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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하여(벧엘의편지-95호)
관리자 2017-09-07 18:04:3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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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으로 충만하여

 

201797(95)

 

오늘의 말씀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사도행전 615)/ 전체 본문: 사도행전 6:8-15

사도행전은 성령님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첫순교자로 기록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일곱 명의 일꾼들과 함께 사역자로 선택되기 전에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사도행전 63).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칭해졌습니다(사도행전 65).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고 전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사도행전 68). 그는 사도가 아니라 교회의 집사로 안수를 받은 일꾼이었음에도 마치 사도처럼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와 사건은 목회자, 성직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임을 성경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는 것보다 성령 충만한 제자를 통해 어떤 일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성령께서는 성령의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복음 전도를 해야 하겠다 결심을 하고, 또 마음으로 전도를 해야 할 줄을 알면서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님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지 않고 내 인생에 성령님의 일하심을 진정으로 간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입었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선물로 오신 성령님이 그 마음속에 있지만, 성령님의 사건이 그 삶에 복음 전파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로부터 말씀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나타나, 살아계신 성령님이 여러분의 삶에서 힘있게 말씀으로 역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방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회당에 있던 자유민들은 모세가 전한 율법 신앙과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시 하는 성전 신앙만 알았을 뿐, 예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논쟁이 붙었습니다. 여러분은 기억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세 번에 걸친 사탄의 공격이 있었듯이, 말씀을 전하는 일에는 대적의 공격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중보기도가 필요하고, 성령 충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이런 방해와 분쟁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일을 포기하고,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 되라고 하신 명령을 거부합니다. 거부하는 만큼 성령님의 역사와 충만함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성에 머문 성령님으로만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0절에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으로 말할 때 회당에서 도전하는 논쟁자들이 감히 이길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고로 세 번째는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는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세상을 이기시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령 충만함으로 이 논쟁에서 승리했다고 했습니다. 회당의 사람들이 예수의 복음을 공격할 때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였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누가복음 2112-15)” 성령의 사람은 말씀을 전하려 할 때 찾아오는 방해를 이겨내야 합니다. 성령께서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함의 능력은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7장에서는 스데반이 성령에 충만하여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도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 부활의 말씀을 증거했듯이, 스데반 또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회당에 있던 자유민들은 집요하게 스데반을 공격했습니다. 말로도 지혜로도 스데반을 당해내지 못하자 누명을 씌웁니다. ‘이 사람이 모세를 모독한다,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악성루머를 퍼뜨리고 증인을 매수했습니다. 지금도 자행되는 세상의 방법 그대로 말입니다. 스데반은 벗어날 수 없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 냉엄한 자리에 선 스데반의 얼굴은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615)"라고 기록 될 만큼 평온했습니다. 숨 막히는 위기의 시간 앞에서 스데반의 심령은 고요합니다. 스데반은 하늘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봅니다(756). 주님의 피 묻은 십자가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스데반을 주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것 하나로 행복합니다. 주님을 보는 그 눈길 하나로 행복합니다. 나를 죽여 교회를 더욱 힘 있게 하시고, 이방을 향하여 복음을 세계로 퍼지게 하신다면,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따라갈 수 있는 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감히 그것이 은총이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충만히 살아남으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심을 인해서 말입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말대로 믿음대로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간절하게 축원합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설교 (93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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