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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심자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벧엘의편지-105호)
관리자 2017-10-19 17:45:4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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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심자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20171019(105)

 

오늘의 말씀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사도행전 931)/ 전체 본문: 사도행전 910-31


주여 뉘시오니이까?” 이 물음은 한 회심자의 물음입니다. 주님은 다메섹의 교회를 멸하러 가는 사울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질문 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 때 주님의 광채로 눈이 멀어버린 사울이 주님을 향해 질문합니다. “주님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눈이 멀어버린 사울은 주님의 말씀대로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암흑 같은 삼일동안 내면의 시력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가 지녔던 신념과 행위들을 돌아보며, 그토록 자신 있었던 자아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심자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주님은 사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쳐서 심판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울 스스로 나는 자랑스런 유대 바리새파의 최고 지성이요, 최고 신앙자요,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라고 자부해온 자신이 본래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사울의 회심 속에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절대 진리이신 주님 앞에 섰을 때 비로소 사울이 자신의 실체를 정확히 깨달았던 것처럼 주님을 통하여서만 나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둘째, 주님은 사울로 하여금 주께서 택하신 자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울이 삼일동안 침묵하고 회개하며 금식하던 시간 주님께서는 아나니아를 부르셨습니다. “일어나 작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11-12)” 그 때 아나니아가 다시 주님께 여쭙니다. “이 사람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두 말 없이 말씀하신 집으로 가서 사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졌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맞추어 놓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신령한 계획 속에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눈에서 과거 옛사람의 비늘이 벗겨졌듯이, 오늘 우리 성도님들도 우리의 영의 눈이 새로 뜨임으로 인해 택하심을 받기 바랍니다. 또한 그 은혜로 부르신 주님으로 인해서 감사와 기쁨이 더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주님은 이 회심자를 통해 만민을 향하여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 사울은 이방인을 향하여 나아갈 성령님의 도구인 것입니다. 말씀처럼 사울은 몸이 회복되자, 즉시로 다메섹에 있는 회당으로 가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가 주님의 본래 제자들과 함께 주님이 이름으로 담대히 말했다고 했습니다(28).

예수와 교회의 박해자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자며 선교사로 변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지닌 과거의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여겼을 때, 주님은 그것을 들어 주님 나라를 위해 쓰셨습니다. 그의 지성과 그의 학문, 그의 신분과 그의 언어 능력, 그의 필력과 열정을 쓰셔서 신약성경에 가장 많은 책들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모자람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입니다. 마지막 31절의 말씀이 오늘의 결론이 될 것입니다.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에 교회가 든든히 서 갔다고 했습니다. 박해가 교회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외부적인 편안함은 신앙의 나태함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대교회는 오히려 든든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가요?

성령께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성령님께서 회심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택정하심을 깨달아 예배와 기도에 힘쓰고 주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일이 그치지 않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벧엘교회의 역사에도, 여러분 인생의 역사에도 이 일들이 쓰여지기를 소망합니다. 평안하면서 든든하게 서 가는 벧엘행전이 쓰여지기를 축원합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설교 (1015일 주일)


윤혜철 : 읽는 사람을 위하여 문단 띄어쓰기 부탁드립니다. 꼭! (10.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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