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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쉽게 섞이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영혼의 편지 154호)
관리자 2018-04-14 14:20:3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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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 쉽게 섞이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

 

                                                                                                                                                                  2018년 4월 14(일154호)

 

알곡과 쭉정이는 겉모양이 비슷해서 평소에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지만, 추수철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들판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알곡과 쭉정이는 명암이 엇갈린다. 바람은 속이 빈 쭉정이를 날려버리지만 가을볕에 잘 여문 알곡은 들판에 그대로 남겨둔다. 그제야 들판의 혼돈은 정리된다. 이처럼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은 잠시 한데 뒤엉켜 지낼 수는 있으나, 언젠가는 서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사람과 말의 본질도 매일반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하고 감추려 해도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은 언젠가 드러나고 만다. 본성과 본질, 진심 같은 것은 다른 것과 잘 뒤섞이지 않는다. 쉽게 으깨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진실한 것은 세월의 풍화와 침식을 견뎌낸다.


이러한 진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영화가 있다. 톰후퍼 같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킹스스피치'다. 영화에는 심하게 말을 더듬는 왕 조지 6세가 등장한다. 어릴 적부터 말을 더듬은 조지 6세는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도 대중 앞에만 서면 지독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입을 떼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오므라진 입술을 겨우 벌려 목구멍에 쟁여진 단어를 힘겹게 뱉어보지만, 말에 힘이 실리지 않으므로 연설 내용이 대중의 가슴까지 당도할 리 없다. 말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에서 밀쳐낼 만한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조지 6세는 결국 괴짜 언어학자 라이오넬 로그 박사를 찾아간다. 그리고 쇠구슬을 입에 한가득 물고 바닥을 나뒹구는 등 험난한 치료 과정을 겪는다.


때는 바야흐로 히틀러가 유럽을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넣던 시기.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선포를 앞두고 라디오 연설에 나선다. 대국민담화를 위해서다. 라이오넬은 바짝 긴장한 조지 6세를 다독이며 당부한다. "차분히 친구에게 말하듯 하세요." 전 국민에게 전하는 연설을, 그것도 전쟁 참전 선언을 친구에게 말하듯 하라니.... 하지만 그 당부의 무게오 울림이 범상치 않다. 로그 박사는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 명의 친구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으로 수천만 대중에게도 진심을 전할 수 있을 겁니다."


로그의 조언 덕분인지, 조지 6세는 침착하게 연설을 마무리한다. 화술과 화법이 아닌 참된 마음이 담긴 왕의 목소리는 전파를 타고 영국 전역으로 퍼져 국민의 귀로 흘러들어간다. 조지 6세의 음성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끈이 된다.


이 영화는 언어와 말재간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시각에 통렬한 어퍼컷을 날린다. 우리 사회는 남보다 말을 잘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중독돼 있다. 매끄러운 발음으로 화려한 입담을 선보이거나 인문학적 내공에 세련된 동작을 곁들이면 말씨가 능수능란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듣는 이의 달팽이관과 뇌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재간을 말 잘하는 사람의 능력인 양 간주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남을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은 막말을 넣고 무조건 튀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망언으로 이어진다. 말의 품격에 대한 고민은 잘게 부스러지고 사방으로 흩날려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영화 '킹스 스피치'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영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언품을 극명하게 대비한다. 한 명은 파시즘의 핏빛 광기로 독일을 어둡게 물들인 아돌프 히틀러. 다른 한명은 앞서 소개한 말더듬이 왕 조지 6세다. 두 사람의 어법은 극과 극이다. 히틀러는 또박또박 한 발음으로 말의 성찬을 쏟아내는 다변과 달변의 소유자다. 반면 조지 6세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진심을 담아서 말할 줄 아는 인물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누가 더 뛰어난 언사를 구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마나다. 인류의 본지적인 가치를 지켜내고, 말과 말 사이에 진심을 심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을 우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타인을 향해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는 만인이 고민하는 숙제다. 그 과정에서 혹자는 상대의 의표를 찔러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혹자는 누군가의 화법과 말투를 무작정 ㅋ따라 하다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린 그렇게 살아간다.


말에 비법은 없다. 평범한 방법만 존재할 뿐이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호를 차분히 복기하고 자신의 말이 그려낸 궤적을 틈틈이 점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법을 찾고 꾸준히 언품을 가다듬는 수밖에 없다. 이유는 단 하나다. 말하는 기술만으로는 당신의 진심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기주, '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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