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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보다 설교를 더 잘 한 사람 (벧엘의편지-97호)
관리자 2017-09-14 17:27:4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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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보다 설교를 더 잘 한 사람

 

2017914(97)

 

오늘의 말씀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사도행전 752)/ 전체 본문: 사도행전 7:1-4, 51-60


오늘 우리가 만나는 스데반, 그의 이름의 뜻은 면류관입니다. 본문에서 스데반이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위기에 처했습니다. 회당의 사람들은 스데반을 신성모독 죄로 고발했고 그는 산헤드린 공회에 섰습니다. 의장인 가야바가 질문합니다. “성전과 율법을 모독했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 말에 스데반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그의 답은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변론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는 변론이었습니다.

첫째, 스데반은 하나님이 임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하나님과 성전을 동일시 한 성전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이 공회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구약의 인물들인 아브라함과 요셉, 모세와 다윗, 솔로몬을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임재가 어떠했는지를 강변(强辯)합니다. 스데반은 갈데아 우르와 애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태동과 해방과 구원의 역사는 이방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의 은총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세와 출애굽, 광야 생활,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를 들어가면서 하나님은 천하 이방에 흐르는 만군의 왕이라는 것을 강변했습니다. 순례의 모든 단계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전한 것입니다. 벧엘의 교우 여러분께서도 이 강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태복음 1820)”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찬송하며 예배하는 그 자리가 성전이 됩니다.

둘째,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자를 거부했던 사실을 전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택하신 구원의 도구였지만 형제들은 그를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9). 모세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세운 선지자요 구원자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를 거부했습니다(25). 스데반은 아모스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너희가 언제 제대로 예물을 드리고 제대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느냐? 이방의 우상들을 그토록 열심히 배우면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몰록과 레판이라는 우상신을 섬기지 않았더냐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친히 그 아들을 보낸 것입니다.

셋째, 그럼에도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잘못된 신앙으로 세 가지를 거스르는 범죄를 저질렀음을 지적합니다. 스데반은 그들을 향하여 너희도 너희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령을 거슬렀다고 합니다(51). 메시야를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죽였고, 또한 메시야마저 죽인 것을 지적합니다(52). 그런 고로 당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이 세우신 율법을 어긴 자들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53). 이 변론을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이 찔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목숨을 건 이 설교의 마지막 말에 오히려 귀를 막은 채 스데반을 향해 사정없이 달려들었습니다. 스데반을 성 바깥으로 끌어내고 돌로 쳤습니다. 이 일의 증인을 자처하는 자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청년에게 증거로 지키게 했습니다.

돌로 맞으며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그 때, 스데반은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계속해서 쏟아져오는 돌을 맞으며 무릎을 꿇고 이렇게 크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스데반은 숨을 거둡니다. 누가는 이 분의 죽음을 이렇게 적어놓습니다. “자니라.” 죽음의 순간까지도 스데반은 주님의 십자가에서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자신을 향해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면서 주님의 뒤를 따라갔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 몸으로 설교했고, 그 증거로 설교했고, 그 행동으로 설교했고, 피 흘림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는 참 제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을 그렇게 쓰셨습니다. 사랑하는 벧엘의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에 남을 것이 무엇입니까? 또 남길 것은 무엇입니까? 어느 경우라도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세 글자, “자니라로 마칠 것입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께 어떤 인생으로 쓰이길 원하십니까? 사도행전 1119-21절에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의 이름은 하늘의 생명책에서 빛났고, 말씀의 능력과 피 흘린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이 전해지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스데반과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의 능력을 말씀을 전하는데 쓰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전한 자의 이름으로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모든 일을 능히 이겨내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스데반을 위해 서서 응원하시던 주님께서 여러분이 전하는 말씀의 자리, 성전의 자리, 영적 승리의 자리에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고 축원합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설교 (910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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