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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증인 (2017.05.14)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사도행전 1장 6-11절
 
 
본문 내용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Content



                           행 1:6-11 예수님의 증인
예배의 위대함은 우리 영혼이 회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하늘의 은혜를 부어주셔서 영혼이 강건하게 되고, 모든 삶의 자리에도 복이 되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예배는 감사의 마음이 키워드입니다.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살아있는 것이 감사입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매 1분마다 100명 이상의 생명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호흡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남은 인생에 원하시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생이 태어난 것이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명을 창조하셔서 선하신 섭리 속에서 우리 부모님을 통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사랑보다 값진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부모님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배울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과 교회의 어른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올립니다. 또한 무엇보다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가 스스로 던질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어느 시점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시점은 어떤 시점인가?’ 이런 질문을 가지면 다양한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데,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초림하신 예수님입니다.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이 사람들을 찾아오신 사건을 최소한 열 두 번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것을 시작으로 고린도전서 15장6절에는 “오백여 형제에게” 나타나 부활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을 보여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며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의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사도행전 1:3절에 주님이 부활 후 40일 동안 확실한 증거로 주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무엇을 하셨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하나님 나라의 일.’ 이것이 주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의 오심도 죽으심도 부활하심도 말입니다. 제자들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지신 뜻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6절에서 제자들이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여쭈어 이르되”라는 말은 채근하면서 여쭙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 마음에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들 입장에서는 훌륭한 질문이고 의로운 소원입니다. 이것은 오래된 숙원이었던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활동을 한 후, 묵시가 끊어진 침묵 시기가 지난 400년 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불렸던 이스라엘의 영광이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남은 자들이요 의로운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예루살렘 전에서 예수를 안고 찬송하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2:25)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안나라 하는 84세 된 여인과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고’ 있었다고 했습니다.(2:38). 눅 24장에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는 “주님이 바로 이스라엘을 속량할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오병이어 기적의 잔치에서 떡을 먹은 5천명의 무리가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종려주일에 만나는 예루살렘의 수많은 군중들이 이렇게 이스라엘의 회복과 속량, 하나님 나라의 영광회복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으심으로 너무도 낙심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망이 다시 불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살아나셨으므로, 그 위대하신 능력으로 로마 식민지로부터의 해방과 왕국이 재건되는 영광을 소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듣고, 이 사도들이 그 영광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말하면, 지상에서의 영역을 머리 속에 떠올립니다. 왕국이라고 하면, 요르단 왕국이나, 태국, 일본, 영국 같은 왕국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도에 표기될 수 있는 영역으로서의 왕국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영토적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대답이 오늘 우리에게 확실한 믿음의 길로 인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영역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주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알 것 없다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라는 말의 크로노스는 우리가 지상에서 느끼는 흐르는 시간의 개념입니다. 기한이라는 말의 카이로스는 하나님이 정하신 천상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 시간 모두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신다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신 주님은 아버지의 뜻 속에 있는 시간의 계획까지도 순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혼례 절차에는 두 번의 결혼식이 있습니다. 약혼과 정혼입니다. 남녀가 만나 약혼을 하게 되면 결혼의 법적 절차가 성립됩니다. 그러나 합방을 하는 건 아닙니다. 그로부터 일년간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위해 준비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이 좋아하는 요리와 취미와 가사 등 여러 모로 자기를 가꾸고 준비합니다. 과거의 일들로부터 떠나고 정결한 여인으로 정혼의 날을 기다립니다. 신랑은 일년간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부부가 지내게 될 집을 짓습니다. 두 사람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지내며 자녀들을 두고 가정을 이루어갈 집을 장만합니다. 나무를 해오고 톱질도 하고 살림을 위해 필요한 가구도 만들고 방이나 지붕도 잘 다듬어 올리면서 열심히 준비를 합니다. 신랑이 성실하고 착실하게 잘 준비하고, 마음 씀씀이나 몸가짐과 생각이 잘 갖추어졌다고 여겨지면 그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 가서 신부를 데리고 오도록 하여라.” 이 말을 들을 때 신랑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 때도 하루를 금식하고 저녁 무렵에 신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결혼식장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으러 가기까지 아버지가 정하신 때를 순종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만찬과 이별을 고하면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신랑되시고 신부된 성도와 교회를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그 의미를 내포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통치인 것입니다. 기한도 때도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께서 정하신 시간이 분명히 있음을 확신하며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제자들 눈 앞에서 주님이 승천하시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광경은 구름으로 인해 더욱 신비롭고 영광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변화산상에서 주님이 구름에 싸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장막을 주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의 형상으로 가득하였던 것처럼 구름이 주님의 모습을 가리어 보이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늘로 올리우시는 신령한 모습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정신 없이 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11절에 보면 천사들이 그들 곁에 서서 말씀합니다. 11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분명히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엡 4:10절 말씀대로, 주님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해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고 제자들이 본 모습처럼 하늘로 가실 때 구름으로 드리워진 신현(神顯)의 형상으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통치의 시간을 열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사탄의 계략으로 인해 죽음으로 가는 시간 속에 하나님의 통치의 시간을 여신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로부터 오늘 우리들까지 하나님 나라의 통치 속에 품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재림의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64의 기록처럼,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26에서도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하십니다. 요 14:3에서는 믿음을 지킨 제자들을 위해서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고로 재림은 구원의 완성이요 하나님의 통치의 완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초림과 재림의 사이의 시간 속에서 예수께서 열어주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왔습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시대 속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에 의하면 마지막 때의 징조를 주님이 세가지로 알려주십니다. 미혹과 재난과 핍박입니다. 각종 인터넷 디지털 문명과 소통의 도구들이 오히려 악한 일로 쓰이며 인류 역사 이래 사람을 미혹하는 일들이 최고로 성행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의 위협뿐 아니라 종교간 민족간 갈등으로 전쟁과 재난의 위협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살아가는 자들이 점점 세상 속에서 핍박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초림과 재림의 이 사이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이 사이에서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죽음의 길로 갈 것입니다. 믿음을 붙잡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다행히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주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성령님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초림과 재림의 시간 속에서 제자들이 살아남는 능력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때까지 제자들을 돌보시는 것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권능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권능이란 말, “두나민” 은 당대에서 표현할만한 폭발력 있는 것 중에 가장 거대한 폭발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쎈 능력=권능을 부어주실 것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인류는 강해진 것 같습니다. 원자폭탄 수소폭탄 중성자탄 각종 핵폭탄이 위력을 보이면서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의 역사는 위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병든 자가 놓임을 받고, 민족과 교회가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모인 중에 불붙는 감동이 있고, 기도하는 자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 어루만지심으로 기쁨과 감격과 감사로 가득 채워지는 역사들에 대해 무관심한 시대로 보입니다.  이것은 말세의 중요한 현상입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8:8에서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마지막 때에 믿음으로 깨어있도록 경고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권능은 하나님이 주신 파워입니다. 영원하신 영이요 감사를 주고 평강을 주고 지혜의 영이고 살리는 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문명의 파워는 인류 문화의 소산이지만 불안을 주고, 고독을 주고, 지식을 주는 것 같지만 일시적인 것이요,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따뜻하여 사랑과 생명으로 인도하지만, 인류의 문화 뒤에 숨어서 믿음의 사람들 조차 공격하고 있는 악한 영은 차갑고 냉랭하고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있는 자는 성령님의 은혜 속에 있습니다. 성령님의 권능 속에 있습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파괴할 수 없고 어떤 악한 세력도 찌를 수 없는 성령님의 능력이 지켜주시고 붙드시고 활동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님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세상 문화에 젖어 냉랭하고 메말랐던 영들이 성령님으로 뜨거워지고 그 영혼이 살찌고 강건해야 세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길은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본 후에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그들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14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감람원산에서 내려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던 성도들과 모여 기도했습니다.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4절) 성경은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6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란 파라클레토스. 위로의 영이십니다. 능력의 영이십니다. 힘있게 돌보아주시는 영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고 고독하고 낙심이 될 때 무엇으로 위로를 구하고 찾습니까?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무엇으로 길을 찾겠습니까?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무엇으로 힘을 얻고 답을 얻고 해결을 보겠습니까? 길이 없다고요?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이 가장 큰 선물로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입니다. 우주에 가득한 모든 지혜와 질서와 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담긴 심령, 하나님의 영 말입니다. 성령님을 이렇게 주셨는데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하며 성령의 권능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찬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성도된 벧엘의 가족들이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혼이 참으로 강건하고, 인생에서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은 성령의 권능을 통해 증인으로서 살아가는 사명을 말씀합니다. 마 3:16에서, 주님은 스스로도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제자들도 주님의 하셨던 하나님 나라, 그 통치의 전파자, 선포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말입니다. 성령의 권능, 두나민이란 것은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역자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님의 지도, 인도하심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권능이 임해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역사는 성령님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부활로 이루신 하나님 나라,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말입니다. 제자들은 “때”에 관심하고 있었지만, 주님은 증인이 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기의 것에 집착했지만 주님은 땅끝까지 확장되는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그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권능을 주심으로써 말입니다.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분은 영국의 유명한 목회자이자, 선교사이자, 신학자입니다. 켐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로 안수를 받아 인도에서 선교를 합니다. 인도는 전형적인 다원주의, 혼합주의 사회입니다. 그 곳에서 35년간 선교를 하고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본래 기독교의 종주국이라 불리던 나라가 세속주의 빠지고 교회가 급격히 쇠퇴하는 현장을 바라보면서 말합니다. “이제는 영국이 선교지이다.” 이른 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교차하는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목회를 하면서 여러 가지 귀한 저서들을 남기는데, 그 분의 남긴 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교회는 계속 살아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강청하기 위해서 땅끝까지 힘써 나가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실 재림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종말을 향해 힘써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선교적이면서 동시에 종말론적 공동체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성령님의 권능을 사모하며 받아야 할 이유는 먼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혼란스런 세상 속에서 믿음을 지킬 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승리하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 외에 어떤 것도 여러분에게 참된 힘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성령님의 권능을 사모하고 간구하며 받아야 할 여러분의 가정이 힘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땅끝은 심령적인 면이 많습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심령들이 많은 이유는 사탄의 영적 침범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환경을 지배하고 지식세계를 지배하고 관계성들을 깨뜨리는 일에 극성을 띠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든든한 가정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부모님, 자녀, 배우자 간 성령의 권능을 통해 만나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권능으로 가정이 똘똘 뭉쳐져야 건강한 영혼과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과 희라과 화평, 소망으로 거룩한 가정이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 성령의 역사는 그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계신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음을 굳게 믿고, 성령님의 권능을 입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 인생과 우리 교회를 이 말세에 귀한 사명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에게 하나님의 통치 속에 품으시고, 성령님의 권능을 확신케 해주셨습니다. 오늘 저희들 심령에 성령님을 향한 갈망을 더해 주시옵소서. 성령님의 권능에 대한 갈급함을 더해 주시옵소서. 이 세상이 마지막을 향해가는 말세에 주님께서 저희를 의의 도구로, 예수님의 증인으로 쓰실 수 있도록 성령님이여 충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김창운 목사 2017.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