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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세우신 교회 (2017.05.21)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1장 12-14절
 
 
본문 내용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Content

                    행 1;12-14 주님이 세우신 교회(59주년기념)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세워진 지 59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피의 값으로 세워졌습니다. 주님께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말씀을 사용하셨고, 주님을 향해 참된 신앙고백을 하는 자들의 모임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성경의 맥을 짚어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창세기로부터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구약의 시대로부터 이방 만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손길 속에 확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을 향하여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가 이스라엘 중심의 시대라면 그 상징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주님은 신약, 새 언약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신약 시대는 곧 구약시대의 종말을 말씀하는 것이요, 다른 말로는 성전시대의 종말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요2장에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시고 질책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과 소를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가져가라 하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성전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요, 새 시대, 교회의 시대를 여는 도전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공격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사흘 동안에 내가 일으킬 것이다!” 유대인들도 제자들도 당시에 이 말씀의 의미를 몰랐으나,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이 말씀을 이루시고 새 성전, 교회의 시대를 여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에서 우리는 바로 그 교회 태동의 역사를 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쳐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오르시는 승천의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곳은 감람산이었습니다. 그 산에서 내려와 예루살렘에 있는 한 다락방으로 모였습니다. 그 모임은 제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아우들도 있었습니다. 한 기록에 의하면 어린이들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15절에 보면 거기에 모인 사람 수가 120명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신 후 이루어진 최초의 원시 교회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교회를 처음으로 세우는 역사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들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교회의 일원이 되어 묵묵히 교회를 이루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교회 태동의 역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가지 중요한 내용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첫째 교회의 태동에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쓰더라. 두 가지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힘쓰더라는 말과 더불어라는 말입니다. 힘쓰더라는 원어 <프로스카르테레오>라는 말은 ‘부지런하다, 끈질기다’ 라는 뜻입니다. 교회 태동의 시작, 그 곳의 첫 번째 풍경은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요, 그 기도는 끈질긴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단어가 나오는 곳은 사도행전 2장 42절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삼천 명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갖고 회개 하였을 때 그들이 모여 한 일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6장 4절에도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교회에 성도와 제자들이 많아지고 문제가 발생하자 사도들이 집사님들을 세우고 본연의 중심적 일을 감당하고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6:4)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우들을 향하여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12:12) 골로새서 4장 2절에서도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로 끈질기게, 계속해서 기도하여야 할 믿음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주시기를 약속하셨습니다. 복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명심하여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복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주님이 성령을 약속하셨다고 해서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눈 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복을 얻기까지 기도했습니다. 믿고 기대하고 기다리며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힘이 여기에 있고, 성도의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더불어, <호모티마돈>이라는 말은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기 시작할 때 4:24에 보면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15:24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던 장면이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한 마음, 혹은 만장일치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헌 마음이란, 그들에게 공동된 신앙고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 나의 주님이자 우리의 주인, 그 분만을 바라고 기다리는 한 마음의 기도였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든든한 교회로 세워져 가야 할 것을 누구나 바라고, 이를 위해 깨어 기도해야 함을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결심이 있다면 그것은 끈질기게 힘쓰는 기도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자, 우리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한 마음의 기도로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벧엘을 세우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 시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교회의 미래를 여는 소망 있는 기도가 되길 바랍니다.
둘째, 교회는 주님의 약속이었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명하신 것이었고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6:16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드리는 유명한 고백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주님이 이 말씀을 들으시고 흡족하셨습니다. 베드로를 향해 복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네가 알게 된 것은 너의 혈육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18절 말씀에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 본래 단어는 여러분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입니다. ‘밖으로 불어내어 모은다’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성전 시대의 종국이요 교회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서막이었습니다. 에클레시아!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되었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 이제 성전 밖으로 나와 교회라는 공동체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신 이 말은 신약 성경에 112번이나 기록될 만큼 중요한 단어였습니다. 주님의 약속대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계시록의 7교회를 향한 묵시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확산되며 오늘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 벧엘교회가 그러한 역사 속에 우뚝 서 있습니다. 주님의 피의 값으로 세워졌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한 성도들의 고백 위에 세워졌습니다.
어른들의 끈질긴 기도의 힘으로 세워졌고 한 마음으로 힘써, 끈질기게 기도하던 분들의 열정으로 여기까지 지탱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59주년을 맞았습니다. 주님의 언약, 그 언약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역사, 기도의 땀과 눈물, 이것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전개 될까요? 터키에 가면 수많은 교회의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흔적만 남은 교회들의 유적입니다. 영국에는 거대한 교회였던 예배당이 나이트클럽으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벧엘교회의 미래는 어떠하겠습니까? 과연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가겠습니까? 2001년에 아기 출산 인구가 100만이었으나 지난해 출산 인구는 40만이라고 합니다. 전문가의 이야기는 앞으로 35만까지 줄어든다고 합니다. 이런 인구 감소의 추세 속에서 앞으로 우리 교회의 미래는 어찌 되겠습니까?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말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처세술입니다. 교회는 모름지기 시대에 역행했을 때에 영적 힘을 발휘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붙들고 아니면 아니라 말할 때 그때서야 교회가 바로 섭니다. 그때 세상이 비웃고 핍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제서야 세상도 교회를 보고 찔끔한다는 사실입니다. ‘아하 교회가 우리와 다르긴 다르구나’ 그제서야 교회를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구가 준다고 해서 우리의 주변 사람 중에 믿을 사람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없어졌고 주님이 필요한 사람이 없어진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사라진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 태동의 역사에서 사도행전에 믿음의 사람들은 개척자들이었습니다. 처음 길을 내는 것의 어려움을 사람들은 누구나 압니다. 그래서 벤처 기업은 힘듭니다. 그러나 거기에 희망이 있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세상도 존경합니다. 제자들의 초대교회는 무려 순교의 위협과 죽음을 담보로 하는 핍박을 동반한 개척이었습니다. 주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은 에클레시야의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중요한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셋째에 해당되는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주님께서 언약하신 교회 태동의 절대적 동력. 성령님의 권능이 그들의 힘이었습니다.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끈질기게 기도 하였고 한 마음으로 기도하였고 굳게 굳게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그 공동체 속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주님의 영이 임하셨습니다. 눅 24:49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사도행전에서도 누차에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1:4,5)
유명한 요절 1:8에서도 거듭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인 너희에게 임할 것이고, 너희가 권능을 받을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대로, 언약대로,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 그들이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하늘로서 급하고 강한 바람이 일고 성령님의 강림이 각 사람에게 불의 혀같이 나누어져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오늘 성경을 읽는 우리들의 심령의 온도는 몇 도나 되십니까? 성령님이 오심의 역사가 과거 한때 이루어졌고,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는 것으로 여기며 식어져버린, 저 먼 추상적 세계의 과거 스토리로 남아있다면, 그 심령 위에 성령님의 즉각적이고 번개와 같은 성령의 강림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성령님이란 어느 날 저 어른들의 입에서 오르내렸고, 내 시대는 그렇게 열광적 믿음은 안 어울리니 신사요 숙녀적 체면을 지키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면, 이 예배 속에 살아계신 성령님이 그 분의 심장과 심령을 떨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인격적인 신앙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거나, 여러가지 상한 마음의 상처와 갈등으로 성령님의 권능과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에는 가슴이 메말라 버리고 복잡하게 얽힌 사고로 혼란된 이들이게 성령님이 하늘의 지혜로서 섬광처럼 두뇌와 생각을 사로잡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쁘고 바쁜 세상 일에 오직 마음이 가 있는 심령에게 성령님께서 불의 혀처럼 임하셔서 파도와도 같이 그 심령의 가장 깊은 바닥까지 휘 집어져 촉촉한 옥토의 심령으로 변화시키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의 모임 공동체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벧엘교회를 세우셨고 오늘까지 사랑으로 함께 해오셨습니다. 그 사랑은 변함없이 성령님의 살아계신 권능을 마음껏 부어주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믿는 만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언약을 믿고 기도하되 끈질기게, 한마음으로 하나되어 끈질기게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주님께서 친히 교회를 힘있게 세워가실 것입니다. 세상이 다 멸망하고, 우주가 사라진다 해도 성령님의 역사는 영원하시고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59주년의 생신을 맡은 우리 어머니 벧엘교회가, 60주년을 향해 가는 이 때에 성령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기도로 뜨겁게 살아나, 시대를 가름하고 역사를 새로 쓰는 벧엘행전의 교회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심을 감사합니다. 지난 세월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오늘과 미래에도 저희를 사랑해주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희에게 주시는 말씀에 성령님 감동 감화하시고, 기도하는 자들 위에 강림하시고 임재 충만하여 주시옵소서. 살아계신 주님, 오늘 우리에게 힘이 되셔서 다시 뜨거운 교회, 성령님의 역사로 다시 거룩한 교회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의 증인 김창운 목사 2017.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