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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2017.05.28)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1장 24-26절
 
 
본문 내용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Content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시너지라는 말을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1+1=2 인데 3이 되는 이치입니다. 예를 들면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무거운 돌덩이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가 그것을 보고 다가와서 절반을 들어주면 50으로 줄어듭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따뜻한 말을 하면서 함께 걸어간다면 그 짐은 훨씬 가볍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축구사에 남을 2002년 월드컵의 경험이 우리에게 그 시너지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열 한 명이 뛰는 축구 경기에서 함성과 박수로 응원하던 온 나라의 열망이 마치 열 두 번째 열 세 번째 선수가 되어서 함께 뛰는 것 같았던 경험 말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은 이와 같이 힘이 되고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있는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은 위대합니다. 거룩합니다. 무엇보다 강력합니다. 바로 성도의 모임입니다. 성도라는 말에 있는 ‘성’자가 거룩할 성(聖) 자요, 이 거룩함이란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진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그 모임 속에 계시고 주도하시는 것입니다. 두나미스의 성령님, 권능의 역사로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 모임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임의 사람들이 성령님의 능력을 사모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바라고 있다면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의 일꾼을 뽑을 때 기준이 되는 말씀으로 많이 읽습니다. 본문 앞에 15절에 보면 120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최초 교회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이때는 비상 사태입니다. 초비상 사태에서 온 성도들이 한 명 예외 없이 다 모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자, 이제 대책이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은 이제 지상에 안 계십니다. 이제 그들은 그들끼리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실 보혜사, 주님의 영을 기다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그 말씀을 듣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오로지 기도했습니다. 끈기 있게 기도했고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일명 예외 없이 말입니다. 대책 회의를 한 것이 아니요 미래 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며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태동에 담겨있는 힘입니다. 두나미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일한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 초대교회에 모임은 초비상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절박하고 긴박한 심정의 사람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믿음과 신앙에 이 비상적 긴박감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편리한 일상은 사람들의 긴박성을 빼앗습니다. 바쁜 일과가 영적인 안목과 관심을 빼앗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물질 숭배와 과도한 경쟁 사회의 너머에서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사람들을 삼키려고 영적인 절박감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가족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해체하고 영적 세계관도 해체하려고 합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오늘의 일상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이상도 없이 환상도 없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만 머무르게 합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은 성령님의 은혜는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 속에 있었다는 입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이 계시하시던 교회 중에 하나님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곳에 성령의 임재는 사라졌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되고 안 드려도 되는 모임에 성령님의 임재가 사라졌습니다.  기도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모임에 성령님의 역사가 임한 것이 아닙니다. 모였습니다. 비상적으로 모였습니다. 초비상으로 모여 절박하고 간절하게 주님께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힘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거기에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질병을 고치시는 것을 거부합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것을 불신과 의심의 옷을 입고 거부합니다.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부인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나를 통해 전도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확장해 나가시는 일을 거부합니다. 거부하는 만큼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외면한 채, 성령 역사의 뒷전에 서서 누군가에게 임하는 성령을 보려고 할 뿐입니다. 내게 임하실 성령 강림을 스스로 가로 막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선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공감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서 보면 어떤 선교사님들은 전도는 하지 않고 전도를 위한 센터 준비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교 자금을 모으고 선교 센터를 짓고 선교 물품만을 모집하고, 소위 하드웨어만 잔뜩 준비해놓을 뿐 직접 전도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심을 위한 준비 단계에만 머물 뿐 친히 성령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살아계신 증인의 단계가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것이 오늘날 식어가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교회를 사랑하는 분들입니다. 주님이 피 흘려 세우신 벧엘교회를 사랑하고, 부모님이 다니시고, 오랫동안 다녔고, 일가가 함께 하던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로 좋은 교회가 되길 바란다면 정말 중요한 것, 여러분들 속에 성령 체험의 역사가 나타나야 할 때입니다.
가롯 유다는 주님 곁을 떠났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남은 11명의 제자들은 이제 한 명의 사도를 보충하여 세워야 했습니다. 두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21, 22절에, “주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이 지상에 계실 때 주님과 함께 하며 배우고 경험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24절에 “주님이 친히 택하신 사람”입니다. 사도를 세우는 목적을 누가는 단 하나로 전해 줍니다. 22절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렇게 선택된 사람은 성령님의 강림을 경험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로부터 저 땅끝까지 갈 것입니다. 비법과 능력과 용기와 믿음의 동력은 단 하나, 성령님의 오심을 체험함으로써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로 시대의 복음적 책임을 갖고자 한다면 벧엘행전을 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연이어 읽어가며 경험코자 하는 것은 이 성령님의 시대에 성령님의 역사가 분명하게 살아나는 벧엘행전을 써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나 삶의 스토리들을 갖고 있습니다. 심방을 하면서 들을 수 있었던 믿음의 이야기들은 각자가 다 달랐습니다. 구구절절 믿음과 인생의 사연들을 들으면서 어떨 때는 속울음이 나오고 한숨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의 스토리들 속에 살아계신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 모든 이야기, 사연, 스토리 속에 주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더욱 그 인생을 쓰고자 하십니다. 지금도 여러분 모두 멋지고 훌륭하지만, 그 인생을 주님을 위해 내어놓으신다면, 주님이 주인이 되신다면, 더욱 멋진 인생이 될 것입니다. 지상에서 이토록 멋지고 훌륭한 인생이지만, 하늘에서 더욱 빛나는 인생이 될 것이요, 여러분의 일기장이나 자서전에도 아름답게 기록될 인생이지만, 벧엘행전에 더욱 귀히 기록될 인생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스토리 스토리가 모여 히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히스토리, 벧엘행전의 히스토리 말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역사에 전적으로 몸과 마음을 열고, 성령님을 향해 사역도 봉사도 열고, 성령님의 뜻에 계획도 비전도 열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뭇 사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믿음은 그것이었습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주님의 제자들이 경험한 것이요 믿는 것이요, 신뢰하여 의탁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주님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아실까요?
첫째로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아십니다. 역대상 28장에 보면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처럼 전하는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대상 28:9)
다윗이 이 믿음의 고백을 물려주는 것은 그가 기름부음을 받을 때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났을 때, 여호와께서 이제 다윗을 새 왕으로 세우기 위해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하나님께서는 겉을 보시는 분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분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말씀했듯이 다윗은 그 마음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행 13:22)이었던 것입니다. 시편 7:9은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나이다(시 7:9).
오늘 우리가 성령 체험을 사모하고, 성령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주님은 보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있다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님을 거부하고 기도를 외면한 봉사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성령님을 무시한 회의나 기도가 게으른 사역처럼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일도 없습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거기에 내 얕은 지식이나 명예나 잇속의 시험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기도하며 간구하며 부르짖으며 살아갈 때, 놀랍게 일어나는 것은 성령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됩니다. 내 직업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되고, 내 공부가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되고, 내 시험 준비가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됩니다. 내 인생, 내 시간 조차 하나님 나라에 속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성령 사람으로서 부활하신 주님이 그 속에 살아계시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고, 내 생이 전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공동체를 아십니다. 주님은 성도들 각 사람의 중심을 아시고, 여러분 각자의 삶을 아시지만, 또한 성도들의 모임 공동체의 상황을 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출애굽이 2:25에 보면 이스라엘,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종 노릇 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그들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권념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굽어 보고 계셨고,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부르짖고 간구하는 마음의 소원을 아시고, 우리 교회가 처한 상황도 아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의 간구와 소망을 아시는 분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성령님께 맡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신다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해결이 되신다’와 같은 말입니다
이것이 셋째입니다. 하나님께서 해결이 되시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공동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해결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아시자, 그들이 종노릇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은 이들이 말씀을 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이 베드로를 통해 일하시자 3천명이 회개하였습니다. 성령님이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하시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성령에 붙잡힌 사도들이 백성에게 부활 예수를 전할 때 남자들만 5천명이 회개하고 결신했습니다. 성령님이 바울을 통하여 일하시자 뱀이 물려도 죽지 않았고, 그의 손수건과 앞치마만 대어도 병이 나가고 귀신이 나갔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
지금은 성령 시대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를 통해 일하고자 하십니다. 성령님을 의식하고 성령님을 신뢰하고 성령님이 일하시도록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을 마치 뒷방으로 모셔놓고 내가 성령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정말로 속히 돌이켜 그 자리를 성령님께 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상황을 아시므로, 하나님의 영이 해결도 하시고 길도 여시고 기적도 일으키실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저는 참 행복했습니다. 59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벧엘행전을 씁시다 하는 말씀을 나누면서 성령께서 주신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과연 성령님이 어떻게 일해주실까 기대와 믿음이 마음을 부풀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재정을 보시는 김종선 장로님이 제 방에 들어오시더니 밝게 웃으시면서 종이 한 장을 내미셨습니다. 거기에 적힌 내용이 제게 큰 감동을 주었고, 눈물이 되고 감사가 되고 찬양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일하시는 역사로 여겨져서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사랑은 자랑치 않는 것이라 여겨서 자랑이라면 두렵지만, 이런 감사는 여러분과 함께 나눠야 좋겠다 싶어서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중 한 성도 분이 1720만원의 헌금을 하셨습니다. 이 액수는 다름이 아니라, 지난 회기 년도에 재정의 사고가 있어서 손실된 금액이었습니다. “손실된 하나님의 재정을 제가 메우고 싶습니다. 어려움의 시기를 이제 잘 정리하고 화합하면서 은혜와 사랑이 가득한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 공동체를 아시는 성령님께서 이 일을 이루셨다고 믿는 것은 저만의 믿음이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호기심이 많아 그 사람이 누구냐 알고 싶어하는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면서 마치고자 합니다.
‘스승의 선물’이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굉장한 교세를 자랑하던 한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한 때 크게 부흥했던 곳인데, 기독교에 대한 박해와 세속주의 영향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많은 수도사들이 있었던 곳에 남은 사람은 네 명의 수사와 수도원장, 이렇게 다섯 명이 전부였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관심은 어찌해야 이 수도원을 살릴 것인가 하는 것이었겠죠. 이 일을 위해 기도하며 고심하던 이들은 마침 수도원 곁 오두막에 기도 많이 하는 신령한 스승이 가끔 찾아와 은거한다는 것을 알고, 수도원장이 용기를 내어 이 오두막을 찾아갑니다. 이 스승이 수도원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하였습니다. “제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위로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밤이 깊어,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도원장이 집을 나서기 전에 마지막 한마디로 수도원을 살릴만한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그때 스승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당신들 가운데 한 분이 우리 주님이시라는 것뿐입니다.”
수도원장이 돌아와 수사들에게 유감스런 소식을 전하면서 그 한 마디를 전합니다. ‘그 스승님이 알 수 없는 말을 해주셨는데, 우리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시다네요.” 이 일 후 수사들은 스승의 말을 되뇌이며 그 뜻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우리 중에 주님이 계시다면 과연 누구일까? 수도원장? 토마스 수사? 필립 수사? 함께 지내다 보니 여러 흠들도 다 보아 알고 있는데, 그들 중에 주님이 계시다니, 그 사람 속에 주님다운 덕망과 성품들을 떠올리면서 서로 서로를 주님처럼 대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구세주가 될지 모르니까 다들 존중하고 깍듯이 대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내 속에 주님이 계실 수도 있으므로 자신의 영혼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몸과 마음가짐을 달리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수도원에는 아주 드물게 소풍을 오거나 기도하러 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수도원에 각별한 사랑과 존중의 영성이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러한 영성의 기운이 자신에게도 전달되는 것을 신비롭게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더 자주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혼자 오는 게 아니라 친구들도 자녀들도 데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들 중에 수도원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몇 년 새 이 수도원은 활기 넘치는 곳이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주님을 섬기듯 존중하고 사랑하는 영성이 그 수도원으로 하여금 새로운 공동체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기독교 사상가였던 M. 스캇 펙(1936~2005)의 저서 Different Drum: Community Making and Peace).
주님이 하시는 일을 주님께 맡겨두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성령님이 하시도록 열어두어야 합니다. 바로 당신 결에 앉으신 그 분이 내셨습니다. 오늘 식당 줄에서 바로 뒤에 서신 분이 내셨습니다. 여러분 바로 옆에 주차하신 그 분이 내셨습니다.  새벽에 깨어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는 그 분이 내셨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분을 쓰셔서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 분을 주님처럼 존중하시고, 그 분을 주님처럼 사랑하시며, 성령님이 쓰시는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또한 성령님이 쓰시도록 성령님께 내 마음의 자리를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의지는 평생 살아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나, 이제 성령께서 나를 변화시키실 수 있도록 성령님을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그럼으로 성령님의 살아계신 운동이 여러분을 통하여 아름다운 벧엘행전의 역사를 써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 1. 성령님께 두 손을 내밀어 맡깁니다. 나의 생명도 인생도 어떤 문제도 성령님께 맡깁니다.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2. 저로 기도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 자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생의 돌이켜 성령님의 체험이 살아나는 인생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욕심과 고집과 인생의 제한된 것들로 성령님을 제한하지 않게 하옵소서.
기도 3. 저를 성령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내 인생을 써주시옵소서. 내 학업을 써 주시옵소서. 내 직업을 써 주시옵소서. 내가 가진 계획과 비전, 소원 모두 성령님 써 주셔서 제가 정말로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성령님의 도구 인생을 살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하나님, 성령님의 역사하시고 체험케 하심을 간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내 속에서 마음껏 활동하시고, 사용하시는 생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중 한 영혼이라도 성령님을 외면하거나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시고, 모두가 성령의 사람 되어, 주께 하듯 서로 사랑하며 이 시대에 귀한 벧엘행전의 역사를 써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주님이 세우신 교회 김창운 목사 2017.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