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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됨의 특권 (2017.02.19)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20절
 
 
본문 내용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Content

                  성전됨의 특권 고전 3;16-20
여러분, 세상 살이에 얼마나 힘드십니까?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놀랄만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만큼 복잡하고 불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없는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봄의 모습들이 그것을 들려줍니다. 아동문학가인 이정인씨의 시, “몸짱 씨앗”이라는 시가 참 정겹습니다.
                                             몸짱 씨앗 

                                            요것 좀 봐!

      잠자는 척하면서/ 팔운동/ 다리운동/ 숨쉬기운동/ 부지런히 했던 거야.

            안 그러면/ 이 쪼그만 게/ 흙덩이를 번쩍/ 어떻게 들 수 있었겠어?
                                                               (이정인·아동문학가)


씨앗이 흙을 뚫고 세상을 향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꽃들도 봉오리들 틀었고요. 죽은 것 같은 땅에도 생명의 호흡은 겨우내 강건하게 살아있었습니다. 시인이 노래하듯이 생명의 신비는 그냥 있었던 것이 아니라 팔 운동 다리 운동을 하면서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천국이 징조와도 같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밭에 감추인 보화”처럼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떤 혼란의 상황 속에서도 천국은 그것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사람들에게 천국이 살아있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 나라는 세워져 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특권이라는 말은 전제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어로 Privilege 라고 하는 이 말은 사전적으로 “어떤 신분이나 지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나 이익”을 말합니다.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권리라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 속에 있습니다. 이 선택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선택입니다. 나의 어떤 공로도, 어떤 선행도, 어떤 아름다움도 이 선택의 근거와 이유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임한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된 특권,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이 믿어지는 특권!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감사함의 이유가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이란 한마디로 거룩한 집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전이라 하면 구조와 기능면에서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우선은 성전 외형 건물입니다. 성전은 바깥의 외형으로부터 아름다운 금과 은과 놋과 귀한 돌들, 백향목과 잣나무등으로 세워졌습니다.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성소가 있습니다. 거룩한 곳입니다 (Holy place. 코데쉬). 제사장들이 들어가서 제사하는 곳입니다. 금으로 만든 떡상과 등대와 향단 같은 것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서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 제사를 드리며 속죄와 화목,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소에서 더 들어가면 안쪽으로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 안은 오로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성소라고 합니다. 코데쉬 핫 코데쉼 –가장 거룩한 곳, Holy of holies 라는 말입니다. 그곳에 법궤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법궤 위에는 스랍, 하나님의 천사들의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성전이라고 할 때, 이것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대단히 의미심장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의 모양과도 같이, 우리의 몸이 성전의 몸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격이 성소와 같습니다. 그리고 지성소가 성전 가장 거룩한 곳에 있는 것처럼 성도의 인격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놀라운 대비를 오늘 말씀 속에서 전해주면서 말씀합니다. 누구나 집을 짓는 인생이요, 우리는 성전을 짓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모습들은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금방 태워 없어져버릴 지푸라기나 나뭇가지로 인생의 집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 보석으로 인생의 집을 쌓아 올립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1-13)
그런데 때가 되면, 하나님이 이 집을 불로 태울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불이 태워버리면, 지푸라기도 나무도 금도 은도 보석도 다 타 없어져 버립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타 버리고 흔적도 남지 않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집을 세우면서 세상 재료들을 가지고 집을 짓습니다. 다 타 없어지게 될 것으로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택 받은 백성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이것을 경고하면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16)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전으로 살아가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전을 어떻게 세워가고 있는지 생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전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생각할 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성전은 세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교훈을 줍니다.
  첫째, 버려지는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 8~11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비극을 단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언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 안뜰로 들어가는 북문에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북문 곁에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애곡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동문에서는 스물 다섯 명의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법궤를 등진 채 동쪽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예배를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예언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백성들의 타락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성전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무얼 말합니까? 예배의 부재입니다. 가인이 버려진 이유가 예배의 부재입니다. 야곱이 하란의 고통의 세월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벧엘,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 예배의 부재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버려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의 부재입니다. 지금도 유럽, 북미의 영적 혼란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의 부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의 성전 됨은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신 성전은 결국 버려집니다. 그 성전이 무너지고, 그 성이 무너지고 그 나라가 망하게 되는 역사를 걷게 됩니다.
오늘 17)절 말씀이 우리에게 전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고 정결하여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성전됨의 특권은 예배를 통해 존속되는 것입니다. 영과의 진리의 예배를 통해 건강한 성령의 집을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훼방 받는 성전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6장에 솔로몬이 세운 성전을 솔로몬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무너지고 그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비참한 이방 나라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70년의 고통의 세월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하십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를 통해서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하십니다. 이 성전을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세울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방해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라 4장에 보면, 성전을 세우는 중에 자격이 합당하지 못한 르훔과 심새라는 사람이 찾아옵니다. 성전 건축에 거절을 당하자 방해를 합니다.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정치적으로 방해하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를 올려 권력의 공작으로 방해합니다. 물질 공세와 정치 공작으로 성전 건축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성전은 완성되지만, 이러한 성전의 역사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전됨 또한 훼방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훼방 받는 것이 무엇일까요? 18절에 기록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로운 줄로 생각하여 참된 지혜를 따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19절 말씀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고 있는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시편 94:11은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성전을 지어간다 할 때, 세상의 지혜와 정열, 세상의 방식과 지식을 집착하여 그 터 위에서 성전을 지으려 한다면, 그 공적들은 다 불타게 될 것입니다.  15절이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새번역은 이렇게 씁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이 해석을 보면 “구원을 이루게는 되지만 간신히 이루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성전됨이 이렇게 훼방을 받고 있다면 얼마나 안까깝고 위태로운 일이겠습니까?
영국의 유명한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라는 분자생물학자이자 신학자는 Bridge Building이라는 저서에서 말합니다. “이성은 죄에 의해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 바로 통치하실 수 없게 되어 버린, 마치 적에 의해 점령된 마을 같다. 이성은 마치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달콤한 기억을 회상할 여력은 아직 가지고 있지만, 이미 죄의 노예가 된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이성에만 의존하고 하나님의 계시나 이적의 손,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게 되면 죄에 점령된 도시처럼 성전 건축이 훼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셋째로 참된 성전은 영원한 성전입니다. 11절의 기록처럼, 우리가 오늘 성전됨의 근거가 오로지 영원하신 성전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무너지고, 스룹바벨의 성전도 사라졌습니다.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예배를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 영원한 대안이 오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성육하여 오셨을 때는 예루살렘에는 헤롯 성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분봉왕 헤롯의 아버지 대헤롯이라는 왕이 46년이나 걸려 세운 성전이었습니다. 당시에 주님은 이 성전을 보면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2:19에 보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요한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2:21-22) 주님께서 그 몸을 성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몸이 3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몸이 성전이라는 것, 성령의 전이라는 영적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성전으로 여기시고 다시 사신 것과 같이, 이제 주님께서 우리들을 성전이 되게 하셨고 새 생명, 부활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포처럼 우리는 “주님의 터 위에 굳건히 세워진 성전”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의 터 위에 성전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진 특권적 은혜를 입었으므로, 그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자기를 속이는 행동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입니까? 거짓말을 하는 첫 희생자는 그 말을 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소중한 하나님의 전을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중에 성령의 전임을 기억하여 잘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가 내 지성을 지배하고 자랑이 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18절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세상에 대해서는 다소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 쉬운 번역 성경은 이렇게 전해 줍니다. “세상의 최신 유행을 따르는 것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바보가 되십시오. 그것만이 참된 지혜에 이르는 길입니다”(메시지성경)
우리의 성전됨은 특권입니다. 모두에게 주었지만 그것을 믿은 자들에게만 해당되게 된 특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치신 그 특권적 은혜 안에서 우리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사모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빌3:7-9)
성령의 전 된 우리의 특권을 잊지 맙시다. 우리의 인생의 터는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의 어떤 의도 그리스도입니다. 가장 고상한 지식!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참된 지혜가 가득하여,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주님의 날까지 아름다운 성전을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험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가심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터 위에 세워진 성전임을 다시 기억하오니, 주여, 이 성전이 거룩하고 견고하게 지어져 주님 오시는 날에 아름답게 완성될 수 있게 하옵소서.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인생을 예배 속에서 다시 새롭게 또 새롭게 하시며 거룩한 성전의 모습들을 차곡차곡 세워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하는 기도>
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령님 내 성전을 잘 세워 주십시오. 성령님, 잘 부탁드립니다.


 

예배에 담긴 비밀 김창운 목사 2017.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