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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벧엘의편지- 72호)
관리자 2017-06-15 16:49:3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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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2017615(72)

 

오늘의 말씀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 (사도행전 2:5-6) / 전체 본문: 사도행전 2:5-13


찰스 디킨스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꼽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과 진리의 자리를 떠났다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과, 그리고 하염없이 사랑하는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이 나타나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라야 참된 행복과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배는 항로가 0.1도만 틀어져도 가다보면 본래의 목적지와 크게 달라집니다. 우리 인생도,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 교회를 벧엘방주라고 칭할 때 벧엘방주의 행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표를 잡고 가야합니다. 그 길을 제공하는 것이 성경이며, 함께 가는 벧엘방주의 키가 되는 것이 사도행전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인 것입니다.

오순절 아침, 성령이 강림하자 모여 있던 120명의 성도들, 각 사람에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각 사람에게 임하자,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합니다. 방언인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 모두가 방언으로 말했습니다. 그들이 방언으로 말할 때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이 소리를 듣고 소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첫째, 120명의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Other tongue(다른 언어)이 그들의 mother-tongue(모국어) 였던 것입니다. 둘째 놀라운 것은, 7절에 기록처럼 이 사람들은 이 외국어를 배우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11절의 기록처럼, 모두가 하나같이 다른 나라의 말로 하고 있는데, 이 경건한 유대인들은 청취가 가능하였고, 그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이 바로 성령 충만이 이루어낸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기적이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는 기적이 아닌 능력의 발현이요, 계시였습니다. 성령 충만과 방언 사건은 우리에게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그 중 세 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오순절 성령 충만과 방언 사건은 역사의 반전을 보여줍니다. 저주에서 복으로 바뀌는 반전이요, 분열에서 하나가 되는 반전 말입니다. 창세기 11장에는 인류의 비극적인 역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잊고 자기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교만의 역사를 꺾기 위해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결국 언어가 갈라지고, 온 지면으로 흩어지는 저주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과 충만은 바로 이 언어로 혼란되었던 인류 역사의 반전이었습니다. 바벨의 저주 역사가, 이 땅에 임하신 성령님으로 인해 질서와 화평의 복이 회복되는 역사로 반전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방언을 하는 제자들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 유대인 디아스포라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었지만 흩어져 있어 언어도 혈통도 달랐습니다. 이들이 돌아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예배 또한, 다른 인격이지만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예배의 의미가 참으로 큰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이 예배 중에 우리에게 임하셔서 분열이 하나됨으로 반전되는 역사와 인생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오순절 성령 충만과 방언의 사건은 성령의 주도 사건이었습니다. 4절 말씀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말에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방언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님이 그들의 인격을 사로잡고 그들에게 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성품과 행실을 성령께서 압도하시고 주장하신 것입니다. 방언에 대한 논쟁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방언과 은사에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별의 기준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사랑,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성령의 사람이 품게 되고 맺게 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도의 중요한 믿음의 이정표입니다. 성령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얻기를 사모 해야 하고, 내 믿음 속에서 어떤 열매가 무르익었는지 측정하는 변화의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들이고 사모하시기 강권합니다. 성령을 사모하는 기도를 쉬지 않고 드림으로, 성령의 열매들이 우리들 속에 더 풍성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오순절 성령 충만과 방언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시작이었습니다. 누가복음 3:21-22에 보면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예수님 위에 강림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 받기 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414절에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성령이 충만하여 갈릴리로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사역을 성령의 충만을 입고 감당하신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 또한 주님과 같이 그들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이 명하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같이 성령 충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 성령 충만을 주셨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드디어 그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고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어려운 일도 있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교회들은 세상을 향해 꾸준히 퍼져나갑니다. 그 일을 성령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우리는 꾸준히 읽어가면서 이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우리 벧엘행전의 이야기로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자가 아버지께 돌아가는 발길이 가장 아름답듯이, 세상의 영에 취했던 자들이 살길, 영혼이 가장 아름답게 되는 길은 성령님께 사로잡히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제 성령님의 충만을 받아 참으로 힘 있고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벧엘교회 김창운 담임목사 주일설교 (611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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