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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박해에서 이루신 큰 기쁨(벧엘의편지-99호)
관리자 2017-09-21 16:45:5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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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박해에서 이루신 큰 기쁨

 

2017921(99)

 

오늘의 말씀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사도행전 87-8)/ 전체 본문: 사도행전 8:1-8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노라면 때때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는 절망적인 질문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이 들려주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이 그러했습니다. 말씀을 잘 전하고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던 대표적 성도 스데반이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일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 기적의 교회가 세워지던 시기였습니다.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성령 충만을 누렸고, 평일에는 날마다 집집마다 모여서 떡을 떼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교회를 놀라고 두렵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말씀도 잘 전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던 성도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그 때, 말씀 속에서 사울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합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그렇게 잠들었고, 사울이 부각된 이 절묘한 장면 속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오늘은 말씀 속에서 그것을 생각해봅시다.

   첫째, 큰 박해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사도행전 81-2)” 스데반이 죽은 날부터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참혹한 죽음을 맞았을 때 경건한 사람들이 장사를 지냈다고 했습니다(2). 그리고 크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처형당한 자를 위해 운 것은 유대 율법 해석서인 <미쉬나>에 반하는 일로, 상당히 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즉 스데반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유대인 성도들이 죽음도 불사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을 애곡하며 장사한 사람들에 반하여, 이 사울이라는 유대인은 교회를 잔멸했다고 했습니다(3). 훗날 그는 두고두고 이 일들을 괴로워하며 참회하게 됩니다. 후일 선교사로 헌신한 후에 그는,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켰다(사도행전 22)”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디모데전서 113)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야 하고 진리를 분별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허위와 무책임과 비방으로 난무하는 시대와 사조 속에서 성령께서 여러분을 지키셔서 분별의 영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 박해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성도들로 하여금 흩어지게 했습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명령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절에 )”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위임령이 이 박해의 결과로 이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이사야 619)” 이는 이제 율법과 성전의 시대는 갔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가 이제 예루살렘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져 가는 때인 것입니다. 스데반을 장사할 때, 그들은 이미 신약 시대의 새 역사를 열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남아서 전 세계로 흩어져가는 교회들의 본부가 되고,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운 예수의 새 제자들은 이제 흩어져 갑니다. 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셋째, 이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사도행전 84)” 스데반의 순교가 박해를 일으키고, 그 박해가 성도들로 하여금 큰 울음 속에 흩어지게 했다면, 이 흩어짐은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흩어져가는 이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고 한 것입니다.

지  금까지는 말씀을 전하는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사도들이었지만 스데반으로부터 시작해서는 복음을 전하는 주도적 인물들이 바로 새로운 예수의 제자들인, 성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분 중 하나가 빌립 집사님입니다. 그가 사마리아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 표적이 나타나고 더러운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자들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사도들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이적과 치유의 역사도 말씀을 들고 들어간 빌립을 통해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사도행전 88)”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다 인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스데반이 죽던 날, 그 죽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을 이루실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이 되고 위로와 평강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오늘 믿음 안에 살아가는 분들은 내게 주신 고통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인생이란 없고, 어떤 의미도 없는 고난이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은총 안에 살아가는 한 말입니다. 잠자고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시고, 아픔의 시간을 통해 주님의 뜻을 찾게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우리의 발길을 말씀의 발길로 주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설교 (917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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