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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된 자유인(벧엘의 편지 135호)
관리자 2018-02-09 10:45:0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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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된 자유인"

 

2018년 2월 9(135)

오늘의 말씀


고린도전서  9:16-23


여러분, 교회란 무엇일까요? 존 칼빈은 성도들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복음으로 성도를 잉태하고 복음으로 젖을 먹이며 복음으로 양육하며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이끌어주는 어머니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의 생명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와 권리에 대해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면서 그 모습이 복음을 누리는 자의 모습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종이 된 자유인의 행복을 노래하듯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종이 된 자유란 무엇입니까?

 

1. 종이 된 자유란 권리를 쓰지 아니한 자유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신의 자유를 어디에 쓰느냐 하면 권리를 쓰지 않는 쪽을 선택합니다. 종의 길을 택한 자유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복음이 주는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 붙잡혔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8:32) 예수님께 붙잡히자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자 다른 것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오로지 의지할 분은 주님 한 분,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해 자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구원입니다. 구원의 은총은 입으로 잠시 고백한 입술의 표현이 아닙니다. 머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깨닫고 의지와 행동에까지 이르는 능력인 것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그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종이 된 자유란 상()이 되는 자유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 9:18). 우리가 교회에서는 내 권리와 자유를 어디를 향해 선택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종의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내게는 상이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20:27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삼하 22:28의 기록처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말하는 것이죠, 이렇게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낮추는 것이 내게 상급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는 자유를 가지고 교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종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가지고 택할 수 있는 종의 자리는 어디이겠습니까? 그때마다 생각할 것이 사도 바울의 또 하나의 말씀입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겸손히 복음을 붙들고 종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 상을 바라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종이 된 자유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 사도 바울에게 종의 길을 택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함께 천국의 자리에 이끌고자 하는 소망입니다.영혼을 향한 열망. 이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에게 종이 됨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는 소망이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 배워 깨닫습니다. 자유가 있어, 그것을 남용함이 아니라, 그 자유를 복음을 위해 종의 길을 선택한 자에게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 위에, 우리 교회에 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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