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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설(初雪)과 소설(小雪)
곽신환 2015-11-23 20:52:13 25

서울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제법 운치있게, 아주  분분하게 눈이 내렸습니다. 첫 눈을 한자로 표현하면 초설(初雪)이지요. 그런데 첫눈이 언제 내릴 지는 누구도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소설(小雪)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통상 소설은 11월 22일이나 23일에 닿습니다. 그러니 15일 전인 7일이나 8일이 입동(立冬)이지요.  

 

겨울의 대표적 상징은 눈이고, 이제 눈이 내리는 절기가 되었으니 피부만이 아니라 우리의 오관(五官)으로 느끼는 겨울이 되었다고 할 것 같습니다. 곧 큰 눈[大雪]이 내릴 것이고 이어서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차례로 이어질 것입니다.   

 

농가월령가에서는 소설이 음력 10월에 들어있어 10월령에 언급이 되어있는데 “시월은 첫겨울[孟冬]이니 낙엽지고 고니 높이 날고, 김장 하고”로 시작됩니다. 농가의 월령이니까 우선적으로 김장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겨우살이 준비이지요. 고니는 기러기과의 흰색 백조입니다.  

 

중국의 송나라 때 대표적인 문인 구양수(歐陽脩)가 여음 태수(汝陰太守)로 있을 때 소설(小雪) 무렵 친구들을 모아놓고 시회(詩會)를 열었습니다. 그 때 구양수가 친구들을 불러들인 장소의 이름이 취성당(聚星堂)입니다. 별들이 모여 있는 집이라는 뜻이니 이를테면 별들의 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시재는 자연 눈이 되는데, 이 모임에서는 통상 눈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들, 이를테면 옥(玉)ㆍ달 월(月)ㆍ배꽃 이(梨)ㆍ매화(梅)ㆍ솜털 서(絮)ㆍ학(鶴)ㆍ거위 아(鵝)ㆍ은(銀)ㆍ춤출 무(舞)ㆍ백(白) 등의 글자를 쓰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항용 쓰는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금지해 두고 시를 짓는 것을 금체시(禁體詩)라고 하고, 이는 마치 전쟁에 있어 백병전과 같다 하여 백전(白戰)이라 했습니다. 하얀 눈을 두고 벌어진 치열한 싸움이라는 뜻이지요. 매우 품격 높은 시회(詩會)였다고 합니다. 

 

이런 고사가 있어서인지 문인들 사이에서는 소설(小雪)에 시짓기 모임이 자주 있었습니다. 조선의 성종(成宗, 1457~149494)도 소설에 입직(入直)한 승지·홍문관원·주서·사관에게 소설시(小雪詩)를 지어 올리게 하고 잘 지은 사람에게 상으로 술을 내린 일이 있습니다. 1487년의 일입니다. 그런데 성종 자신도 소설에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바로 변방의 군사를 생각하고 지은 것입니다. 지금도 날씨가 추워지면 군대에 보낸 자식을 부모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처럼 왕이 그랬던 것입니다. 14791년 압록강변과 1491년 두만강변에서 야인들이 월경 침범을 하는 등 문제를 자주 일으키자 성종은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성종은 그 때의 정황을 다음과 같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내가 변방의 일을 생각하느라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중에 침상에서 일어난 지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지난 밤 사고(4鼓 새벽 3시 전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북두칠성이 자리를 옮겼다. 날이 샐 때는 먼 것 같은데, 정원(庭院)이 흰 빛을 띠고 있고 새벽닭은 울지 않기에, 이상해서 살펴보니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문득 변방에서 방비하느라 괴로움을 당하고 있을 북정나간 군사들이 생각나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 때 성종이 지은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른바 [소설시(小雪詩)]로 불리는 것입니다.  

  

“한 밤에 일어나 문 열고 마루로 나서니 中宵起榻啓軒行

수자리 군사와 북정 군사가 생각난다 一念屯邊北討兵

조금씩 내리던 눈이 아직도 날려 밤 경치 돋우고 小雪尙繁增夜色

밤 추위가 먼저 들어와 바람 소리를 키우네 暮寒先入助風聲

뜰에 나부끼니 매화의 소식 더디고, 飄庭已重梅花信

나뭇가지 붙은 것은 버들개지보다 가볍다. 穿樹猶加柳絮輕

다시 삼군(三軍)을 생각하니 옷은 따뜻한가 걱정스러워 更憶三軍憂挾纊

갖옷을 벗고 화로도 밀치고 밤을 새우네 解貂推火到天明 

 

이런 군주에게 훗날 신하들은 묘호로 이룰 성(成)자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성종입니다. 이 겨울 우리는 전후방에 있는 군인들, 그리고 우리가 안식을 취하는 시간에 수고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 우리들의 안전하고 편안한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눈은 “씻는다”, “갚는다”의 뜻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밤새 눈이 와서 하얗게 덮인 천지가 참 인상적이듯이 눈은 수치와 욕을 씻는다는 듯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치(雪恥) 설욕(雪辱) 등의 단어가 있지요. 17세기 이후에는 설치라는 단어가 조야에서 매우 많이 쓰였는데 청으로부터 받은 수욕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것이 국가의 대의로, 제1국시로 작용했습니다. 효종은 항시 마음속에 복수(復讐)와 설치(雪恥)라는 네 글자만을 담고 있었다고 하고 당시의 조야 대신들은 “지극한 아픔이 마음에 있다”는 뜻의 “지통재심(至痛在心)”이라는 단어를 입에 붙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용서는 하지만 잊어서는 안될 역사적 내용들을 갖고 있는 민족입니다.  

 

입설(立雪)의 교의(交誼)라는 것도 있습니다. 송(宋) 나라 때 유조(游祚)와 양시(楊時) 두 사람이 정자(程子)를 스승으로 섬기려 처음 뵈러 갔을 때, 정자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곁에 선채 정자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는데,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눈이 한 자 가량이나 쌓였다고 하는 고사가 있습니다.

기우제가 있듯이 기설제(祈雪祭)도 있습니다. 요즘은 도시에서 눈이 오면 교통 체증, 사고 등 문제가 많아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전에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다음 해 농사가 문제되므로 눈을 비는 의식을 거행한 일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40여 차례의 기설제를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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