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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사건의 증거 (2017.04.16)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마태복음 28장 1-10절
 
 
본문 내용
1.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Content

                                    부활 사건의 증거들


부활은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시작을 오늘 28장에서는 여인들의 발걸음에서 시작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을 찾아가는 여인들에게는 하나의 동기가 있습니다. 마태는 그것을 분명히 들려줍니다. “무덤을 보려고”(1절).
무덤이란 죽은 자가 있는 곳입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고, 그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이 마련한 바위 무덤에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은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니고데모가 가져온 몰약과 침향 섞은 것과 함께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모셨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여인들이 그때 향품과 향유을 바르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주님께 바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했습니다. 이 향품과 향유는 당시 시체가 빨리 부패하는 것을 막는 향품입니다. 그것을 준비했다가 새벽에 안식일이 끝나자 마자 서둘러 주님 계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여인들의 사랑과 충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온 이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주님이 임종하시는 십자가 자리까지 끝까지 지키며 통곡을 하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이 묻히신 곳을 야무지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 새벽에 주님의 시신에 향품이라도 발라 정성껏 모셔드리고자 찾아온 이들입니다. 이때 그 열성적이던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선한 여인들입니다. 사랑과 충성이 있는 여성들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지혜와 섬세함도 지녔습니다. 한마디로 현숙하고 착하고 충성된 여인들입니다. (이 여인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여 흐믓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주님의 시신이 누인 “무덤을 보려고” 가는 이 여인들에게는 염려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막 16:3에 말씀합니다.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주님은 무덤에 계시고 그 무덤은 무거운 바위 문으로 굳게 닫혀 있는데 이것을 누군가 열어주어야 할텐데, 이를 어쩌면 좋을까?’ 근심하며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의 정성 어린 마음과 그 발걸음은 참으로 훌륭합니다만,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가 일제히 들려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착한 여인들이 보게 된 것은 그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무덤을 보고자 했으나, 그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천사를 봅니다. 두려움에 떨며 거의 죽을 지경에 놓인 병사들을 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전해줍니다.
이것이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열심히, 가장 철저히 따랐던 여인들 조차 “주님의 시신이 담긴 무덤”만을 예상하며 갔으나, 그들이 본 것은 예상치 못한 부활 사건이었다! 복음서는 일제히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착하디 착한 여인들이 갖고 있던 동기와 무덤의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의 대조를 통해 부활의 확실성을 드라마틱하게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더욱 확실하게 들려주고자 하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 세가지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부활은 능력의 증거입니다. 이 여인들이 맞닥드린 부활의 현장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경이롭게 나타난 곳이었습니다. 2절에 큰 지진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지진과 함께 나타나곤 했습니다. 마태복음 27:51에 주님이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는 지진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9:18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라고 기록됩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 갇혀 기도하고 찬송할 때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다 풀어졌다고 했습니다(16:26).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실 때, 자연을 초월하시는 능력이 지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활 사건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천사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무덤을 닫았던 돌문을 굴려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돌 위에 앉아있는 천사를 이 여인들이 만납니다. 그 형상이 번개와 같고 그 옷이 눈같이 희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스런 능력을 동반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천사들이 전하는 부활의 소식을 이 여인들이 직접 들었습니다.
마 28:5-7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중재자였습니다. 주님의 성탄에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던 천사와도 같이, 하나님은 주님의 부활 사건을 천사를 통하여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였습니다. 그 능력은 오늘도 살아 역사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속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로 증거된 하나님의 능력이 오늘 우리들의 인생과 우리들의 예배 위에 임재하심을 믿으며, 살아계신 능력의 체험이 더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부활은 말씀의 증거입니다. 6절에 천사의 말씀 중 중요한 것은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던 것이라 함은 곧, ‘다시 살아나심- 부활’을 뜻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공생애 중에 이 사건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 16:21에는 변화산 사건 후에 주님께서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고 말씀합니다. 마 17:22-23에서도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고 전합니다. 막 8:31 에서도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일까요? 본문 1절에서, 이 착하고 충성된 여인들은 “무덤을 보기 위해”갔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생전에 전하신 죽음과 부활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점을 융통성 있게 넘나들며 요한복음 2:19-22절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정화하시고 유대인들이 큰 저항을 할 때 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그때 하시던 말씀들을 회상하면서 깨달아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바라보는 부활은 어떠합니까? 주님의 언약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님 말씀의 신실한 성취가 부활로 이루어진 것임으로 인하여 말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더욱 굳건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주님의 부활은 소망의 증거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된 증거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달리한다면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영원히 소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선 부활의 그 아침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점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사역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부활의 아침은 이 세상이 다시 새롭게 재창조된 선포의 날이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바로 새롭게 열린 재창조의 세계를 감사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예배는 영원한 소망의 예배입니다.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그 소망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두려움에 싸인 여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9절에는 평안입니다. 카이로! 샬롬이란 말을 헬라어로 옮긴 말입니다. 그리고 10절에는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가 이 현장에서 있지만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병사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천사를 무서워하여 떨며 있었다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인들도 무서워하고 떨고 있었고 이 남자들도 떨고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을 만나는 날 분명 두렵고 떨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날 두렵고 떨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너무도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이과수 폭포의 거대함과 에베레스트라는 자연의 웅장함 앞에서 고개를 숙여진다는 말이 있다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 앞에서야말로 두렵고 떨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에게 들려질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평안하라. 이 말은 우리에게는 무한한 감사와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 말은 냉정합니다. 저 무덤을 지키던 자들,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천사도 예수님도 아무 말씀이 없는 것을 보십시오. 두려움의 시작은 같지만 끝이 다른 것입니다.
성도이든 불신자이든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설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두렵고 떨 것입니다. 그러나 두렵고 떨림의 질이 다를 것입니다. 불신자들의 떨림은 두려움과 공포, 멸망으로 가는 자의 절망에 머물지만, 우리들의 떨림은 주님의 영광 앞에서 경이로움과 감사의 전율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떨고 있는 우리 앞에서 주님은 두 팔을 벌리시고 평안의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8절의 여인들처럼, “무서움과 함께 큰 기쁨”으로 너무 좋아, 그 앞에 엎드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 오늘 우리들의 삶의 자리가 힘들고 어려운 곳입니까? 본문 10절의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십시오. “갈릴리, 거기서 나를 볼 것이다!” 오늘 어떤 장애가 있고, 경제가 힘들고, 인생이 고독함과 쓴맛과 뭔가에서 뒤처지는 듯한 답답함이 있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갈릴리에서 너를 만날 것이다!
주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에도 갈릴리로 가리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갈릴리를 사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부활! 과거의 사건 뿐이겠습니까? 주님의 임재는 오늘도 Ing 진행형입니다. 아니, 영원한 미래로부터 오고 오고 또 오는 소망의 철길이 바로 우리에게 열린 부활인 것입니다. 이것을 누리십시다. 이것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이 봄, 이 부활의 소식이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던 교리적 지식이나, 누군가의 강요로 끌려와 억지로 들었던 졸음 겨운 설교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 위에 주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 능력, 신비로운 소망의 파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부활의 기쁜 소식을 (샤론, 벧엘) 찬양대의 찬양으로 함께 하십시다.

사랑의 주님, 부활의 이 신비한 소식이 저희에게 구별되이 전해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부활의 소식이 저희에게 산 소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고, 우리의 비전이 살아나고, 우리의 사랑과 소망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물결치는 비전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여전히 죽음과 어둠에 세력에 속한 자들, 저 갈릴리에 사는 자들을 향하여 주님과 함께 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김창운 목사 2017.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