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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자의 특권 (2017.02.05)
설교자     김창운 목사
예배명     주일예배
성경본문     요한복음 4장 13-24절
 
 
본문 내용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Content


                                    예배자의 특권 요 4:13-24
봄이 우리 곁에 가까이 왔습니다. 입춘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전통 풍습에는 입춘을 맞이하면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말을 대문에 붙여놓았습니다. “봄을 맞아 길한 일이 크게 찾아오고, 따뜻한 볕이 감도니, 경사스런 일이 많을 것이라” 하는 소원과 축복의 말입니다. 제게도 문자를 보내주신 분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야 말로 세상의 기운을 압도하시는 성령님의 기운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성도들의 가정과 생업에 크게 좋은 일들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인사와 덕담을 나누면서 행복할 때마다 기억나는 것은, 아직도 가난과 질병에 눈물 짓는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휴전선을 두고 갈라진 우리의 형제들이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먹지 못하다 보니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소아마비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북한 뿐이겠습니까?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여러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에서도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교를 위한 작은 헌신이 그 곳 사람들을 돕고 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지역과 지구촌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의 사명이요 비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일”(마18:6,14)에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은 참으로 가여운 한 여인을 찾아가십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주로 공생애 활동을 하신 주님이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셨는데, 수가라는 성입니다. 이 성에 도착한 시각이 여섯 시, 우리 시간으로 정오 12시에 한 여인이 물을 뜨러 나옵니다. 중동지역은 정오면 태양이 꼭대기에서 내리쬡니다. 가히 살인적인 더위입니다. 사우디에 파견 다녀오신 분들 이야기로는 아스팔트에 달걀이 떨어지면 후라이가 될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시간에는 사람들이 나다니는 시간이 아닙니다. 저녁 때나 이른 아침 선선한 때를 골라서, 그것도 동네 바깥이라 위험하니까, 여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와서 수다도 좀 떨고, 물을 긷고 동네로 들어가는 것이 관습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사람이라고는 다닐 수 없이 뜨거운 해가 작렬하는 시각에 혼자 나옵니다. 필유곡절(必有曲折)이라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말을 건네시는데,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대화를 하시려고 이 여인에게 다가가시는 것이죠. 우리들의 옛이야기에는 나그네가 물을 달라하면 여인이 바가지에 버들잎을 띠워서 공손하게 드렸건만, 이 여자는 주님이 물을 달라시는데, 안 드립니다. 성경이라 문자로 쓰인 글씨인데도 충분이 느낌이 오듯이 뻣뻣하고 재미없이 대꾸합니다.
“아니, 유대인이 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 달라 합니까?” 날 선 말이죠. “이 잘난 유대 양반아, 우릴 개 취급하면서 물은 무슨 물이냐? 엿이나 먹어라.” 이 정도의 말투입니다. 마음이 꼬일 대로 꼬인 여인입니다.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겠죠.
사마리아가 어떤 곳입니까? 한 마디로 한 맺힌 땅입니다. 주전 721년 앗수르의 살만헤셀 4세가 쳐들어와서 이 땅을 점령하면서 아주 못된 일을 저지릅니다. 그 땅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서 민족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입니다. 소위 민족말살을 하는 것인데, 사람을 죽여서 말살하는 게 아니고 앗수르족 남자와 이 지역여인들을 결혼 시켜서 혼혈족(混血族)을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자손들은 앗수르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자손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던 거죠.
태어났더니 사마리아라는 곳입니다. 자라면서 알고 보니, 동포였던 저 유대 사람들은 우리와 상종도 않으려고 하네요. 거친 입으로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슬픈 역사의 배경이 이 여인의 입술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말이 옳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마리아인들도 모세오경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을 개로 취급했지만, 이들도 나름대로 모세오경을 따르면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이 여인의 형편은 더 기구한 것입니다. 율법의 법대로라면 여자는 세 번 이상은 결혼이 안 됩니다, 두 번까지만 결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면, 이 여인이 다섯 번 결혼을 했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다고 나옵니다. 이 말은 여자가 이혼에 대한 주도권을 갖지 못하던 시대에 남자에게 다섯 번 버림을 받았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두 번까지는 괜찮지만 세 번 이상은 안 되는데도 계속 결혼을 했다는 것은 율법적으로, 관습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된 사람이 되었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데. 이 여섯 번째 남자도 다른 여자의 남자입니다. 이 여자와 함께 동거를 하지만, 결혼해줄 마음도 없는 겁니다. 이런 남자와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뭐예요? 이 여인에게 이 남자는 최소한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장치에요. 여자의 몸으로는 밥벌이 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남성 주도의 사회 속에서, 떡 한 조각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 남자를 의존해야 했던 여인의 대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어머님이 홀몸으로 여러분들을 키워 주셨다면, 그 분은 진정 여러분이 그 분의 위인 전기를 써드려야 할 영웅입니다. 여러분의 아버님 어머님이 단란하게 여러분을 길러주셨다면 여러분 인생을 다 하도록 감사해도 다 감사 못할 분들입니다. 이 여인의 인생을 생각하면서, 역사의 험한 굴곡을 열심히 살아내신 이 땅의 어머니들께, 그리고 이 땅이 오늘이 되기까지 열심히 일구어오신 아버지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사랑의 음성이 있는 것입니다. “네게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그들이 네 남편이 아니지? 지금 함께 있는 그 여섯째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더러운 여인이라고. 팔자 좋은 사람은 말할 것입니다. 답답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호강하는 여인들은 말할 것입니다. 팔자 사나운 여자라고. 실제로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 여인을 세상과 율법으로부터 버림 받은 여인으로 경멸하며 멀리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여인이 눈길을 피해 그 낮에 혼자 나온 것이지요.
주님은 그게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는 그녀의 영혼을 보신 거예요. 그녀의 굶주림을, 그녀의 갈증을, 그녀의 인생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못했던 고통의 세월을. 주님이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 맞다. 지금 그 남자와 함께 있어도 너는 목마르고 궁핍하지 않더냐?” 그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네 영혼의 갈증을 풀 수 있는 길은 생명의 물로 너를 찾아온 나를 통해서라야 가능한 것이다.”
이 여인이 대화를 가만히 보니 보통 여인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깨닫습니다. ‘이 분이 보통 분이 아니구나. 이 분은 필경 선지자시다!’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꽤 뚫어 보실 뿐 아니라, 그 심령을 울리는 주님의 뜻이 그에게 닿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굉장한 대화가 벌어집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는데 당신들의 말이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 밖에 없다고 하니 이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여자여 들으라. 앞으로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니라.”
주님이 이 서러운 여인을 찾아와 주시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그때’ 가 ‘지금’이다!” 육체의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대낮에 우물로 나온 이 여인의 마음의 갈증을 보셨고 인생의 갈증을 보셔서, 그 갈증을 위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오신 주님을 밝히시며, 이제 주님께 예배하는 특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 예배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성은 안 그렇습니까?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존귀하게 발견되는 곳에서 행복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심리학적으심 볼 때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을 할 때 여인은 남자의 그 사랑의 고백 속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남성 또한 사랑하는 여인이 나로 인해 기뻐하고 행복해 하는 그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사랑 속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로스적 사랑, 우정의 사랑, 사람의 사랑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 자체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변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랑의 조건이나 상황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결혼하여 수십 년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시는 분도 있으시지만 항상 좋으시던가요? 솔직히 고백해보세요. 날마다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제가 그랬습니다.
사람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한계가 있듯이, 수천억 돈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허무한 일입니다. 높은 신분과 권력의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비록 힘들고 고단한 인생이지만, 고요한 중에 주님께 나아와 그 인생의 문제를 맡기는 자를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속에서 나를 발견하라고.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 “그때”가 바로 “지금”, 예배의 때다. 이것이 오늘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함으로 거기에서 발견하는 너의 존귀함, 이것이 “너의 참 모습”인 것이다!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라는 사람이 쓴 “죽음에 이르는 병”은 유명한 책입니다. 거기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과 생명에 이르는 길을 말합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을 말합니다. 반대로 생명에 이르는 길은 “희망”입니다. 희망이란 내 실존이 죽을지언정 끝까지 쫓을 진리를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것이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있다면, 어떤 것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못 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나아가 세상의 현세적인 고뇌와 궁핍, 질병도, 비참한 상황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난도, 불행한 일도, 마음에 고통도, 번민도, 염려도, 슬픔”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못된 다는 것입니다. 참된 희망이 있는 한 말입니다.
그 희망이 되는 진리란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바로 이 예배라고 하는 특권적 시간, 특권적 공간, 특권적 공동체 속에서 성령님의 은혜로 파도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이 여인은 구한말 우리 민족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갈 곳 없고 의지할 곳 없어, 이 나라 저 나라를 의지했죠. 청나라 일본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그때 주님이 오십니다. 우물가의 여인과도 같이 메마른 민족에게 와주셔서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시고, 오늘 우리 민족을 그 안에서 예배하며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입고 오늘 우리는 예배에 임재 하시는 주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나의 존재를 제대로 발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을 마시며 우리 영혼이 영원한 희망을 누리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할 때” “바로 이때라!”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예배자의 특권을 누리시며 여러분의 인생에 진정한 행복이 날마다 더 해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찾아오신 주님을 오늘 새롭게 만납니다. 영원한 생명, 그 영원한 진리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 영혼의 갈증을 씻어주시옵소서. 이러한 예배자로 살아가는 특권이 험난한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하늘나라까지 인도되는 통로임을 깨달아, 이 행복을 결코 놓치지 말게 하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너는 내 종이니라 김창운 목사 2017.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