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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하늘처럼(영혼의편지-85호)
관리자 2017-07-28 16:33:1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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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하늘처럼

 

2017728(85)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다.” 살아있는 지성이자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불리던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딸 이민아 목사를 위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쓴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 책속의 문장입니다. 이어령 교수와 건국대 강인숙 교수의 딸이였던 이민아 목사는 공부를 잘하고 순종하는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마음아팠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대하는 아버지를 거역한 채 '죽을 만큼 사랑했다'고 회고했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유학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유학생의 공식적인 취업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두 사람은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살면서 남들이 다 꺼리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었기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성공을 위해 달리던 이민아 목사와 남편은 사람들의 기준으로 성공했습니다. 미국생활 5년 만에 이 목사는 변호사가 됐고, 김 대표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 5년 만에 헤어졌습니다.

그 후 이 목사는 재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21녀를 낳았고 일했고 기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자폐인 둘째 아들로 인해서 삶의 균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민아 목사의 저서 <땅끝의 아이들>에서는 자폐인 아들을 위해 그녀가 보낸 아픔의 시간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도 고난이 끝나지 않던 어느날 26세가 된 첫째 아들은 어느 여름, 갑자기 쓰러져 병명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끊임없는 고통속에서 이 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질문했고 신앙을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찾은 후에 그녀는 목사가 되어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청소년 구제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녀의 환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암과 망막 박리로 이 목사의 눈이 멀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딸의 끝이 없는 시련 앞에서 아버지 이어령 교수는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후 이 목사는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결국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지난 20123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고백하고 선포했습니다. "모든 시련과 고난이 내게는 축복이었다.“

이 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청년들은 그녀가 아들을 잃은 후 대신 만났던 땅끝의 아이들 이였습니다. 한 시사지가 그녀를 기념하며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1년 가까이 치료를 받았던 병원 관계자들은 이 목사를 유난히 밝게 웃던 환자로 기억했습니다. 또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마지막 순간까지 의욕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쓴 간증집 제목처럼 <땅에서 하늘처럼> 살다갔던 것입니다. 기자는 기사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그녀의 삶에 대해 박복한 인생이었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쪽은 누구일까?” 누구인 것일까요? 우리의 모든 시련과 고난이 축복이라고 고백할 수 있으십니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이민아 목사를 기억하며정리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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