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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인생 (2017.03.19)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 3장 16-21절
 
 
본문 내용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Content




                               복음과 인생 요 3:16-21절
새봄 소식이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남쪽에는 벌써 매화 축제들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봄의 소식은 하나님의 소식과도 같습니다. 봄 소식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도 따뜻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말씀하기를, “이처럼 세상을 사랑” 하셨는데, 어느 만큼이냐 하면 ‘독생자’를 주실만큼입니다. 독생자란, 오직 하나 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오직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주실만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녀를 먼저 보내면 가슴에 묻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써놓은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제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 아시죠? 하나님도 그 아들 죽는 거 보셨으니.” 하는 말이었습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헤아릴 수 있다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마음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아들을 보내신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프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감행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그 아들을 보내실 만큼 그토록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17절 말씀은 16절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들을 보내신 이유는 심판이 아니요 구원을 이루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삼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세상에 심판을 주어 죽이려 하신 의도”가 아니라, “어찌하든 세상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살리시고자-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시고자,”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아들을 보내어 죽음의 십자가를 지도록 하실 만큼이나 저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인해 거듭난 인생이 된 것입니다. 거듭난 인생이란 말은 바리새인 중에 주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 위에 3장 3절에 보면,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이 거듭남의 뜻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늙으면 죽음으로 가는 것이지,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모태에 두 번째 들어갔다가 나오기라도 하는 것입니까?”(3:4). 우리는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적합한 질문입니다. 믿음의 이치를 전혀 모르는 입장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때 주님의 대답은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는 이 말씀을 풀어주신 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인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대신 죽게 하셔서 성도들의 죄의 인생이 함께 죽고,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의 증거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궁금했던 이 거듭남은 결국, 주님이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마치 죽음의 역으로 향해 가던 인생 철로가 영원한 생명의 역으로 가는 철로로 갈아타게 된 것을 주님께서 직접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나의 죄를 십자가에 함께 못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심 같이 나도 더불어 살아난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물이요, 세례의 영적 의미입니다. 거듭나게 된 인생으로서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의 영, 성령님과 함께 삽니다. 이것이 물과 성령의 의미요, 주님이 자원하고 순종하여 이룬 것입니다.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요 절대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그 은혜를 “믿음”으로 누릴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1절의 말씀처럼 주님이 내 인생을 거듭나게 해주셨기에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자요 빛에 속한 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우리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염려합니다. 폭풍처럼 다가오는 시험에 영의 눈이 닫혀버리고, 험난한 인생의 언덕길에 찾아온 불안으로 인해 나의 믿음 없음을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 없음을 스스로 책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의 믿음도 주님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신 사람은 어떤 인생이었습니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 드린다면, 첫째,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주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누워있던 병자를 고치신 사건이 있습니다. 거기 사람들이 모이는 행각(주랑, 콜로네이드)이 있었는데 병자들이 많이 누워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 자리에 38년 동안 누워있던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38년 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지내야 했던 이 연약한 사람에게 주님은 직접 찾아가셔서 고쳐주셨습니다. 연약한 자가 있을 때 친히 찾아가 고치시는 주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 찾아와 손 내미시고, 주저앉아 일어날 힘도 없을 때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1:10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연약한 자를 찾아와 오른손 내밀어 일으키시는 그 사랑의 복음이 우리 위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이방인이었던 인생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족 여인이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딸이 귀신 들려서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을 대하는 말씀을 보면 마치 주님께서 이 여인을 박대하거나 차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주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주님을 향해 간절한 믿음으로 호소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때 주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십니다. 그 여인의 소원대로 아이에게 들렸던 귀신이 떠나가게 됩니다.
모두가 외면하던 이방인에게 동일한 사랑을 베푸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저 사마리아 여인으로 다섯 번이나 남자들에게 버림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던 사람을 찾아가 예배의 삶을 주셨던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말씀에서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2:10) 주님 앞에선 어떤 신분도, 어떤 혈통도, 어떤 종족민족도 차별이 없습니다. 이방인의 인생에게 주시는 동일한 사랑만이 주님께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번째로, 주님의 사랑은 죄인된 인생을 향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리고라는 성에 사는 세리입니다. 세리(세금공무원)라는 직업이 당시에는 로마 식민지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해야 했으므로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19장 17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대놓고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예수님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댑니다. 실제로 그가 죄된 행동을 했습니다. 19장 19절의 말씀에 보면 그가 세리 노릇을 하면서 사람을 속였습니다. 사람들의 것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죄인 삭개오가 주님을 모시고, 회개의 맹세를 할 때 선포하실 뿐입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9:9). 죄인된 인생을 찾아가 거듭나게 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지 못하시는 죄인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롯 유다까지 말입니다. 로마서 5:8은 우리에게 선포해 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여러분, ‘내 믿음이 부족한가 내 믿음이 제대로 되었는가’ 두려우시면 누가복음 8장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 회당장이 딸이 죽을 위기를 맞아 주님을 찾아왔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눅 8:50). 믿기만 하라. 내 인생이 어떠하였든, 목숨도 주셨고, 거듭남도 주셨고, 영원한 생명도 주셨고, 구원을 이루신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편지 한 장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 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목사님(로버트 루이스 대브니)이자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열심히 사역 하다가 말년에 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몸도 약해집니다. 죽음이 머지 않았음을 느끼면서 오랜 친구인 목사에게 편지를 합니다. ‘지금 자기 자신이 죽음을 받아 들일만치 믿음이 준비 되었는지 자신이 없다’고 불안한 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 고백을 들은 친구가 이 친구를 위해 보낸 아름다운 편지입니다. <벼랑에 걸린 다리를 건너는 여행자>를 떠올려 보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씁니다.
그 다리가 건널 만한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다리를 두드려보고 꼼꼼히 살피겠지. 다리 끝에 서서 자기가 다리를 확실히 믿고 있는지 따져보고 있을까? 다리를 보아하니 견고한 것 같은데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타령을 한다면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면 어떻게 믿음을 키울 수 있겠나? 결국 계속 다리만 두드리고 있겠지.
이보게 친구. 믿음 타령은 그만두고 자네가 뭘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주님의 능력, 그 분의 사랑, 그 분을 찾는 영혼을 그 분이 얼마나 아끼시는지 떠올려 보게. 그 분이 하신 일을 생각해 보게. 그 분의 보혈은 지구상의 모든 죄인의 죄보다 강하지 않나. 자네의 죄도 씻고도 남지 않겠나?...
이보게 친구, 나는 내가 자네 같은 처지가 됐을 때 자네가 나에게 말해 줬으면 하는 것을 자네에게 말하고 있네. 위대한 신학자도 결국 하나님의 여느 자녀일 뿐이고 신학자든 우유 짜는 아낙이든 농부든 의지할 것은 복음뿐 이잖은가.
자네의 믿음을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고 믿음의 넓은 터, 즉 죄인의 피난처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그 분의 사역을 기억하기 바라네. 믿음이란 그 분을 보는 것이네. 나는 자네의 고통이 줄어들고 매 순간 복음의 기쁨을 누리길 기도하고 있어. 잘 지내게. 하나님은 늘 자네와 함께 계시네. 다리를 생각하게. 자네의 형제 클레몬드 리드 본.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이루신 거듭남의 비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연약한 인생을 친히 찾아가 고쳐주셨고, 이방에 속했던 인생에게 복을 주셨고, 어떤 죄인의 인생이든 사랑치 못함이 없으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영원한 다리인 것입니다. 누구도 믿음을 자랑할 수 있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누구도 내 믿음이 구원에 이를만 한가 두려워 해야 할 인생도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믿음 조차 주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7:6에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여러분, 여러분의 거듭난 인생, 긴장의 줄타기가 아니라 확신과 담대함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어떤 위협도 여러분을 넘어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위기도 믿음의 사람들을 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 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목숨을 내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는데, 무엇을 못 주시겠습니까?
일시적인 실패, 일시적인 고통의 시간들을 하나님이 일시적으로 허락하시지만,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는 적이 없습니다 (고전 10:13). 이런 시험들 조차도 은혜로 바꾸셔서 선하고 기쁘신 뜻을 이루어가시는 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모든 것들을 사랑의 그릇에 담으셔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빚어가시고 계심을 믿으신다면, 오늘 우리가 지닌 어떤 어려움의 기억, 힘든 삶의 경험들도 은혜로 화하게 되지 않을까요?
(기도)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에게 거듭난 인생, 영원한 생명을 사는 인생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이 복음의 말씀을 순전히 믿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든든히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복음으로 거듭난 인생이오니 주님의 사랑이 늘 붙들어 주시옵고, 그 사랑으로 아픔의 기억들과 육신의 질병들도 치유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우리 벧엘의 성도들의 소원과 아룀에 응답의 역사를 더하여 주셔서 힘을 내어 주님을 더욱 높이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림인식 목사 2017.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