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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랑, 살아있는 예배
  • 설교일2018-01-21
  • 성경본문요한복음 13장 34-35절
  • 설교자김창운 담임목사
설교게시판 내용
본문내용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설교내용


 요 13:34-35 교회 사랑, 살아있는 예배
요한복음 13장은 주님께서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신 때에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3:1에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하신 말씀으로 마지막 유월절을 앞둔 시점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모아 저녁을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하나 하나 씻어주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림형석목사님이 발을 씻어주시던 기억)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어주고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는 일이야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스승이 그것도 영혼과 천국의 일을 말씀하시던 주님이 일어나 제자의 발을 닦아주시는 것은 그야말로 기이한 일인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우리가 읽은 말씀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고 이어서 한 말씀을 더 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새번역)
우리 주님이 이 말씀을 새 계명이라 하며 제자들에게 주신 데는 귀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제자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외로운 길을 갈 것입니다. 33절 말씀에서 주님은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요 13:33)
참으로 사랑하여 애틋한 표현으로, 어린 자녀 같은 제자들이여,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들끼리 남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맡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때 너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새 계명으로 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지금 주님을 향해서 극심한 환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이 말씀하는 시점에는 제자들 중 한 명이 사탄에게 영혼을 빼앗겨 도망쳐 갔습니다. 발을 다 닦으신 후에 떡을 드시다가 한 조각을 가롯 유다에게 주시면서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그가 일행을 떠나 나갔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사실 유다가 주님으로부터 무슨 싸인을 받고 나간 것으로 이해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17장까지 이어지고 이때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가 예수님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고난의 시간이 멀지 않았고 제자들은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암흑 같은 두려움과 낙심의 때를 맞이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이 맡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서로 사랑하라!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로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음으로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초대교회는 이 계명을 준수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땅에 속한 <땅이 세계관>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하여 천국을 살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이러한 흔적들을 당시의 자료들 중에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널리 알려진 서신이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국적 면에서, 언어 면에서 구별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인이 된 국가의 도시에 거주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기상천외한 생활태도를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그들은 우리들에게 훌륭하면서도 솔직한 삶의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단순히 나그네처럼 지냅니다.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모든 면에 참여하면서도 마치 외국인처럼 모든 것을 참고 견딥니다. 어떤 외국 땅도 그들에게는 본국이 될 수 있지만, 또한 자신이 출생한 땅에서도 이방인의 땅처럼 지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하지만 하늘의 시민들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험담을 하면서도 옳다고 인정하고. 책망을 하면서도 그들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모욕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박해를 당하면서도 곧 생명을 얻을 것처럼 즐거워 합니다.
이들은 천국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힘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사랑은 영적인 힘입니다. 그것은 예배를 통해 공급받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32 기록처럼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예루살렘에 초대 교회는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지면 가정에서 모여 예배하면서 영적으로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말씀은 ‘얼마나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었느냐’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던 것입니다. “저들은 주님의 제자이다”
지금 우리 시대가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실 때처럼 제자들을 무너뜨리려는 위협이 너무도 많은 시대입니다. 사단의 공격은 기존의 질서와 권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전통 조차도 무너뜨려 해체를 시키려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향한 애국심을 해체시킵니다. 가정을 해체시키려 합니다. 친구간 우애도, 이웃간 사랑도 해체시켰습니다. 신앙도 교회도 해체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고 인간은 거기에 휘둘리며 스스로 고독으로 가는 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때에 영적인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바른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기존의 질서와 권위, 심지어 교회에 대해 손가락질 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을 따라 해체 되는 인생이 아니라 살아 남아야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우리가 기억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라 불리는 이 여인이야말로 당시에 모든 것으로부터 해체된 여인이었습니다. 권력으로부터 경제력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심지어 예배로부터 고립되고 해체된 가여운 여인이었습니다. 이때 주님이 그녀를 찾아와 주신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살아있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 속에서 살아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간단히 세가지를 생각해봅니다.
1. 영의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최상의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찬양이란 말에 Hymn worship Praise 여러 용어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최대의 영광과 경배와 찬양과 권세를 삼위일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찬양의 정신입니다. 마 22:34-38에 보듯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여 올리는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신학교 시절에 찬양에 대해 약 일년 반 정도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유학 중에는 약 7년간 찬양 사역을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들만의 찬양을 좋아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자신이 어려서부터 불러온 찬양을 좋아합니다. 곡조와 음정도 다릅니다. 어디든 스타일이 다르면 불편을 느낍니다. 옷이 내 스타일에 안 맞으면 불편하듯이 찬양도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찬양을 선곡하고 예배를 집례하는 책임자들이 회중의 취향/스타일을 고려해서 곡을 선정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찬양대들이 찬양이 훌륭합니다. 이런 성가 찬양 뿐 아니라 힘차고 발랄한 찬양팀들도 발굴이 되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찬양을 영적으로 드릴 수 있는 길은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젊은찬양을 좋아한다 싶은 사람들은 어른들의 찬양 속에 영혼을 울리는 깊은 감동이 있는 통찰력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찬양을 배워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젊은 세대가 부르는 찬양이 그들 나름대로 은혜를 받는 곡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제 아이들 찬양듣는 것 보면 희한합니다. 그래서 저도 배웁니다. 영적 찬양이란 이해가 필요하고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신앙이 좋다는 말은 곧 겸손하다는 말입니다. 겸손은 수용이요 사랑입니다. 또한 배움입니다.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틀린 것은 아니므로, 나와는 다른 성향의 노래를 배워보는 것, 여기에 세상을 이길만한 통찰력의 성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배우는 사람만큼 훌륭한 사람은 없습니다. 내 감정을 만족시키는 찬양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더불어 부를 수 있는 영적 찬양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진리이신 말씀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과 진리의 예배라고 한다면, 진리와의 만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갈수록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진리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분명한 건 뒷자리보다 앞자리가 잘 듣는 위치로서 훌륭합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예배를 위해 으뜸의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시한 예배 드려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시시한 것, 쓰다 남은 것 드리겠습니까? 으뜸의 시간을 드리고, 으뜸의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듯이, 으뜸의 예배가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만큼은 핸드폰도 끄시고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펜과 메모지를/ 요새는 큐티인 교재를 준비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래서 내게 주시는 말씀을 문구이든 문장이든 적어가며 들으면 좋습니다. 글로 쓴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내 마음에 귀히 새겨주는 영적인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 중에 내 영혼에 찔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준비도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치지 않습니다. 다만 찌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말씀으로 수용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이러므로 진리를 만나는 예배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의 찬양, 진리의 말씀 그렇다면 세 번째는 3. 말씀을 붙든 기도입니다. 말씀을 받은 후에는 말씀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시간이 없다면 영과 진리의 예배가 온전히 안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기도]를 나누어드리고 설교 후에 기도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것을 붙들고 집에서 기도하는 영혼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루 세 번 은혜의 기도를 드리면서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 앞에 순종의 응답을 드리도록 나누어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붙들고 기도하고 기도함으로써 변화가 나타나고 평강이 더해가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어떤 분은 우울증에서, 어떤 분은 불면증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말씀에 응답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김상용 시인의 시 중에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라고 노래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왜 사냐고 한다면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니 잘 먹으며 살렵니다. 이런 대답은 배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고 삽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땅의 세계관 티가 납니다. 잘 믿자고 삽니다 하는 기특한 답도 있는데 좀 시대에 뒤떨어진 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에게 왜 사냐 한다면 <사명으로 삽니다>가 답일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 인생, 내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살아있는 예배를 드림으로 비로소 나의 인생이 올바로 꽃피리라 말씀합니다. 말씀에 이끌려 살아갈 때야 비로소 나를 향한 그리스도 계보의 구속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로소 거기에서 하나님께, 내 인생에도 감사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배우며 그 사랑을 나누는 중에 감사가 더해가는 복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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