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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의 특권 (2017.03.05)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에베소서 2장 19-22절
 
 
본문 내용
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Content

     

      

                           엡 2:19-22 “성장의 특권”

꽃피는 춘삼월이라는 계절이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도 따뜻한 마음과 기쁨이 생동하는 복이 더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교회에 들어오시면서 여러분을 기쁘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예배당에 들어설 때마다 간혹 유심히 바라보는 것이 있습니다. 로비 오른쪽에 부조로 새겨놓은 기념판입니다. 교회 건물을 세우고 준공한 후에 수고하고 헌신한 분들을 기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새겨놓은 기념물입니다. 또 왼편 입구 옆에는 머릿돌이 있습니다. 1985년 기공을 하였음을 새겨놓은 기념물입니다.
보통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공사를 마친 후에 머릿돌을 세웁니다. 건축을 시작한 연월일을 새겨놓고, 본격적으로 공사를 착수합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건축하고자 하는 건물의 주권과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는 일종의 예식이었습니다. 그것을 <정초식>이라 했고, 그것이 본래 예배당을 세우던 정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여러분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터에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모퉁잇돌이란 것은 원어로 (아크로-고니아이오스)라고 하는 합성어입니다. 최고 중의 최고, highest 라는 뜻의 아크론이란 말과 고니아(모퉁이)란 말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모퉁이돌, 영어로는 Chief cornerstone 이라고 했습니다. 풀어서 말하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물 각 부분들을 떠받치는 모퉁이돌이 필요한데, 모든 모퉁이 돌들 중에 예수님께서 친히 가장 소중한 모퉁잇돌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엡5:13). 또한 우리 각 사람은 몸 된 교회의 지체라고 말씀합니다. 롬 12:4-5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육신을 위해 열심히 직장생활을 합니다. 마음의 행복을 위해 취미 생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삽니다. 육신도 중요하고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우리 존재의 다가 아니고, 영적 존재이기에, 아니 우리의 인생은 영혼만이 남을 것이기에, 우리는 오늘 예배에 참여하여 영과 진리의 시간 속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고 지체가 되었다는 말씀은 참으로 신령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그리스도의 몸 되어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은 우리를 성령의 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복수형 “우리”라는 공동체가 성전이라는 말이요, 오늘 21절 말씀에,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마치 서로 연결되어 교회라고 하는 유기체(有機體, an organic body)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유기체라는 말이 좋습니다. 당신이 나의 지체요, 내가 당신의 지체, 서로서로 지체가 되어 살아있는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정한 목적 하에 통일적으로 조직되고 생활 기능을 가진 산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기초로 다져져 있고, 그 위에 벽들을 차곡차곡 쌓듯이, 우리를 그 기초 위에 끼어 넣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친히 그 건물 속으로 내려오셔서 각 부분을 떠받치시는 가장 중요한 모퉁잇돌, Chief Cornerstone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신령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폴 히버트라는 문화인류학자가 있습니다. 이 분이 오랫동안 선교 생활을 하면서 인류학적 관점에서 쓴 책이 있습니다. Anthropological Insights for Missionaries 라는 책입니다. 선교의 비전을 두고 있는 이들은 반드시 읽는 교과서인데, 여기에서 폴 히버트 교수가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문화는 마치 유기체와도 같고 그 속에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요소 아닙니까?  인격의 3요소이죠. 문화란 것이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기체와도 같이 인격의 구성 요소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 이 세가지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격적 구성의 머리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령한 질서와 신령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비전이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줍니다. 21-22절 말씀입니다. 방금 본문을 읽었는데, 쉬운 성경 번역으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점점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고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계실 집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비전은 이것입니다.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는 영적 진리>의 체득입니다.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입니다. 각 사람이 성전의 지체로서 성장하며, 우리가 한 몸된 벧엘교회라고 하는 유기체로서 신령하게 함께 지어져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씀하고 있고 이것은 저와 여러분이 공유하여야 할 중요한 비전 퍼스펙티브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저와 당회가 고심하면서 준비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우선 엘리베이터가 필요합니다. 우리 어른들, 유모차 끌어야 되는 젊은 엄마들,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분들 위해서 우선 필요합니다. 누구나 식사 하고 나서 커피 마시면서 얘기 나눌 수 있는 까페 공간도 필요하고, 청년들과 어린 친구들이 마음껏 찬양할 공간과 음향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교육을 위해 유치원이나 문화학교를 위해 수리도 필요하고 건축도 필요하고, 교회 부흥을 이루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와 당회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이것들을 열심히 해가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비전이 아닙니다. 이것은 필요입니다. Goal이 아니라 Need 입니다. 필요가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Need는 본질 다음입니다. 비본질이 본질을 대신하려 하면 앞뒤가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한국뿐 아니라 세계에 어려운 교회들이 있다면 그 이유는 비본질이 본질의 자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 되신 주님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람의 계획과 욕심들이 필요와 엉키게 될 때 비본질이 판을 치고 결국 그로 인해 교회가 큰 어려움을 경우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비전은 이것입니다. 첫째, 성장의 영성입니다. 성장의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성령의 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다 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지어져 가고 있다는 진행형에 대한 믿음의 자각 말입니다. 여기에 평안이 있고, 여기에 말씀으로 살아가는 신앙의 본질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 3:12-14에서 말씀합니다. 내 영혼의 성장을 위해,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배움”의 심령으로 살아갈 때 참된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장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것입니다.
‘나, 마이크로 코스모스’라는 책(Wie wir uns selbst erfinden Werner Siefe, 2006)이 있습니다.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베르너 지퍼와 크리스티안 베버가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유명한 정신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특히 신경학자들을 방문하면서 연구하여 낸 책인데, 이 연구에서 사람의 뇌 속에 신경세포는 거의 평생 동안 새로 생겨난다고 말합니다. 이 발견에 의하면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해야 한다”한다는 관점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운명이 결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라, <나는 누가 될 수 있는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과잉낙관주의”가 아니라, 내 인생과 마음을 가다듬고 키워나가는 것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보통 생후 3년 이내에 성격의 대부분이 형성되기 때문에, 부모 특히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푼 부모로 인해 형성된 긍정적인 자아상이 평생 가는 것은 동의할 수 있지만, 이제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서른 살, 마흔 살이 넘도록 아직도 부모 탓을 하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한다면 스스로 불행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얼마나 귀합니까? 지어져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분명한 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 성장의 패러다임은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우리의 머리되신 주님으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한번은 율법학자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어떤 계명이 중요합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7-40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이 두 말씀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머리 되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신앙의 목표요 비전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란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 젊은 친구들도 좋아할만한 용어로 하고 싶었습니다. 즉, 성장 패러다임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을 기쁘게!”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함께 목표하며 정진할 신앙적 비전인 것입니다.
고 하해룡 목사님께서 유훈처럼 남기신 교회의 표어는 “복음을 땅끝까지”이었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이요, “사람들을 기쁨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김서년 원로목사님께서 지난 20년간 목회 표어로 삼으셨던 “주님 안에서의 새 생활”이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와 찬송의 삶을 통해 새 생명의 생활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원했던 그 푯대, 그 목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요, “다시 거룩한 교회”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기쁘게”인 것입니다.
셋째, 더불어 성장함(growing together)의 비전입니다. 고전 12:27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는 홀로 선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된 몸의 일부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입니다. 우리는 개인주의에 익숙해있고, 세상은 더욱 이기주의를 부추깁니다. 갈수록 세상은 분쟁의 모습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벧엘교회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비전에 우리의 눈을 주목하고, 우리 벧엘교회 교우들은 그 비전에 우리 인생을 개방해야 합니다. 말씀은 분명 우리에게 불행이 아니라 참된 행복과 평강, 영원한 천국 길로 인도하는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건물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함께, 더불어 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성장해가는 이치입니다. 성장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결혼을 왜 합니까? 둘이 좋아서요? 예, 옳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각하면, 더불어 성장하는 이치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계획처럼 “돕는 배필”이 되어 더불어 성장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이를 왜 낳고 가정을 왜 이룹니까? 영적으로 보면, 바로 그 가정을 통해서 서로 서로 성장해가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싸워도 보고 아이들을  키워가면서 철들어가는 이치처럼 말입니다.
교회 공동체야 말로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는 수십년을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거의 한평생 같이 예배하며 교제도 하고 사역도 하며 걸어오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인생 동반자인지 모릅니다. 지내보면 부딪힐 일도 있고 의견이 안 맞을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실수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 또한 목적과 비전이 상황과 환경적으로 충돌이 될 때 좌절이나 낙심을 겪었던 적이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을 많이 살아온 어른들이,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뿐이었다고 하듯, 우리도 어느 날 우리의 자손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 성장의 특권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는 초대교회의 갈등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브리파 헬라파가 갈라져서 서로 원망하고 다투었습니다. 그 갈등이 큰 싸움으로 번지고 세상 법정으로 갔다면, 초대교회부터 무너지는 비극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집사님들을 세우고 본연의 사역인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고, 직분자들이 열심히 사역을 하며 갈등과 문제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갈등을 극복하면서 놀라운 일이 있어납니다. 성경본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다>고.
여기서 우리는 유기체된 교회에서의 갈등이 도리어 성장에 이르게 하는 이치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이 성장통을 거치고 몸살도 걸린 후에 부쩍 성장하고 면역력도 생기듯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아픔을 통해 성숙해지고, 갈등을 해결할 때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혜가 “심히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남부 오렌지카운티에서 개척을 하여 수만명의 교회를 이루고 미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한 새들백교회의 담임목사, 릭워렌 목사님이 한 말이 있습니다.
교회 가족은 우리를 자기 중심의 고립에서 벗어나게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교실이다. 이타적이고 교감하는 사랑을 연습하는 연습장이다. (릭 워렌)
오늘 우리는 서로 사랑하겠다는 의지적 결심을 하기 전에, 이 영적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체가 되었고, 그럼에도 지체가 되었고, 그러므로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더불어 살며 사랑을 배우게 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눈이 열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갈 길은 아직 멉니다. 아니, 먼 것이 아니라, 영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히 맡겨질 중요한 일거리가 있습니다.
딤후 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 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현대인들이 믿음이 약해진 것은 우리가 이 지구에서 한 100년 살고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 조차도 ‘예수를 입술로 시인하였으니 구원받고 천당에 가겠지’에서 멈춥니다. 천상의 이야기가 강단에서 멈추었고, 지상의 삶에만 시선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씀합니다. 믿는 이들, 믿음을 지키고 성령의 전으로 더불어 성장하는 이들은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 하게 하시겠다는 성경 말씀, 이것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위해 우리는 성전이 되어 가는 중입니다. 이것을 위해 진행형, 지어져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남는 인생이고 싶습니까? 고집이 남는 인생이고 싶습니까? 이생에 속한 사람도  말합니다. 지혜가 남기는 생으로 살고 싶다고요. 이 땅의 지혜로 마치는 생으로 살고 싶습니까? 하늘의 왕 노릇을 위해 살아가고 싶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거듭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사람들을 기쁘게!” 그 푯대를 향하여 배우며 배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권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지혜도 모르는 것, 그 목표가 주님 안에,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권 함께 누리며 이 땅에서 참된 행복과, 주님이 맡겨주실 왕노릇의 자리까지 강건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영원하신 머리요 우리 교회의 머릿돌 되심을 감사합니다. 그 은혜로 저희가 모였고, 그 신령한 모임 속에서 저희가 형제요 자매된 가족임을 봅니다. 더불어 지어져가는 안목에 주님 원하시는 행복이 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주님, 오늘 이 말씀이 우리 속에 응하게 하시고, 그를 통하여 건실한 성전으로 더불어 지어져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은혜의 해를 사십니까? 김창운 목사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