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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정로에 선 사람(벧엘의 편지-103호)
관리자 2017-10-12 17:33:4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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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정로에 선 사람

 

20171012(103)

 

오늘의 말씀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사도행전 925)/ 전체 본문: 사도행전 9:1-8

사도행전은 누가의 기록입니다. 1장부터 8장 까지는 성령강림과 초대교회의 부흥, 그리고 이방민족을 향한 선교준비가 기록되어 있다면, 9장부터는 이방민족을 향한 본격적인 선교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다소 출신 사울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의 회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회심의 이야기를 세 단계로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이 회심은 사울이 예수를 핍박할 때 이루신 사건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에서 증인들이 옷을 벗어 발 앞에 증거를 남긴(사도행전 78)인물입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하게 여겼고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사도행전 83). 그를 위해 사울은 탈주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한 채(사도행전 2611)’ 말입니다. 그랬던 사울이 회심했습니다. 사울에게 회심의 동기나 의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와 회심(悔心)토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마음이 상한 자들과, 방황하는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온전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회심은 예수님께서 사울을 붙잡으심으로 이루신 사건입니다. 사울과 그를 호위한 병사들이 다메섹에 거의 당도할 즈음, 갑자기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사도행전 2613)’이 사울을 둘러 비추었습니다. 이 빛은 너무도 강렬하여 그의 눈을 멀게 합니다. 사울은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사울이 누구시냐고 묻었을 때 주님은 답하십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과 함께한 병사들은 빛은 보면서도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사도행전 229)‘ 예수께서 오셔서 그를 압도하시고, 거친 사울을 붙잡으신 것입니다. 자만심과 자신감, 자기 정의감에 빠져 분노하며 그리스도께 대항하던 이 사울을 도리어 주님께서 포로처럼 붙잡으신 것입니다. 다메섹의 성도를 체포하겠다고 호기 당당하게 가던 그가 도리어 예수께 체포되어 다메섹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형상이 성도들의 인생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성도가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절대주권적인 은혜로 사로 잡으셔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권적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와 붙드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훗날 그 일이 주님께 붙잡힌바 된 것(빌립보서 312)”이라 고백합니다. 우리 또한 그러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주권적 은혜 앞에 엎드러짐이 있기를, 주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서 살아나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셋째, 이 회심 후 사울은 두고두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갈라디아서 115-16)”

사도행전 2614절 에서 사울은 당시의 상황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예수님은 당신을 소를 길들이는 농부로, 사울을 마치 거칠고 고집이 센 황소로 비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박해하고 거부하는 일이 가시 돋은 채찍을 뒷발질 하는 것처럼 오히려 사울 본인의 심령에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박해할 때 사실 사울은 내면이 혼란했습니다. 예수를 거부하고, 그를 믿는 도당들을 잔멸하면 할수록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대체 이들은 왜 이런가?” 사울은 혼란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과,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증인들이 끊임없이 나와 담대하게 고백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혼란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우선시하는 유대신앙을 지니고 있지만 온전한 평강은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로마서 77-8) 주님은 바로 그러한 사울의 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불러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이 회심한 사건을 갑작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의 회심은 즉각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거친 황소를 서서히 길들여 가신주님의 주권적 은혜의 역사인 것입니다. 주님은 사울을 <회심을 향한 정로>로 향해 오도록 주권적 은혜로 인도해 오셨던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린도전서 1510).”

우리는 믿음을 얻기를 바라거나, 영적 성숙을 바란다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을 만나 즉각적으로 변화되는 기적적 체험을 바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복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기뻐하십니다. 그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우리를 날마다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의 사건, 절대적 은혜의 사건에 압도되고 엎드러지는 삶을 원하십니다.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힘이 있습니다. 참된 평화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서, 절대 주권적 그 은혜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살아나며, 그 은혜 속에서 우리는 사울처럼 점차 변화되어 가고 회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누리며 <회심의 정로에 서는 인생>으로의 자기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설교 (108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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