려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체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말입니다.
아직 성령 체험을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성령님의 충만,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데, 왜 저들은 행복하고 뜨거운 체험을 가지고 믿는데, 나는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가? 궁금하십니까? 구하십시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여 당신을 구원하실 만큼이나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의 하나님, 목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당신의 편인 것입니다. <사랑 많으신 하나님은 나의 편입니다> 오늘 성령님의 손길에 손을 내미십시오. 성령님의 역사에 몸을 맡기십시오. 간절히 구하실 때 처음 경험하는 분들은 오늘 뜨거운 성령충만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성령체험이 식어지거나 잊혀진 분들은 다시금 성령 충만의 체험이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하실 때 이와 같은 제목으로 기도합니다.
<성령님을 초청하는 기도> 성령님 오시옵소서. 제 인생에 성령님을 초청합니다. 제 영혼에 오시고, 제 인생에 오시옵소서. 능력으로 제 몸에 오시고 성령님의 인격으로 제 인격을 압도하여 주시옵소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성령님을 듣고 보고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약속하시기를 구하는 자에게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여 구하오니 부어 주시옵소서. 채워주시옵소서.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하오니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체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충만하여 주시옵소서. 불길의 혀로서 닿아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호흡이시여 바람과 같은 소리로 임하소서. 비둘기 소리처럼 바람처럼 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공동체 위에,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다 충만함의 체험을 주시옵소서. 성령 주시기를 기뻐하시며 약속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김창운 목사 201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