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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부 하나님(영혼의편지-114호)
관리자 2017-11-17 16:40:4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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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부 하나님

 

 

20171117(114)

 

<pridigal, 무모할 정도로 헤프게 베푸는, 남김없이 다 써버리는>이 책의 저자 팀켈러는 탕부의 개념에 대해 정의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읽어왔던 두 아들과 아버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지 못하는 복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묵묵히 제 할 일을 했고 한 아들은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떠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리고 떠나갔지요. 그 떠난 아들이 거지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후에 큰 아들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성경에서 아버지는 패륜아와 같은 둘째 아들을 아무 말 없이 받아 주고 잔치를 벌여 환대합니다. 그 때 큰아들은 이런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고 불만이 폭발하게 됩니다.

팀켈러는 이 책에서 두 아들의 대립과 아버지의 갈등을 통해 복음의 의미를 다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탕자라고 불린 둘째 아들의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형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문제인 동생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반항하는 인간인 동생 vs 종교적인 인간인 형이 두 사람의 문제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고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반항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올라서려는 죄를 범했습니다.

특히 형의 모습, 율법에 힘써 순종하는 형의 모습이 오히려 하나님께는 반항하는 전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 쓰여진 살리에르와 모자르트의 이야기가 이를 더 반증합니다. 순결과 자선에 힘썼던 살리에르의 하나님과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높이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그는 노력하고 봉사한 만큼 하나님이 자신에게 재능을 부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자르트는 순수하게 하나님과 더 가까워 졌습니다. 살리에르의 생각은 형의 생각과 동일합니다. 결국 형 또한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죄인일 뿐이며, 삶의 목적이 자기만족과 자기 행복을 우선 추구하기 위함 이였기 때문입니다.

팀켈러는 도덕과 종교의 우월성에 빠져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형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동생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대상이었으나 본인의 행동을 뉘우치고 아버지가 벌인 잔치의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형은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아들, 떠나간 아들과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떠난 아들을 여전히 잔치로 초대하고픈 아버지의 마음을 탕부의 마음이라고 이야기 하고 계십니다. 두 아들 모두 틀렸으나 동시에 둘 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계신 것입니다.

탕자의 이야기는 우리 또한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형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동생의 삶을 살고 계십니까?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는 복음을 더 깊이 알아가고 우리 삶에서 복음의 힘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왜냐면 복음만이 우리 삶의 출발이고 끝이니까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누가복음 15:25)"

-팀켈러, ‘탕부 하나님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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