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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집사님 발인에 붙여
곽신환 2017-07-25 14:07:40 27

권영진 집사님 발인에 붙여 (17725일 아침 730)

 

나와 직접적 관계를 맺었던 사람이 숨을 거두면 고인(故人)이라 합니다. 권영진 선생님은 이제 우리에게 삼일째 고인이 되었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가 경건과 애도(哀悼)의 정으로 예법에 따라 그의 육신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최고의 존중일 것입니다. 이를 이루어 내는 것이 상례(喪禮)의 본질입니다.

신앙적으로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 계신, 고 권영진 선생님의 육신을 이제 매장(埋葬)하기 위해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흙으로 지으신 그대로, 그 몸을 다시 흙으로 온전히 돌려보내는 길을 떠납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순간 생명과 존재의 근원(根源)과 종국적 귀결처(歸結處)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도 언젠가 떠나게 될 이 길이 남은 자들의 슬픔과 정성어린 보살핌 속에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더불어 고인의 삶을 회상해보며 그 아름다운 점을 이어보려 합니다. 그것이 이 자리에 있는 의미의 주요부분일 것입니다.

 

고인이 청년기에 처음 뜻을 둔 것은 신학(神學)이었습니다. 이 뜻은 이후 철학으로 문학으로 이행하면서 깊어졌고 넓어졌습니다. 신성함과 거룩함을 향한 그의 진전은 일생 멈춤도 없었고 끊어짐도 없었습니다.

고인은 그 영혼의 맑음을 위해 시를 쓰셨습니다. 그의 시에는 늘 허위(虛僞)와 천박(淺薄)함에 대한 미움이 담겨 있었으니, 편편이 세상에 대한 그의 정직한 영혼의 아픔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피조물의 신음(呻吟)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인의 계산 없는 제자 사랑은 주변에 많은 별같은 인재들이 모여들고, 군락(群落)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미혹(迷惑)을 깨뜨려주었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으며, 일생 닦을 업()을 주시려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고인은 속물(俗物)성을 멀리하고, 멸망의 가증된 것들이 거룩한 자리에 서있는 것을 참지 못하였습니다. 좀처럼 큰 소리 내지 않았지만 광신(狂信)과 맹신(盲信)에 대한 그의 분노는 질풍노도였습니다. 그의 신앙적 정직성과 순수함의 견지는 주변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고인이 추구한 삶은 그의 호 유강(悠江) - 곧 깊고 멀리 흐르는 강이 잘 표상합니다. 유강처럼 그는 깊이 생각하고 넉넉하게 감싸며 그리고 멀리 보는 삶을 지향했습니다.

 

고인은 일생 고전 음악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이 검소했지만 음향기기(音響器機) 만큼은 호사(豪奢)를 누렸습니다. 서재의 사방 벽은 책이 아니라 수량을 알 수 없는 LPCD로 빈틈없이 가득 차 있습니다. 시인이시지만 문자보다 더 좋아하고 즐기신 것은 음률적 표현이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쩌다 만나는 매니아들과 시간을 잊은 대화에 몰입케 하곤 했습니다. 음악은 그의 밤 시간을 지배하였습니다.

또한 약봉지가 선생님과 오랜 세월 같이 했습니다. 족히 다섯 종류는 넘고, 수량이 열 개도 넘는, 그래서 한줌이나 되는 알약을 그는 매일 복용했습니다. 세속이 그리고 현실이 그를 잠들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0년 넘게 곁에서 함께 한 김정숙 사모님은 명문여고 수석졸업생으로 영재적 두뇌와 학력의 소유자였고, 문학전공자로서의 문향(文香), 깊은 신앙으로 형성된 영성의 맑은 지향, 부드러운 따뜻함, 그리고 남을 아우르는 낮춤의 자세를 지녔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대학시절 철학도요, 문학도였던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열정과 대안 없는 확신과 부정할 수 없는 달변으로 대쉬하였습니다. 최선의 선택이며 성취였고, 하늘의 축복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객관적 잘못에 사모님은 때로 화는 냈어도 미워하지는 않았고, 슬퍼했지만 넘거나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무게의 존재성을 지니고 선생님을 지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생님을 먼저 보내시며 그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아니 선생님의 삶에서 최선의 선택은 사모님이었습니다.

 

이제 헤어질 때입니다. 헤어질 때의 최대의 미덕(美德)은 슬픔입니다. 지금 유족들을 포함한 저희들의 마음은 가누기 힘든 큰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합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슬픔이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헤어짐은 또한 만남의 전단계 조건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새로운 세계에서 만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또 다른 미덕,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에게 슬픔을 주시고, 동시에 기대와 소망을 주신 선생님께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곽신환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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