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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자와 섬기는 자(벧엘의 편지 146호)
관리자 2018-03-14 17:46:4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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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자와 섬기는 자"

 

2018 년3월 14일(146호)

오늘의 말씀


마태복음 23:1-12

 

오늘 본문은 이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에 마태복음 22:41 이하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 주님이 질문하시기를 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느냐했습니다. 그들이 대답을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대답을 못한 것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자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든 자리입니다.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았다는 것입니다. 11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이것이 주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어서 12절이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인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큰 자는 섬기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섬기는 자요, 큰 자의 모습일까요? 주님의 책망 속에 말씀이 있습니다. 세 가지를 생각해봅시다.

 

1. 큰 자요 섬기는 자는 무거운 짐을 지는 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신앙의 위기는 부활의 영광은 즐거워하나, 그 영광의 앞 페이지에 있는 고난과 십자가는 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거운 짐, 그것은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8:34을 읽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향해 가고 있는 길입니다. 그냥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애굽에 속하였던 과거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천국이 열리고 주님의 제자로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자들에게 그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는 자가 큰 자요 섬기는 자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사람들의 존경과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에서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바꾸고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말씀의 은혜를 붙잡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기억해 주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많은 우리 교회입니다. 이제는 미래를 위해 소망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선명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오직 예수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랍비도 있습니다. 아버지도 있습니다. 지도자란 선생과 유사한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랍비라 불리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즐겨 했습니다. 지도자, 선생이라 부름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사람들에게 깨우치도록 하시는 것은 너희를 랍비라고 부르는 자나 너희나 형제간이나 마찬가지다. “연약하고 죄 많은 인생임을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3:1에서 말씀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우리가 배울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전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이 어렵고 무겁습니까? 그 길도 예수님을 붙잡고 가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있습니다. 수많은 서적도 있고 영화도 예술 작품들도 있습니다. 사람도 많고 선생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하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를 향한 것들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함께 하심으로 예수님을 붙잡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주님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오른 손을 붙잡고 승리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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